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이 '비건 레스토랑'을 연다. MZ세대 소비자의 가치소비 트렌드를 겨냥한 행보다. 핵심 전략은 '고급화'다. 대체육 등 비건 식품과 파인 다이닝을 조합했다. 대중보다는 SNS 등을 활발히 활용하는 '트렌드 세터'를 겨냥했다. 외식 신사업 확장보다는 '베지가든' 등 비건 브랜드 영역을 넓히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 엿보인다.
비건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가치소비 트렌드는 환경 등 사회적 과제와 맞닿아 있다. 여기에 주목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식품업계도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CJ제일제당, 신세계푸드 등이 전문 브랜드를 내놨다. 풀무원 역시 비건 통합 브랜드 론칭을 앞두고 있다. '라면·스낵 기업'이었던 농심이 이들과 어떻게 경쟁해 나갈지 주목된다.
'비건 파인 다이닝', 마침내 베일 벗다
농심은 오는 27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비건 레스토랑 '포리스트 키친(Forest Kitchen)'을 오픈한다. 포리스트 키친은 ‘비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으로 기획됐다. 햄버거·파스타 등을 판매하는 '캐주얼 레스토랑' 형태의 타 비건 레스토랑과는 콘셉트부터 다르다는 설명이다. 김성환 농심 외식사업부 상무는 "2040세대 소비자 사이에서 파인 다이닝과 오마카세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포리스트 키친은 프리미엄 다이닝과 가치소비를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리스트 키친은 공간·메뉴에도 비건 가치를 담았다. 공간은 숲과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녹색 디자인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는 대신 단일 코스를 내세웠다. 점심 코스에 7개, 저녁 코스에 10개 메뉴를 선보인다. 이 중 3개의 메뉴에 농심이 포리스트 키친 전용으로 제조한 대체육이 활용된다. 메뉴 운영은 김태형 총괄셰프가 맡는다. 김 총괄셰프는 미국 뉴욕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근무한 경험을 접목한 신메뉴 출시를 이어갈 계획이다.
농심 관계자는 "어디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비건 파인 다이닝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지역 농가와 협업해 식재료를 엄선하고, 고유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하는 등 상생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지도 담았다"며 "여기에 자체 대체육 제조기술을 활용해 다른 비건 레스토랑 대비 특색 있는 메뉴를 만들어냈다. 비건 레스토랑의 새로운 트렌드를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비건 파인 다이닝'은 과연 가능할까
25일 오전 포리스트 키친 프리 오픈 행사를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온통 녹색으로 구성된 공간이 반겼다. 설명과 같이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매장 인테리어는 '오마카세' 식당에 가까웠다. '디귿(ㄷ)'자형 테이블이 매장 중심에 배치돼 있었다. 이 테이블 너머에 있는 주방은 '오픈 키친'이었다. 각 좌석에는 코스에서 제공되는 메뉴를 간략히 설명해 둔 메모가 준비돼 있었다. 각 메모마다 특유의 '스토리'가 담겨 있어 흥미로웠다.
코스 메뉴는 일반적인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에피타이저는 트러플, 골드 아스파라거스, 초당옥수수 등 고급 식재료가 아낌없이 들어갔다. 소스도 원재료의 식감·풍미를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적절히 활용됐다. 덕분에 '안티 비건'인 기자도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메인 메뉴인 파스타·스테이크는 대체육 특유의 이질적 맛이 덜했다. 식감은 실제 고기와 유사했다.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대체육 요리라는 사실을 알 수 없을 듯 했다.
식사가 끝나기까지는 약 1시간 30분이 걸렸다. 메뉴 하나하나의 양은 많지 않았지만, 요리 종류가 다양해 포만감을 느꼈다. 비슷한 가격대 일반 레스토랑 코스 요리 대비 '가성비'도 높았다. 정서적 만족도 얻을 수 있었다. 메뉴가 나올 때마다 소개 메모를 읽으며 요리에 담은 스토리를 경험했다. 궁금한 점을 질문하면 자세한 설명도 들을 수 있어 셰프의 의도에 공감할 수도 있었다. '식사'라는 경험 기준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포리스트 키친에 담긴 농심의 '노림수'
포리스트 키친에 담긴 농심의 전략은 영리하다. 비건 시장은 성장하고 있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2008년 15만명 수준이었던 비건 인구는 지난해 250만명까지 늘었다. 환경·동물권 등 사회적 가치에 대한 관심도 지속되고 있어 시장 성장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체육'은 아직 저가 제품이 대부분이다. 식감·품질 등의 완성도가 다소 부족해서다. 때문에 포리스트 키친보다 먼저 운영 중인 상당 수 비건 레스토랑이 '가성비 메뉴'를 주력으로 삼고 있다.
파인 다이닝 코스 메뉴에 대체육을 활용한다면 이런 단점을 희석시킬 수 있다. 소비자의 경험이 대체육에 집중되는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체육에 대한 인식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케팅 효율성도 높다. 포리스트 키친의 '핵심'은 대체육이라는 '소재'보다 비건 파인 다이닝이라는 '경험'이다. 따라서 색다른 경험을 즐기는 MZ세대 소비자들에게 더 높은 관심을 받을 수 있다.
농심은 이런 포리스트 키친의 강점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먼저 구체적 매출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다. 당분간 2호점 개설도 검토하지 않는다. 홍보에는 TV CF 등 대형 채널보다 SNS 인플루언서를 적극 활용한다. 여기에 김 총괄셰프의 노하우와 베지가든의 기술력을 활용한 참신한 신메뉴를 출시해 시너지를 낸다. 포리스트 키친을 통해 일종의 '희소성 마케팅'을 펼치겠다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베지가든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나가는 것이 최종 목표다.
비건 시장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CJ제일제당·풀무원·신세계푸드 등 기업들이 앞다퉈 관련 브랜드를 론칭하고 있다. 라면·스낵이 주력이었던 농심이 이들과 경쟁하려면 '차별화 포인트'가 반드시 필요하다. 직접 경험해 본 포리스트 키친은 이를 만족시켰다. 파인 다이닝과 대체육이라는 이질적 가치를 잘 어울리도록 했고, 경험도 만족스러웠다. 이것이 비건 시장에서 농심의 '다음 스텝'을 궁금하게 만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