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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맛'에 사던 PB…고물가에 '대세' 됐다

  • 2022.10.14(금) 06:50

가격 경쟁력 높은 자체 브랜드 인기
품질도 일반 브랜드 제품 못지 않아
납품업체와의 '갑질' 문제는 해결해야

편의점 주요 PB 브랜드./그래픽=비즈니스워치

PB(자체 브랜드)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기존 인기 브랜드들이 연이어 가격 인상에 나서는 등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가성비를 강조한 PB가 재평가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격을 낮추는 데 급급해 품질 관리에 실패했던 예전의 PB와 달리 최근에는 제품 경쟁력도 갖추면서 유통사들의 PB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싸면 장땡? 가격·품질 다 잡았다

당초 PB는 가성비 높은 제품을 찾는 소비자를 겨냥한 일종의 틈새상품이었다. 기존 제품들의 가격을 기준으로 그보다 저렴한 가격을 책정한 뒤 그에 맞춰 제조사를 찾고 제품을 만들었다. 품질이 우수하기 어려운 구조다. 저렴한 가격에 PB를 집어들었던 소비자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떠올랐다. 

가격에만 초점을 맞춰 제품을 내놨던 기업들도 곧 문제를 깨닫고 리브랜딩에 들어갔다. 품질은 기존 브랜드 제품들만큼 끌어올리되 가격은 유통 과정이 줄어든 만큼 경쟁력이 있어야 했다. 일부 PB들은 아예 가격 경쟁을 포기하고 품질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했다. 가격을 낮추는 게 아닌, 같은 가격으로 프리미엄 제품을 내놓는다는 전략이다.

쿠팡의 조미김 PB '곰곰 광천김'./사진제공=쿠팡

PB가 품질을 끌어올리면서 기존 유명 브랜드 제품을 뛰어넘어 매출 1위를 차지하는 스타 PB도 나오고 있다. 쿠팡의 PB인 '곰곰 광천김'은 쿠팡 내에서 조미김 1위 브랜드다. 이미 주부들 사이에선 '쿠팡 필수템'으로 널리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조미김에 쓰는 저렴한 옥배유(옥수수유) 대신 카놀라유를 사용했다. 지난해 매출 130억원을 돌파했고 올해는 2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GS25의 빵 PB인 '브레디크'의 생크림빵 4종은 지난달에만 150만개가 팔렸다. GS25 내 빵 판매량 1, 2, 5, 7위를 차지했다. 지난 2년간 브레디크 생크림빵에 사용한 생크림만 350톤에 달한다. 지난 8월엔 누적 판매량 3000만개를 돌파했다. 가격은 다른 양산빵들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비싼 수준이지만 전문점 못지 않은 맛을 구현하며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남들 가격 올릴 때 '동결'

그렇다고 PB들이 가성비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PB의 가성비가 재부각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93으로 전년 대비 5.6% 올랐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올해 들어 꾸준히 오름세를 이어가며 5월부터 5개월 연속 5%를 웃돌고 있다. 농심·오뚜기·오리온 등 주요 식품 기업들도 올해 대규모 가격 인상에 나섰다. 농심은 올해에만 2차례 가격을 올렸다. 

기존 브랜드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가격 인상에 나서는 사이 PB들은 가격 단속에 나섰다. 이마트는 지난 9월 자체 브랜드인 노브랜드와 피코크 제품 2200여개의 가격을 연말까지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노브랜드·피코크 점포 매출은 전년 대비 6.4% 증가했다. 일반 브랜드 제품 매출 증가율 1.4%를 크게 웃돌았다. 고물가 기조에 PB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자 가격 동결을 통해 기세를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이마트의 PB '피코크'./사진제공=이마트

이밖에도 대형마트와 편의점들은 PB를 통해 김치와 라면 등 생활필수식품 초저가 정책을 펼치고 있다. CU의 '라면득템'은 봉지당 가격이 380원에 불과하며 홈플러스는 '물가안정365' 프로젝트로 먹거리·생필품 가격을 최저가로 유지하고 있다.

14개 브랜드, 4200여개 상품을 PB로 운영하는 쿠팡 역시 PB 제품들의 가격 경쟁력 유지에 힘쓰고 있다. 쿠팡에 따르면 곰곰·코멧·탐사 등 쿠팡의 PB는 유사 브랜드 제품보다 최대 50% 저렴하다. 상표권·마케팅 비용 등을 아낀 만큼 가격을 낮췄다는 설명이다. 

'PB=갑질' 이미지…상생 PB 시대 올까

PB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낮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납품업체 쥐어짜기가 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들이 PB상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에 단가 후려치기 등 소위 '갑질'을 자행한 사례가 수차례 적발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GS리테일이 PB 신선식품을 제조하는 업체들에 성과장려금·판촉비·정보제공료 등을 받았다는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약 24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최근 인기를 끈 '반값 치킨'도 치킨을 튀기는 델리 코너 직원들이 과중한 업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델리 코너를 이용하면서도 직원을 추가로 고용하지 않아서다. 실제 반값 치킨 열풍이 한창이던 지난 8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는 반값치킨 도입 후 업무가 지나치게 늘었다며 인력 충원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쿠팡 PB를 제조하는 중소 제조사 통계./사진제공=쿠팡

PB를 운영하는 유통사들도 최근에는 중소 제조사와의 상생을 강조하고 있다. 협력사 관리는 물론, 소비자들이 '갑질 기업' 소비를 거부하고 착한 기업 제품을 찾는 윤리 소비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유통사들도 내부 지침을 만들고 협력사들의 불만을 받는 신문고를 여는 등 다양한 '갑질 방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또한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 제조사에 물량을 보장해 주면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 안정적인 운영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래 협업할 수 있는 업체와 상생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PB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며 "고객 만족은 물론 잠재력을 갖춘 중소 제조사들이 매출 증진과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늘려 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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