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보험 대인보험금 관련 초경미사고에 대한 지급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놀이기구를 타는 수준의 충격이 가해지는 초경미사고가 늘고 있는 가운데 치료비 등으로 지급되는 보험금 편차가 많게는 수백만원에 달해 일부에서 보험료가 불합리하게 할증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2개 손해보험사를 표본으로 자동차사고 55만9000건을 분석한 결과 초경미사고로 분류되는 사고는 12만3400여건으로 전체의 22.1%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지급된 보험금만 450억원 규모다.
초경미사고는 자동차사고 중 범퍼의 긁힘이나 찍힘 이하의 차량 손상이 발생한 사고를 말한다. 금융당국이 발표한 경미사고 기준을 보면 ▲범퍼 등의 투명코팅막이 벗겨지는 손상(1유형) ▲범퍼소재 손상 없이 도색이 벗겨지는 손상(2유형) ▲구멍 뚫림·찢어짐·함몰 등의 손상 없이 긁히거나 찍혀 범퍼 일부가 손상(3유형)되는 수준이다.
주차장에서 주차를 하다가 혹은 정체도로에서 서고 가다를 반복하다 일으키는 사고가 초경미사고 대부분을 차지한다.
문제는 이같은 초경미사고에서 가해차량이 아닌 피해차량의 경우 큰 충격이 없음에도 병원에 입원하거나 장기치료를 통해 합의금을 높게 받는 등의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그동안 낸 보험료가 있는데 나만 손해 볼 수 없다'는 일종의 보상심리가 자리잡고 있다는게 보험업계 판단이다.
이처럼 과도한 보험금이 지급될 경우 상대차량의 보험료가 할증될 뿐 아니라 전체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상승해 결과적으로 본인의 보험료 인상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또 '무조건 뒷목부터 잡고 나와야 한다'거나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바보'라는 식의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자칫 '나이롱환자'로 불리는 연성보험사기에 자신도 모르게 노출될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보험업계 "경미사고 대인배상 지급 기준 정립 필요"
금융당국은 2016년 7월부터 이같은 초경미사고에서 자동차 수리비(대물보험금)에 대한 '경미사고 수리기준'을 만들어 대물보험금 지급기준을 마련, 범퍼의 경우 교체가 아닌 복원수리비만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올해 5월부터는 범퍼 이외 ▲앞도어 ▲뒷도어 ▲후면도어 ▲후드 ▲앞펜더 ▲뒷펜더 ▲트렁크리드 등 7개 부품에도 경미손상 수리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인사사고와 관련한 대인보험금에 대한 지급기준은 아직까지 마련되지 못한 상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초경미사고에 대한 보험금 누수는 결국 보험가입자의 부담으로 전가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큰 문제로 지적돼 왔다"며 "초경미사고시 자동차사고 수리(대물) 부분은 문제해결을 위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인사사고(대인)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는 부분이 없어 전체 보험가입자를 위해 보험금 누수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달 보험개발원과 연세대 의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초경미사고로 인한 인체 손상 정도와 충격실험을 진행한 결과, 아반떼 등 차량이 시속 3~7km 내에서 앞차를 추돌했을 때 받는 충격은 0.4~2.2g로 나타났다.
이는 놀이공원 롤로코스터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거나 회전할 때 받는 충격 2.0g와 비슷한 수준이다. 또한 고속도로를 운행하는 버스에 탑승했을 때 받는 충격(0.9g)이나 가상현실 체험 기구(VR)를 탈 때(1.3g)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놀이기구를 탄 후 뒷목을 잡고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음에도 도로 위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경미사고 대인배상 지급 기준의 필요성' 연구에 따르면 경미사고 수리기준(2~3유형)에 해당하는 충격의 크기가 유사한 사고시 대인배상 보험금을 받은 하위 5%와 상위 5%간 보험금 지급 차이가 34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연구위원은 "경미손상 수리기준에 해당하는 충격은 놀이기구 탑승 등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충격으로 상해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낮은 연구결과가 발표됐다"며 "그럼에도 경미사고 내에서 합의금과 치료비 등 대인배상금 변동성이 크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신뢰도, 형평성 훼손, 분쟁 확대, 보상심리 확대와 불필요한 보험금 증가, 보험료 할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대인배상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의 병원치료를 통한 원상회복 치료는 당연한 것이지만 가해자가 범한 손해도 적정하게 지불할 수 있도록 하는 균형있는 보호체계가 필요하다"며 "단순히 보험금 누수뿐 아니라 불합리하게 지급되는 보험금으로 인해 보험료가 크게 할증되는 등 억울한 계약자를 줄이자는데 초점이 있으며,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선량한 가입자들의 보상심리를 자극하는 쪽이나 연성보험사기를 확대하는 등 악순환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공론화 장을 마련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전 연구위원은 "일정이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보험업계를 비롯해 학계, 당국 등에서도 문제점과 대응방안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며 "경미사고 치료기준 필요성에 대한 추가적인 자료분석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르면 7월 중 이와 관련한 공청회 등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손해사정업체 대표 등 업계 전문가들은 "보상심리 때문에 사고가 나면 무조건 보험처리를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일단 보험처리를 하면 무사고시 매년 받는 할인이 없어지고 3년간 사고가 없어야 다시 보험료를 인하 받을 수 있다"며 "실상 기회비용을 감안하면 기존대비 낮아진 등급차이가 10년 이상 지속되기 때문에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전체 사회적 비용이 낮아져 자동차보험료 자체를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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