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생활건강이 2022년 인수한 미국 화장품 회사 '더크렘샵(The Creme Shop)' 창업자와의 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번 승소로 더크렙샵의 100% 지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북미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900억에 완전 자회사로
LG생활건강은 조만간 더크렘샵 콜옵션(매수청구권) 행사를 통해 잔여 지분 35%를 추가 취득할 예정이다. LG생활건강이 지난 28일 국제상업회의소(ICC)로부터 더크렘샵에 대한 콜옵션 행사가 유효하다는 판결을 받으면서다. 이는 지난해 8월 더크렙샵 기존 주주 김선나(Sunna Kim) 씨와 김인실(Insil Kim) 씨가 제기한 풋옵션(매도청구권) 행사 유효 확인 청구에 대한 판결이다. 김선나 씨는 2012년 미국에서 더크렘샵을 설립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2022년까지 더크렘샵의 대표를 맡았던 인물이다.
LG생활건강은 더크렘샵의 최대주주다. 지난 2022년 4월 김선나 씨 등 기존 주주들로부터 더크렙샵의 지분 65%(65만주)를 1억2000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1485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주주간 계약에는 기존 주주가 보유한 잔여 지분 35%에 대한 풋옵션과 콜옵션이 모두 포함됐다. 즉 기존 주주들은 자신의 지분을 LG생활건강에 추가로 팔 수 있는 권리를, LG생활건강은 기존 주주들의 지분을 추가로 사들일 권리를 가졌다. 계약상 옵션 행사가액 상한선은 1억3000만달러였다.

LG생활건강은 2023년 11월 이 콜옵션을 행사해 기존 주주의 지분 35%를 모두 사들이기로 했다. LG생활건강이 제시한 가격은 6680만달러(약 919억원)였다. 하지만 기존 주주들은 LG생활건강의 옵션 행사를 거부했고 LG생활건강은 ICC에 콜옵션 행사가 유효함을 확인하는 중재 신청을 냈다. 그러자 기존 주주 측은 지난해 8월 자신들의 풋옵션을 행사하겠다며 ICC에 중재를 요청했다. 이들이 제시한 가격은 옵션 행사가액 상한선인 1억3000만달러(약 1785억원)였다.
ICC 중재판정부는 기존 주주측의 풋옵션이 주주간 계약상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 유효하지 않다고 결정했다. 반면 LG생활건강의 콜옵션 행사는 계약상 요건을 모두 충족해 유효하다고 봤다.
LG생활건강은 이번 중재 판결에서 승리하면서 잔여 지분 35%에 대한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콜옵션 행사가액, 즉 6680만달러에 더크렘샵의 잔여 지분을 모두 취득할 예정이다. 지분 취득이 완료되면 더크렘샵은 LG생활건강의 100% 자회사가 된다.
북미 핵심 브랜드로
LG생활건강의 100% 자회사가 되면서 더크렘샵은 LG생활건강 북미 공략의 첨병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크렘샵은 K뷰티에 관심이 많은 미국 Z세대에게 인기가 높은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다. K뷰티와 현지 감성을 조화시킨 제품으로 Z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LG생활건강 북미 사업의 '효자' 자회사로 자리매김 했다.
실제로 더크렘샵은 LG생활건강에 인수된 이후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21년 470억원이었던 더크렘샵의 매출액은 LG생활건강에 인수된 2022년 700억원, 이듬해인 2023년에는 1365억원으로 치솟았다. 다만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9.2% 감소한 1240억원에 그쳤다. 대신 영업이익은 2022년 166억원, 2023년 312억원, 2024년 276억원 등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다. LG생활건강의 다른 북미 사업 대부분이 적자를 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LG생활건강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북미 사업을 꾸준히 키우고 있지만 아직 부진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LG생활건강의 북미 매출은 지난해 5662억원에 그치면서 전년보다 11.8%나 줄어들었다. 전체 매출에서 북미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3년 9.4%에서 지난해 8.3%로 줄어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2019년 인수한 '에이본'이다. 에이본은 LG생활건강에 인수된 이래 계속 순손실을 내면서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다. LG생활건강이 자사 생활용품과 화장품 브랜드의 북미 사업을 위해 설립한 북미법인(LG H&H USA)도 2023년 적자로 돌아섰다가 지난해 67억원의 이익을 내며 간신히 흑자로 전환했다. 2021년 사들인 보인카도 지난해 7억원의 순이익을 냈을 뿐이었다.
이에 LG생활건강은 올해 더크렘샵을 재정비해 다시 북미 실적을 개선한다는 구상이다. LG생활건강은 "더크렘샵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고 온라인 외에 오프라인으로 채널을 다각화해 고객 접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온라인 넘어 오프라인까지
LG생활건강은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사업 리밸런싱(재구조화)'을 지속하며 올해도 계속 북미 공략에 더욱 속도를 낼 예정이다. 이를 위해 LG생활건강은 지난달 북미법인이 진행하는 유상증자에 1860억원의 자금을 쏟아부었다. 북미 사업 확대를 위한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서였다.
LG생활건강은 최근 북미에서의 마케팅 성공 사례를 기반으로 마케팅 활동을 강화하고 온·오프라인 채널에서 주력 브랜드의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우선 빌리프, CNP, 더페이스샵 브랜드를 중심으로 '영 제너레이션'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을 보강하면서 마케팅 투자를 전개하고 있다. 북미 최대 온라인 플랫폼인 '아마존' 등 디지털 채널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만큼 이를 통해 오프라인 채널로 브랜드 저변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LG생활건강은 지난해 아마존에 진출시킨 브랜드가 큰 인기를 끌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더페이스샵의 경우 지난해 11월 말 진행된 아마존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서 ‘미감수’ 라인의 매출이 전년 대비 148% 신장했고, CNP 프로폴리스 '립세린'은 아마존 '립버터' 카테고리에서 약 6개월간 매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LG생활건강은 최근 북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빌리프를 통해 MZ 고객이 선호하는 제품군을 위주로 제품을 확대할 예정이다. 특히 MZ, 알파 세대 고객에 기반을 둔 뷰티 브랜드의 M&A도 추진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