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 통합이란 특단의 승부수를 던졌다.
김 회장이 다소 갑작스레 조기 통합 카드를 꺼낸 이유론 두 가지 정도가 꼽힌다. 우선 외환은행을 인수한 지 2년 넘게 지났지만 제대로 시너지를 내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을 더는 내버려둘 수 없다는 절박감이 작용했다.
일부에선 내년 초 임기 만료를 앞둔 김 회장의 사전정지 작업으로 해석한다. 조기 통합을 통해 하나금융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주와 이사회에도 확실하게 어필하겠다는 얘기다.
◇ “하나·외환은행 통합 논의할 시점”
김 회장은 3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나금융은 2011년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5년간 독립경영을 보장한 바 있다.
그럼에도 김 회장이 조기 통합이란 화두를 꺼낸 이유는 금융산업 전반의 수익성이 곤두박질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할 필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어서다. 여기서 더 뒤처지면 선두권인 신한금융을 아예 따라잡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절박함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한 후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시너지는커녕 두 은행 모두 수익성이 계속 추락하고 있다. 이우공 하나금융 부사장은 “투 뱅크 체제로 너무 오래 있다 보니 합병의 시너지 효과가 지연된다는 우려가 (시장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면서 “외환은행은 규모에 비해 너무 비용이 많이 지출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 하나•외환은행의 통합법인이 빠르게 통합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점도 김 회장을 자극했다. 김 회장은 인도네시아 통합법인을 보면서 답답함과 함께 조기 통합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전했다.
◇ 내년 초 연임 위한 승부수 평가도
외환은행 노조를 비롯해 일부에선 김 회장의 연임 카드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 회장은 내년 초 임기가 끝난다. 현재로선 뚜렷한 경쟁자가 없어 연임이 유력하다. 회장 후보군으로 꼽히던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과 임창섭 전 하나대투증권 사장 등이 대부분 현직에서 물러났다.
다만 김 회장 입장에선 주주들과 이사회에 뭔가 더 분명한 성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하나SK카드와 외환카드가 통합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 통합 논의가 본격화하면 김 회장은 확실하게 업적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합치면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는데 그대로 내버려두는 건 경영진의 자세가 아니다”라면서 “일부 반대가 있더라도 일단 통합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 조기 통합 첫 공론화…노조 강력 반발
김 회장이 조기 통합이란 화두를 던지면서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지금 당장 통합한다는 게 아니라 통합을 논의할 시점이라는 거다. 나 혼자 결정할 사안은 아니고, 두 은행의 행장 및 이사회와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고 선을 긋긴 했다.
하지만 하나금융지주 차원에선 이미 충분한 공감대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하나금융 관계자는 “조만간 하나은행 및 외환은행 이사회, 노동조합 등과 통합을 위한 협의에 들어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이 조기 통합을 처음으로 공론화하면서 외환은행 노동조합의 거센 반발도 예상된다. 외환은행 노조는 당장 이날 성명을 내고 “통합 운운은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합의서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면서 “전국집회 등 모든 수단 동원해 총력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