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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내 사전에 음주운전 없다"…방지장치 설치해 봤더니

  • 2023.07.05(수) 07:56

오비맥주 음주운전 방지 캠페인
미국·스웨덴 등에서는 보편화
미량 음주시에도 시동 안 걸려

차량에 설치한 음주측정기. 성인 손바닥만한 사이즈다./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세상엔 여러 범죄가 있지만 음주운전만큼 쉽게 저지를 수 있으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범죄도 드물 것이다. 엄연히 징역과 벌금이 규정된 범죄임에도 매일 수백 명이 음주단속에 적발된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음주운전 단속 적발 건수는 13만283건, 음주운전 사고 발생 건수는 1만5059건이다. 적발되지 않은 음주운전을 포함하면 실제로는 연 수십만명이 음주운전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음주운전을 막기 위한 정부·민간의 노력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속적인 캠페인의 영향으로 이제 대놓고 "음주운전 좀 할 수 있지"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처벌도 점점 강화되고 있다. 이달부터는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내거나 3회 이상 음주운전을 할 경우 차를 압수·몰수하는 정책도 시행된다.

하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일 뿐, 근본적인 음주운전 방지 대책은 되지 못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음주운전 자체를 방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근 오비맥주와 도로교통공단은 음주 시 차량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음주운전 방지장치'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차량에 음주측정기를 연결해 운전자가 알코올 농도를 측정한 후 비음주 상태일 때만 시동이 걸리도록 하는 장치다.

미국과 스웨덴 등 주요 선진국들에서는 음주운전 이력이 있는 운전자의 차량에 이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한다. 국내 도입을 바라는 목소리도 많다. 음주운전 방지 장치가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제로'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직접 테스트해 봤다.

음주단속이 당신과 함께 하기를

음주운전 방지장치의 매커니즘은 간단하다. 휴대용 음주측정기를 차량 시동부와 연결해 시동을 걸 때마다 음주 상태를 측정한 후 알코올이 검출되지 않으면 시동이 걸리는 방식이다. 음주단속 경찰이 상시 조수석에 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지난달 15일 도로교통공단 서울지부에 방문해 측정기를 설치했다. 설치에는 약 30분이 걸린다. 설치 후에는 장치를 차량에 거치해 두고 시동을 걸 때마다 사용해야 한다. 일반적인 음주 측정을 할 때처럼 기기에 입을 대고 숨을 불어넣으면 된다. 

음주측정기에 숨을 불어넣으면 알코올 농도를 측정한 후 결과가 나타난다. 다소 시간이 걸리는 편./영상=김아름 기자 armijjang@

다만 시동을 끈 후 30분 이내에 다시 운전을 할 경우엔 재측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주유, 휴게소 이용 등 짧은 주정차 후의 운전 편의를 고려한 것이다. 입을 직접 대는 노즐은 1회 사용 후 교체할 수 있도록 해 위생적인 면도 해결했다.

기기가 음주 상태로 인식하는 알코올 수치는 0.02%다. 음주운전에 해당되는 0.03%보다 조금 낮다. 측정기 기준을 음주단속 기준보다 엄격하게 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자 함으로 보인다. 

맥주 한 잔도 "NO"

어느 정도의 음주량이면 측정기가 시동을 걸지 않을까. 다양한 음주 상황을 테스트해 봤다. 혹여라도 시동이 걸리고 음주운전을 하게 될 수 있을 상황을 피하기 위해 모든 테스트는 주차장에 정차한 차에서 술을 마시지 않은 동행인과 함께 했고 기어는 P에 둔 채 시동이 걸리는지만을 확인했다.

기자의 평소 주량인 소주 2병을 마신 후 2시간이 지난 다음 시동을 걸려고 했을 때는 수차례의 시도에도 전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측정기는 기준 수치가 넘으면 붉은 LED와 함께 테스트에 실패했다는 문구가 뜬다. 음주 후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게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의미다. 테스트에 실패할 경우 대리운전이나 가족이 운전할 경우를 위해 3분 후 다시 측정이 가능하다. 

음주 후 약 8시간이 지난 오전 8시께 다시 한 번 시동을 걸려고 해 봤다. 자고 일어났음에도 숙취가 남아있다는 느낌이었다. 역시나 음주측정기는 '숙취 운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2시간 이상 지난 오후 1시께가 돼서야 차량에 시동이 걸렸다. 많은 음주를 한 다음날 숙취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의 운전도 '불허'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알코올이 검출되면 테스트에 실패했다는 문구가 뜨고 3분 동안 재측정을 할 수 없다./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소량의 음주는 어떨까. 맥주 한 캔을 마신 뒤 10분 후, 1시간 후에 각각 시동을 걸어 봤지만 음주 상태로 나타나며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맥주 한 캔은 괜찮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머쓱해질 순간이다. 일반적으로 맥주 1캔을 마시고 나면 성인 남성 기준으로 2시간 이상이 지나야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2% 아래로 떨어진다.

무알코올 맥주 역시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일부 제품의 경우 미량의 알코올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카스0.0의 경우 알코올이 0.05% 미만 함유돼 있다. 

카스 0.0을 3캔 마신 후 시동을 걸어 보니 문제 없이 시동이 걸렸다. 알코올이 미량 들어있다고는 하지만 비알코올 맥주에 포함된 양으로는 혈중 알코올 농도를 크게 높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인 남성 기준 150캔 이상을 마셔야 일반적인 맥주 1캔의 알코올을 섭취하게 된다. 무알콜 맥주를 마신 후 운전을 하는 것은 '음주운전'이 아니다.

조금 불편하지만 안전을 위해

물론 불편함은 있다. 시동을 걸 때마다 노즐을 바꿔 끼우고 숨을 불어넣어야 하며, 측정 자체에도 약 10초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차 내부에 손바닥만한 측정기를 계속 거치해야 하는 점도 미관을 생각하면 달갑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음주측정기를 사용하게 한 후 본인이 운전하는 '적극적 음주운전자'를 걸러낼 수 없다는 것도 아쉽다. 미국에서는 이런 경우를 줄이기 위해 운전 중에도 주기적으로 측정을 하도록 하는 기기를 도입했지만 시내주행이 많은 국내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오비맥주는 지난해부터 음주측정기 도입을 위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사진제공=오비맥주

하지만 이 작은 불편함이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음주운전을 미리 막아줄 수 있다면, 그럼으로써 안전한 운전을 보장할 수 있다면 다행인 일 아닐까. 특히 술기운에 젖어 자신도 모르게 운전대를 잡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음주측정기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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