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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국감서 지적' CJ제일제당의 일리 있는 항변

  • 2022.10.06(목) 07:59

"쌀값 폭락하는데 수입 쌀 썼다"
맛 개선·정부 비축미 감소 영향
'망신주기' 아닌 본질적 접근 필요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지난 4일 농림축산식품부 국정감사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대어(?)는 CJ제일제당이었습니다. 임형찬 부사장 등이 직접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주요 쟁점은 CJ제일제당 가공식품류에 사용하는 수입산 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국내 쌀값이 폭락 중인데 수입산 쌀을 쓰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라는 것이었죠. 여러 의원의 질타에 임 부사장은 진땀을 뺐습니다.  

CJ제일제당이 일부 가공밥의 쌀을 국내산에서 수입산으로 대체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3월 '햇반컵반' 등 일부 제품의 쌀을 미국산으로 변경했습니다. 지난 2020년 냉동·볶음밥의 쌀도 국산에서 수입산으로 바꿨죠. 간판 제품인 햇반은 국산 쌀을 씁니다. 현재 CJ제일제당의 수입 쌀 사용 비중은 전체의 3% 정도입니다.

물론 이 3%도 적은 양은 아닙니다. 다만 국감은 왜 수입 쌀을 썼는지 그 배경은 자세히 들추지 않았습니다. 의원들의 질타만 오갈 뿐이죠. 한국 국감은 보통 혼을 내는 자리니까요.  '호통'과 '면박'이 오갑니다. 심도 있는 논의는 보기 힘듭니다. 기업의 '말'은 공허 속 메아리가 됩니다. 

사실 햇반컵반의 수입 쌀 변경은 맛과 연관이 깊었던 일입니다. 쌀은 길이에 따라 '단립종', '중립종', '장립종'으로 구분됩니다. 한국 쌀이 대표적인 단립종입니다. 길이가 짧고 찰기가 많습니다. 미국산 쌀은 찰기가 덜한 중립종입니다. 장립종은 찰기가 없는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의 길쭉한 쌀입니다. 요리사도 어떤 음식을 하느냐에 따라 쌀을 달리 씁니다. '햇반 컵반'은 소스가 동봉된 제품입니다.

/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찰기가 많은 쌀로 볶음밥·덮밥을 하면 맛이 덜합니다. 눅진하고 소스가 밥에 잘 베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CJ제일제당은 햇반컵반의 일부 제품을 중립종인 수입 쌀로 교체합니다. 물론 소스의 비중이 큰 일부 제품에 한해서였습니다. 이는 소비자 반응 등을 반영한 결과였습니다. 음식의 입맛을 살리기 위해 쌀의 품종을 바꿨던 셈입니다.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었던 거죠.

그 외의 가공밥은 어떨까요. 주로 주먹밥과 볶음밥에 쓰이는 '냉동밥'입니다. 냉동밥은 햅쌀을 쓰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냉해동 제품에 햅쌀을 쓰면 햅쌀만의 장점이 사라지니까요. 햅쌀은 당해 갓 수확한 쌀을 말합니다. 이 때문에 CJ제일제당 등 식품기업들은 냉동밥의 원료로 주로 보관 기간 2~3년 이상 된 정부 국산 비축미를 사용해 왔습니다. 

정부는 매년 쌀 수급 조절을 위해 쌀을 수매해 비축해 둡니다. 이 중 일부 물량을 가공식품용으로 판매합니다. 이 가격은 1㎏당 800~1000원 정도로 매우 쌉니다. 일반 국산 쌀의 절반 가격입니다. 그동안 냉동밥의 가격이 저렴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2020년을 기점으로 CJ제일제당 등 기업들은 이를 수입산으로 바꿉니다. 가장 큰 원인은 정부 비축미의 감소였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산 정부미 공급량은 2020년 11만톤에서 지난해 7만톤으로 감소했습니다. 올해 계획된 공급량은 5만톤에 불과합니다. 원료 공급이 급감한 거죠. 정부는 계속 비축미를 줄이고 있습니다. 보관 등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CJ제일제당 등 기업들은 냉동밥류에 수입산 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가격을 인상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실제로 당시 쌀가공협회에서도 기업 등에 '정부미가 부족하니 대체원료 물색을 권장한다'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기업들은 이를 잘 따랐던 겁니다.

쌀값이 폭락하고 있지만 재배면적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기업들이 쓰는 '수입 쌀'이 뭔지도 구체적으로 뜯어봐야 합니다. 사실 이 수입 쌀도 크게 보면 '정부미'에 속합니다. 정부는 매년 외국으로부터 41만 톤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세계무역기구(WTO)와 합의에 따른 조치입니다. 매년 쌀 소비가 감소하면서 이 역시 처리가 곤란한 상황입니다. 기업이 냉동밥에 쓰는 수입 쌀은 엄밀히 말해 이 '수입해온 쌀'을 쓰는 겁니다. 

이처럼 CJ제일제당 등 식품기업의 수입 쌀 사용은 여러 이유가 합쳐진 결과입니다. 입맛의 변화를 따른 것도 있었고요. 가격적인 측면을 고려한 것도 있습니다. 다만 이를 국내 쌀값 문제와 연관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쌀값 폭락의 원인이 기업에 있는 것도 아니고요.

쌀값 폭락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공급과잉에 있습니다. 이를 간과하고 식품기업 몇 곳이 국산 쌀을 쓰면 마치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겁니다. 쌀의 공급을 줄일 근본 대책이 필요합니다. 전분처럼 쌀을 쓸 수 있는 분질미(가루쌀)의 연구 개발, 타 작물 재배 유도 등의 대안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아직 관련 논의조차 진행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죠.

지지율이 낮은 현 정부 입장에서 국감은 호재일 수 있습니다. 여러 문제를 기업 쪽으로 전가하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더이상 '보여주기 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비자와 농민, 기업이 피해를 보게 될 겁니다. 지난 농식품부 국감은 정부의 과도한 망신주기였을까요, 안일한 기업의 변명 자리였을까요. CJ제일제당의 일리 있는 항변을 곱씹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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