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정부나 우리은행이 처음에 그렸던 민영화의 밑그림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외국계 투자자들이 참여해 국내·외 투자자들로 구색을 갖춰 과점주주를 형성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국 집안 잔치로 끝났으니까요.
이런 점들이 오히려 우리은행의 최대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건데요. 가뜩이나 예금보험공사가 여전히 21.4%를 가진 단일 최대주주로 관치우려를 씻지 못한 상황입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민간 자율경영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런 지배구조는 외부 입김, 관치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 트럼프 악재?..집안 잔치 된 민영화
"들어올 줄 알았는데, 저희도 당황스럽습니다." 금융위에서조차 일부 해외 투자자의 불참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인수의향서(LOI)만 내놓고 실사도 하는둥마는둥 한 곳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수의 투자자들을 빼고 대부분 실사에도 열심히 참여했고 그 중에 일부는 본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건데요.
홍콩계 사모펀드인 베어링PE나 일본계 자본인 오릭스 등을 얘기하는 겁니다. 우리은행 본입찰 이틀 전에 나온 미국 대선 결과가 결정적인 변수였던 모양입니다. 실제 금융위 관계자는 "미국 대선 이후 의사결정을 바꾼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국내외 투자환경의 변화 등으로 우리은행 민영화는 집안 잔치로 끝이 났습니다. 과점주주 7곳 중에 동양생명을 통해 안방보험이 우회적으로 투자에 참여한 것을 빼면 6곳 모두 국내 자본입니다.
안방보험은 애초 정부와 우리은행의 후보 목록에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정부와 우리은행의 예상도 완전히 빗나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지난달 예비입찰 직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LOI를 낸 곳 중에 예상하지 못했던 곳이 두 군데"라며 "한 곳은 이미 (숏리스트에서)떨어졌고, 중국계 안방보험은 들어올 줄 몰랐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행장이 세차례 해외 기업설명회(IR)를 거치면서 외국계 투자자의 참여에 자신감을 보였던 점을 고려해도 본입찰 낙찰 결과는 실망스러운 수준입니다.
◇ 관치 막아줄 방패막이가 없다
결과적으로 외국계 투자자들이 막판에 발을 빼면서 관치나 외부 입김을 막아줄 방패막이도 사라진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는데요.
7곳의 과점주주 중에 순수 재무투자자를 제외하고 사외이사 추천 의사를 밝힌 곳은 5곳입니다. 동양생명, 키움증권, 한국투자증권, 한화생명, IMM PE 등인데요.
모두 국내 금융회사 혹은 토종 사모펀드로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는 곳들입니다. 쉽게 말하면 감독당국의 손아귀에 들어있다는 건데요.
금융권에서 정부나 감독당국의 마음에 들지 않는 CEO가 선임될 경우 감독·검사권을 마구 휘두른 사례는 많습니다. 최근까지 KB금융지주에서 있었던 일이기도 하고요.
얼마나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할지 여전히 의문입니다. 더군다나 대외신인도를 고려하며 눈치를 봐야할 외국계 투자자도 없으니까요.
◇ 집단지도 체제, 반장이 안보인다
과점주주 대부분 4%의 지분을 낙찰받은 점도 그렇습니다. IMM PE가 그나마 6%를 낙찰받긴 했지만 이를 제외하곤 고만고만한 수준입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구심점 역할을 할 주주가 없다는 겁니다.
정부와 금융권에선 한국투자증권이 8%를 인수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했는데요. 이 경우 어느정도 반장 역할이 가능할 것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빗나갔습니다.
최소물량(4%)과 최대물량(8%)간에 인센티브의 차이도 크지 않은데다 불확실한 투자 환경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게다가 정부의 자율경영 실천 여부 등을 100%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단 발을 담그는 수준으로 참여를 고려한 게 아닐까요.
임 위원장은 '집단 지성을 통한 합리적 지배구조'를 언급했습니다. 은행의 가치를 올려서 주주의 가치를 높이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건데요.
복수의 금융권 관계자들은 "어디까지나 교과서적인 얘기"라고도 합니다. 과점주주 체제를 실험이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반장이 없으니 의사결정 과정이 험난해질 수밖에 없고, 이것이 정부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건데요. 마음 급한 정부가 결국 반장 역할을 자청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입니다. 이것이 곧 관치로 연결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