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는 가장 보수적인 산업군 중 하나로 꼽힌다. 오프라인 매장을 기반으로 하는 곳이 대부분인 데다 소비자들 역시 쉽게 도전에 나서지 않는다. 출시된 지 수십년 된 제품들이 여전히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는가 하면 계절이 바뀌면 매년 똑같은 '정기 세일' 플래카드가 휘날린다.
하지만 마케팅에 있어서만큼은 진보의 최전선에 서 있는 곳이 유통업계다. SNS는 물론 메타버스, NFT 등 가장 '핫'한 아이템을 빠르게 이용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은 미래가 아닌 일상이다.
그 중에도 현대백화점은 그룹 차원에서 디지털 전환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20년부터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주도 하에 그룹 차원의 디지털 전환을 시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디지털혁신담당을 신설했고 올 초 그룹의 디지털전환 전략을 총괄하는 DT추진실로 확대됐다.
메타버스·NFT·AI 등 신기술을 이용한 마케팅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중장년 고객이 많은 백화점의 약점을 해소하기 위해 10~30대가 주로 이용하고 관심을 갖는 디지털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메타버스 면세점부터 NFT까지
현대백화점은 메타버스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이미 제페토, 히든 오더 등 여러 메타버스 플랫폼에 간판을 올려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진행했다. 지난달에는 현대백화점면세점이 메타버스 전문 기업 올림플래닛과 MOU를 체결하고 메타버스 플랫폼 '엘리펙스'에 면세점을 오픈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단순히 매장을 만들어 브랜드를 노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엘리펙스 내 현대백화점면세점 매장에서 면세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메타커머스(가상공간 상거래)' 서비스를 선도적으로 구축한다는 방안이다.
NFT(대체불가토큰) 시장 확장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6월엔 현대백화점이 발급하는 NFT를 저장·관리할 수 있는 전자지갑 'H.NFT'를 출시했다. 지난해엔 더현대서울과 판교점에서 NFT 전시를 열었고 업계 최초로 자체 제작한 NFT 아트 255개도 선보였다. 또 메타버스 매장과 연계한 버추얼 쇼룸도 준비 중이다.
VR(가상현실) 역시 현대백화점이 주목하고 있는 주요 신기술이다. 더현대닷컴에서는 VR을 이용해 집에서 백화점 매장을 둘러볼 수 있는 '프리미엄 쇼룸'을 운영하고 있다. 오프라인 점포의 최대 단점인 직접 방문에 대한 부담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AI 백화점
더현대서울 5층에는 업계 최초의 무인 매장 '언커먼스토어'가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IT전문 기업 현대IT&E와 아마존웹서비스(AWS)가 협업해 만든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다. QR코드를 인식해 매장에 입장한 후 상품을 가지고 나가면 자동으로 결제가 된다. 천장에 설치된 40여대의 AI 카메라와 150여개의 무게 감지 센서가 고객과 상품 이동을 추적하고 무게 변화를 읽어낸다.
마케팅 문구 제작에도 AI를 활용한다. AI 카피라이팅 시스템 '루이스'를 이달부터 도입했다. 이 역시 업계에서 현대백화점이 최초다. 루이스는 초대규모 AI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사람처럼 문장과 문맥을 이해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
문학작품을 사랑하고 마케팅 트렌드에 관심이 많은 20대 청년이라는 콘셉트다. 현대백화점의 마케팅에 맞춘 시스템 구현을 위해 현대IT&E가 직접 개발, 현대백화점의 3년간 광고 카피와 판촉 문구 등을 학습시켰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디지털 콘텐츠에 관심이 많은 MZ세대 고객에게 차별화된 콘텐츠를 선보여 미래 잠재 고객을 유입시키고자 한다"며 "업계의 디지털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이미지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