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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그룹은 왜 '세 가지 색'에 빠졌나

  • 2021.11.13(토) 10:00

[주간유통]CJ그룹, 바이오 사업 본격 가동
이재현 회장의 '비전' 직후 M&A·투자 발표
'그린·화이트·레드 바이오' 진용 모두 갖춰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주간유통]은 비즈니스워치 생활경제팀이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주간유통]을 보시면 한주간 국내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벌어진 핵심 내용들을 한눈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편집자]

세 가지 색

"너, '블루'봤어?". 대학 시절 한 영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대학생이면 한 번쯤은 봐야 한다는 영화였죠. 뛰어난 영상미와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화면의 색에 담긴 감독의 철학 등이 가히 최고라는 영화였습니다. 바로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Krzysztof Kieslowski) 감독의 '세 가지 색 : 블루, 화이트, 레드'라는 영화입니다.

당시 세 편으로 이뤄진 이 영화를 봐야 어디 소개팅 나가도 좀 멋있어 보일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 포스터는 큰 액자로 만들어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방에 한 개쯤은 걸어둬야 예술을 좀 안다는 인상을 풍길 수 있었던 아이템이었죠. 사실 저도 봤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봐도 장면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예술에 문외한이었던 제가 그 영화에 담긴 심오한 뜻을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솔직히 '겉멋'이었습니다. 이름도 어려운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라는 분도 처음 들어봤고요. 블루 편에 주연이었던 프랑스의 유명 배우 줄리엣 비노쉬(Juliette Binoche)라는 분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왜 제목이 '블루'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죠. '블루'를 보고 기가 질린 저는 '화이트'와 '레드'는 포기했습니다. 

그래도 하나 남은 것은 있었습니다. 영화를 단 1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봤다'는 자체만으로도 괜히 우쭐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적 허영심에 진짜 겉멋만 가득했네요. 갑자기 영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색깔' 때문입니다. 최근 CJ그룹이 색깔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거든요. 다만 CJ그룹이 관심있는 색깔은 '레드, 화이트, 그린'입니다. 영화의 세 가지 색과는 조금 다르지만 문득 그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CJ, 성장이 정체됐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최근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중장기 비전'을 발표했습니다. 심지어 임직원들 앞에서 직접 발표했죠. 그래서 많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눈에 띄는 것은 비전 발표를 통렬한 자기반성에서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 회장은 현재 CJ그룹의 상태를 '성장 정체'로 규정했습니다. 성장이 더디다는 이야기죠. 그룹 총수가 공개적으로 회사의 성장이 정체됐다고 선언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는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과감한 의사결정에 주저하며, 인재를 키우고 새롭게 도전하는 조직문화를 정착시키지 못해 미래 대비에 부진했다”며 "그룹 미래 비전 수립과 실행이 부족했고, 인재 확보와 일하는 문화 개선도 미흡했다"고 밝혔습니다. 자신에 대한 반성이자, 임직원들에 대한 질책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임은 그룹을 책임지는 본인의 몫임을 이 회장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 3일 그룹의 '중장기 비전'을 발표했다. / 사진제공=CJ그룹

그리고는 향후 CJ그룹의 향후 성장 엔진을 '문화(Culture)·플랫폼(Platform)·웰니스(Wellness)·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으로 제시했습니다. 더불어 이들 분야에 2023년까지 1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선언했죠. 2023년까지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만큼 이 회장이 느끼는 CJ그룹의 성장 정체 정도가 심각하다는 방증입니다.

실제로 CJ그룹의 핵심 계열사들인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 CJ ENM의 최근 5년간 매출액 증감률 추이를 살펴보면 우하향하고 있습니다. 성장 속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한눈에 보입니다. 이 회장이 단기간 내에 10조원이라는 돈을 투입하겠다고 나선 것도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실탄은 충분합니다. 자체 자금에 외부 자금을 가져와도 버틸 여력은 있습니다. 다만 의지와 실천이 문제인 거죠.

바이오에 '진심'이었다

이 회장의 비전 발표에서 유난히 눈에 띈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CDMO(바이오 위탁개발 생산) 시장 진입'이었습니다. CJ그룹이 배포한 보도자료 속 표에 작게 들어가 있었는데요. 그걸 보고 '조만간 저걸로 기사를 한 번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비전 발표 5일 만에 CJ제일제당이 덜컥 네덜란드 바이오 CDMO 기업 '바타비아 바이오사이언스'를 2677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를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CJ그룹은 이미 준비를 해뒀던 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12일에는 오후 늦게 국내 고분자 컴파운딩 1위 기업 HDC현대EP와 바이오 컴파운딩 합작법인(JV)을 설립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바타비아는 '레드 바이오', 이번 합작 법인은 '화이트 바이오'에 속합니다. 바이오산업에 무슨 색깔이 있냐 하실 텐데요. 바이오 업계에서는 바이오산업을 화이트, 레드, 그린으로 나눠서 구분하더군요.

CJ그룹의 R&D센터인 'CJ블로썸파크'. / 사진제공=CJ그룹

업계에서는 농업·식품·해양 분야는 '그린 바이오', 친환경 소재는 '화이트 바이오', 의료 및 제약 분야의 '레드 바이오'로 구분합니다. CJ제일제당의 경우 그린 바이오 분야는 이미 진출한 상태죠. 남은 것이 화이트와 레드인데 이번 인수와 합작법인 설립으로 나머지 두 분야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겁니다. 이로써 CJ그룹은 바이오 분야를 총망라하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꾸리게 된 거죠.

이미 지난 7월에는 마이크로바이옴 헬스케어 기업 '천랩'을 인수했습니다. 더불어 내년에는 그룹 내 레드 바이오 사업을 천랩에게 몰아 줄 계획을 세워뒀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인체 내 세균, 바이러스 등 각종 '미생물'을 말합니다. 본격적으로 힘을 실어 바이오 사업을 제대로 키워보겠다는 심산인 겁니다. 불과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순식간에 진용을 갖추면서 CJ그룹은 바이오에 '진심'임을 내비쳤습니다.

왜 '바이오'인가

그렇다면 CJ그룹은 왜 이렇게 바이오에 진심일까요? 바이오산업은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투자되는 산업입니다. 실패 확률도 높습니다. 하지만 한 번 성공하면 든든한 캐시카우가 됩니다. 미래에 투자한다는 명분도 확실하고요. 사실 CJ그룹은 그동안 조용히 바이오산업에 대한 투자와 사업 확대를 모색해왔습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바이오산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요.

실제로 CJ제일제당의 지난 2분기 개별기준 매출액에서 바이오 사업 매출의 비중은 24.4%를 차지했습니다. 영업이익은 51%인 1939억원을 기록했죠. 지난 3분기 CJ제일제당의 바이오 사업 매출은 1조422억원으로 CJ제일제당의 개별기준 매출액의 40.4%를 차지합니다. 더불어 바이오 사업 분기 매출이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영업이익은 1274억원으로 전체 영업이익의 39.5%를 차지합니다.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CJ그룹 입장에서 바이오 사업은 효자입니다. 주력인 식품 사업 등은 이미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다고 식품 사업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굳건한 국내 1위 사업이니까요. CJ그룹의 고민은 '확장성'입니다. 어떻게 하면 식품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그런 사업은 무엇일까를 고민했을 겁니다. 그렇게 낙점된 것이 바로 바이오 사업인 겁니다.

바이오 사업은 식품 분야뿐만 아니라 화장품 산업 등 이종(異種) 산업과의 시너지가 가능합니다. 화이트 바이오와 같은 경우는 여타 중후장대 산업으로도 뻗어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고요. 이는 곧 CJ그룹이 그토록 바라던 확장성을 가진 사업입니다. CJ그룹이 차세대 먹거리로 바이오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CJ그룹의 바이오 사업 확장을 보면서 '세 가지 색'을 떠올렸습니다. 오랜 기간 고민하고 준비한 것에 대해 이제는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단계로 보입니다. 이제는 그 투자가 성과로 돌아와야 할 거고요. CJ그룹은 '화이트, 레드, 그린' 세 가지 색을 어떻게 만들어낼까요. 저는 비록 '블루' 밖에 못 봤지만 향후 CJ그룹이 만들어 낼 세 가지 색은 모두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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