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거품은 7대3이 중요합니다. 탄산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는 최적의 비율입니다. 삿포로 잔에는 이런 별 모양이 있죠? 이 '스타라인'이 기준이라고 보면 됩니다."
지난 12일 오후 찾은 서울시 마포구 홍대거리에 위치한 '삿포로 프리미엄 더 퍼스트 바'. 브라이언이라고 적힌 명찰을 단 전문 서버가 정성스럽게 맥주를 따라준다. 맥주와 거품의 비율을 갈라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그는 "컵의 온도 역시 맥주와 알맞게 차갑게 유지되어야 하는데, 약 10초의 '칠링' 작업을 진행 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맥주에 전문가의 설명이 곁들여지는 이곳은 고급 비어샵이 아니다. 일본 맥주 삿포로의 국내 첫 팝업스토어인 '삿포로 더 퍼스트 바'다. 삿포로는 이를 위해 야키토리(닭고기 꼬치) 전문 브랜드 잔잔(ZANZAN)과 협업했다. 지난달 24일 이곳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취향에 따라 두 가지 버전의 삿포로 맥주가 제공되는 등 재미요소가 가득했다.
거칠거나 부드럽게
매장은 오후 8시 평일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적잖았다. 팝업스토어는 총 2층 규모다. 1층은 서서 맥주를 즐기는 스탠딩 매장으로 구성됐다.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다. 전문 서버가 따라주는 샷포로 생맥주를 즐길 수 있는 '스탠딩바', 방문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포토부스', 삿포로 캔 '네이밍 각인 서비스'가 제공되는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백미'는 스탠딩 바다. 전문 서버가 두 가지 버전의 삿포로 맥주를 직접 따라준다. '더 퍼스트 스타'와 '퍼펙트 밸런스'다. 따르는 방식에서 생긴 차이다. 더 퍼스트 스타는 '한번 따르기'다. 거친 거품과 상쾌한 목 넘김이 특징이다. '퍼펙트 밸런스'는 두 번 따른다. 맥주를 먼저 따르고 곧바로 크리미한 거품을 따른다. 서버는 "퍼펙트 밸런스가 좀 더 모던한 스타일로 주로 여성들이 찾는다"며 "더 퍼스트 스타는 전통적인 거친 매력이 있다"고 전했다.
맥주는 곧바로 잔에 담기지 않는다. 컵을 차갑게 만들고 세척하는 '칠링' 과정을 거친다. 잔의 온도를 맥주와 맞추고 내부 불순물을 세척하기 위해서다. 컵도 일반 맥주잔이 아니다. 1.1㎜의 얇은 두께가 특징인 삿포로 전용잔이다. 실제로 잔을 쥐고 있으면 맥주의 시원함이 손바닥에 그대로 전해진다. 서버는 "맥주를 따랐을 때 기포가 올라오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컵 안에 미세먼지 같은 작은 불순물도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술과 함께 안주도 제공된다. '트러플 감자 샐러드' '닭연골 가라아게' '크림치즈 곶감' 등이다. 1층 입장 시 1인 1세트 한정으로 주문할 수 있다. 가격은 1만3000원으로 괜찮은 구성이었다. 크림치즈 곶감을 시켜서 먹어봤다. 곶감의 눅진한 달콤함과 맥주의 조합이 꽤나 잘 어울렸다. 특히 크리미함이 특징인 '퍼펙트 밸런스'와 궁합이 좋다고 느껴졌다.
이름도 새겨드립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잔잔(ZANZAN)이 운영하는 라운지가 펼쳐진다. 1층보다 좀 더 편하게 요리와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일반 술집처럼 먹고 마시면 된다. 소갈비살 꼬치 등 잔잔 만의 메뉴를 맛볼 수 있다. 2층은 별도의 예약 없이 입장이 가능하다. 실제로 사전 예약 없이 방문한 일반 손님이 다수였다. 매장은 웨이팅 고객이 생길 만큼 붐볐다.
먹고 마시는 것 이외에도 삿포로 팝업스토어는 색다른 재미요소가 많다. 네이밍 각인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삿포로 실버컵에 원하는 문구를 새길 수 있다. 직원에게 10자 아내의 문구를 적어주면 레이저 기계를 통해 글자가 각인된다. 친구들과 이름을 새기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외에도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지정된 해시태그를 달면 업로드한 사진을 출력할 수 있는 포토부스도 있다. 삿포로를 콘셉트로 삼은 굿즈도 얻어갈 수 있다.
이날 삿포로 팝업스토어를 찾은 30대 직장인 A씨는 "평소 삿포로 맥주를 잘 먹지 않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삿포로 팝업 소식을 접하고 찾아왔다"며 "맥주를 따라주는 과정도 신기하고 맛있어서 '퍼펙트 밸런스'를 두 잔이나 먹었다"고 웃어 보였다. 이어 "잘 알지 못하는 브랜드였는데, 아무래도 이번 방문을 통해 관심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팝업' 꽂힌 일본 맥주
실제로 삿포로의 주 타깃은 2030대 한국의 젊은 층이다. 한국 첫 팝업 장소로 홍대를 점찍은 이유이기도 하다. 삿포로 관계자는 "4050세대는 2030세대가 마시는 맥주를 맛볼 수 있지만, 2030세대는 나이든 세대가 마시는 맥주를 선호하지 않는다"면서 "그만큼 한국의 맥주 시장은 2030세대가 이끄는 시장으로 이들에게 익숙한 곳을 골랐다"고 했다.
삿포로의 '팝업 마케팅'은 영리해 보였다. '일본'이라는 거부감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한국의 젊은 층을 공략할 수 있어서다. 이들에게 '일본 맥주'이기 이전에 '맛있는 맥주'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특히 MZ세대는 실용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반일과 소비는 별개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지난 2019년 시작됐던 '일본 불매운동'이 최근 동력을 잃은 원인이다. 삿포로가 팝업에서 브랜드 강조보다도 '좋은 맥주'라는 본질에 집중했던 이유다.
실제로 주요 일본 맥주 업체들은 국내에서 팝업스토어를 열고 있다. 기린을 제외한 삿포로, 아사히, 산토리 3사가 총출동했다. 롯데아사히주류는 지난 11일부터 신촌 현대백화점에서 '아사히 슈퍼드라이 생맥주캔'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산토리맥주도 오비맥주와 용산구에서 다음달 4일까지 ‘산토리×야키토리 쿠이신보’ 팝업스토어를 운영할 계획이다.
주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국내외 주요 주류 업체들이 신제품 출시 등을 이유로 팝업스토어를 공격적으로 열고 있는데, 일본 맥주도 맞불을 놓으며 존재감 높이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팝업은 기본적으로 재미가 우선되는 공간으로 맛이나 서비스 경험이 중요하다“며 "일본 맥주가 노리는 것도 이런 부분일 것"이라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