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범의 '원소주'가 온라인 판매를 재개한다. 지난 4월 20일 온라인몰 주문을 중단한 지 약 4개월 만이다. 원소주 판매가 중단된 사이 여러 기업들은 잇따라 '미투' 제품을 내놨다. 2030세대에서 프리미엄 소주의 성장 가능성을 엿봐서다. 최근에는 하이트진로도 새 증류식 소주 라인업을 선보였다. 프리미엄 소주 열풍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원소주가 뭐길래
원소주는 가수 박재범이 만든 '원스피리츠'에서 제조한 증류식 소주다. 인기 가수 박재범이 이름만 빌려준 것이 아닌, 직접 회사를 차려 소주를 만들고 홍보에 나서 관심을 모았다. 온라인몰 판매를 시작한 지 1분여 만에 일 한정 수량 2000병이 완판됐다. 일반 소주보다 10배 가까이 비싼 1만4900원이지만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국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지난 4월 20일 판매를 일시 중단했다.
원소주는 이후 GS25와 손잡고 '원소주 스피릿'을 내놨다. 옹기숙성 과정을 생략한 '보급형' 제품이다. 부산 팝업스토어에서만 1주일 동안 3만병을 판매했다. 전국 편의점 판매를 시작한 뒤엔 두 달여 만에 100만병이 팔려나갔다. 증류식 소주 시장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주류업계 전체로도 지난해 '곰표 밀맥주' 이후 '오픈런'을 만들어 낸 첫 주류 제품이 됐다.
원소주 흥행의 가장 큰 요인은 당연히 박재범이다. 인기 가수인 박재범이 술을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이슈가 됐다. 이미 해외에서는 UFC 슈퍼스타 코너 맥그리거, 제이지·비욘세 부부, 헐리우드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 조지 클루니 등이 자신의 주류 브랜드를 론칭, 성공한 바 있다. 박재범은 여기에 '전통주'를 입혔다. 한국 전통의 술임에도 희석식 소주와 맥주 등에 자리를 내준 '증류식 소주'를 알리고 싶다는 '애국' 요소까지 더했다.
박재범이 쌓아 온 이미지도 원소주에 그대로 접목됐다. 전통식 소주임에도 '힙'한 디자인을 적용했다. '전통주는 촌스럽다'는 2030의 편견을 깼다. SNS 등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알리는 2030에게 패키지는 맛만큼이나 중요하다. 맛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다. 희석식 소주에 길들여진 2030에게 증류식 소주의 깔끔한 뒷맛은 색달랐다. 남들과 다른 것, 특별한 것을 찾는 MZ세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우리도 해볼까…전통소주 릴레이
원소주가 인기를 끌자 여타 업체들도 증류식 소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CU다. GS25가 원소주로 큰 인기를 끄는 것을 유심히 지켜봤다. CU는 '뉴요커가 만든 전통 소주'로 이름을 알린 '토끼소주'를 내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난 7월에는 배우 김보성과 손잡고 증류식 소주 '의리남'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경남 창녕의 양조장과 손잡고 자체 증류식 소주 '빛 24'도 선보였다. 9월에는 셰리 오크통에 숙성한 '빛32오크'도 출시할 예정이다.
박재범의 성공을 지켜본 다른 연예인들도 자신의 이름을 건 소주를 내놓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가수 임창정은 충북 청주의 전통주 제조사와 손잡고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 '소주 한 잔'을 내놓는다. 임창정은 앞서 세븐일레븐과 콜라보레이션 막걸리를 선보여 가능성을 타진한 바 있다. 배우 김민종도 소주 제품을 연내 선보일 계획이다.
이미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인 일품진로를 2000년대 중반부터 생산해 온 하이트진로도 반격에 나섰다. 하이트진로는 이달 초 이천쌀 100%·3번 증류를 강조한 '진로 1924 헤리티지'를 출시했다. 기존 프리미엄 소주보다 상위 등급의 '슈퍼 프리미엄'을 콘셉트로 잡았다. 가격도 병 당 10만원에 달한다. 1만원대 증류식 소주 경쟁자보다는 고급 위스키 등을 겨냥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한 잔을 마시더라도 가치있는 소비를 지향하는 MZ소비자들의 니즈를 반영했다"며 "싱글몰트 위스키, 와인 대중화에 이어 최근에는 증류주 시장에 대한 니즈와 관심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증류식 소주 열풍, 얼마나 갈까
원소주의 성공은 2030세대에서도 증류식 소주가 통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원소주를 시작으로 젊은 감성의 증류식 소주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새로운 시장이 형성될 것이란 기대도 높다. 그간 증류식 소주의 단점으로 여겨졌던 높은 도수도 보드카·진·위스키 등 고도수 증류주를 토닉워터 등에 희석해 마시는 것에 익숙한 2030에게는 오히려 장점이 됐다.
한병에 1만원이 넘는 높은 가격도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2030에게 큰 걸림돌은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비교적 고가인 증류식 소주는 출고가가 1000원 안팎인 저가 주류인 희석식 소주보다 부가가치가 높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니즈가 맞아 떨어지는 시장이다.
실제 프리미엄 소주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CU에 따르면 최근 3개월 간 프리미엄 소주 카테고리의 매출신장률은 6월 75.1%, 7월 68.9%, 8월 99.4%로 우상향 중이다. 특히 젊은 층에서 반응이 뜨겁다. 이달 들어 프리미엄 소주를 구매한 연령대 비중은 20대 31.6%, 30대 35.1%로 2030이 전체의 3분의 2 이상이다.
물론 우려도 있다. 프리미엄 소주 시장이 지나치게 '연예인 술' 마케팅에 몰입하면서 품질은 등한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품질에서 만족을 주지 못하면 소비자는 곧바로 새로운 트렌드를 찾아 떠날 수 있다. 지금의 '증류식 소주 트렌드'를 그저 즐기기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프리미엄 소주 시장이 급격히 확대된 만큼 트렌드가 지나가면 정체가 올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국내 소주 제조사들도 프리미엄 라인으로 입지를 다져가고자 하는 만큼 증류주 카테고리 자체는 어느 정도 시장이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