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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섣부른 '선착순 특판'…돈 쓰고 인심 잃어

  • 2019.08.02(금) 17:35

카카오뱅크, 5% 예금특판 1초 완판 오히려 후유증
서버 다운 시비에 탈락자 많아 원성
다른 금융사 '당첨자 숫자 제한' 달리 '금액한도' 원인

카카오뱅크는 그동안 다양한 시도로 금융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은행이다.

ATM 입출금수수료도 받지 않았고 체크카드를 쓰면 캐시백으로 돌려줬다. 대출을 중도상환해도 수수료를 받지 않았으며 해외송금수수료도 파격적으로 낮췄다. 불편한 건 다 없애고 모든 것은 고객에게 맞춰 바꾸겠다는 게 카카오뱅크의 혁신 동력이었다.

최근 카카오뱅크가 1000만명의 고객을 달성했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715일만이다. 하루에 1만3000명씩 신규고객이 유입해야 가능한 속도다. 카카오뱅크가 시도해 온 혁신이 효과적으로 고객에게 다가갔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 카카오뱅크는 큰 헛발질을 했다. 돈은 돈대로 쓰고 어렵게 쌓은 신뢰에 상처를 냈다.

고객 1000만명 돌파 기념 천만위크 행사 첫날 실시한 연 5% 정기예금 특별판매 이벤트가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카카오뱅크 이미지에 먹칠한 것이다.

이벤트는 단순했다. 연 5%의 이자를 주는 만기 1년짜리 정기예금을 100억원 한도로 '선착순' 판매한 것이다.

카카오뱅크는 이번 특판으로 돈을 벌 생각이 없다. 고객에게 더 준다는 의미로 마련된 행사다.

최근 금리 상황에서 연 5% 금리를 주기 위해서는 역마진을 피할 수 없다. 7월 기준 카카오뱅크의 대출금리 평균은 3.51%다. 이벤트로 마련된 100억원을 모두 대출상품으로 소진한다고 해도 1억4900만원 적자다.

3%대 상품도 씨가 마른 상황에서 5%대 특판이벤트가 실시된다는 소식에 고객들이 몰렸다. 이벤트 사전신청자 수가 106만명을 넘어섰다.

실제 이벤트는 7월22일 오전 11시 개시되자마자 1초만에 종료됐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이벤트 시작 시점의 카카오뱅크 서버 동시접속자수는 3만6495명이며 1초 뒤에는 4만236명, 다시 1초 뒤에는 3만1067명이었다.

카카오뱅크 측은 뜨거운 인기에 이벤트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리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벤트 직후 카카오뱅크에 대한 원성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단 1초만에 100억원이 완판된 것을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게다가 직후 서버가 마비됐기 때문에 '접속조차 못했는데 마감됐다'라는 불만을 제기한 고객도 많다.

이벤트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에 카카오뱅크의 이번 이벤트에 불법소지가 없는지 조사해달라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청원인 수만 4000명이 넘는다. 이벤트에 성공한 고객수의 3배 가까운 숫자다. 사람을 얻으려다 오히려 잃는 분위기다.

5%대 정기예금 특판은 카카오뱅크가 7일간 준비한 이벤트 첫 행사다. 하지만 이후 이벤트는 첫날의 강렬한 후유증 덕에 크게 조명되지 못했다.

이같은 문제는 해당 이벤트가 '선착순'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업계 평가다. 금융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ICT기업의 한계를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사실 금융사 선착순 이벤트는 흔한 일이다. 다만 대부분 금융사들은 선착순 기준을 금액보다는 사람에 맞춘다.

최근 출시한 웰컴저축은행의 연 6% 정기적금은 최대 납입금액을 30만원으로 제한하고 선착순 1만명에게 기회를 줬다.

SH수협은행은 연 5%의 Sh쑥쑥크는아이적금을 판매했다. 월납입 10만원 한도에 지점당 하루 30명만 선착순 가입할 수 있었다. 만6세 미만 1인1계좌가 제한사항이었다.

금융투자업계도 선착순 이벤트를 즐겨한다. 최근 NH투자증권은 연 5% 적립식 발행어음 특판을 실시하고 있다. 선착순 10만명 제한이 걸렸다.

이같은 이벤트들은 카카오뱅크의 이번 특판과 차이가 있다.

카카오뱅크의 이번 특판은 1인당 한도는 최소 10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으로 진행됐다. 100억원 한도를 감안하면, 최소 1000명(1인당 1000만원 가정)이고 가장 많이 받아도 1만명(1인당 100만원 가정)이다.

다른 금융사 선착순 이벤트가 수만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실제 카카오뱅크의 이번 특판에 성공한 소비자는 총 1383명이다. 사전신청자 중 0.1%만 가입에 성공한 셈이다. 확률이 너무 낮은 데다가 서버까지 마비되면서 카카오뱅크의 기술력에 대한 우려까지 낳았다. 이벤트 전에 이같은 쏠림현상이 일어날 것임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것도 문제다.

그동안 카카오뱅크는 '누구나' 금융의 편리함을 누려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공인인증서 강요와 오프라인 위주의 업무처리 등으로 기존 금융이 고객과 멀어지고 있다고 비판하며 누구나 쉽게 은행업무를 볼 수 있다고 내세운 게 카카오뱅크였다.

그런 카카오뱅크가 섣부른 선착순 이벤트로 고객들에게 실망감을 넘어 각종 의혹까지 사고 말았다. 카카오뱅크의 이번 이벤트가 사업 초기 겪을 수 있는 성장통으로 향후 고객에게 더 좋은 서비스와 혁신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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