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조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던 환율 변동 헤지 상품인 '키코'에 투자했던 중소기업 4곳이 총 256억원을 배상받게 됐다. 키코를 판매한 은행들의 불완전판매를 인정하면서다.
13일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는 작년 7월 4개 키코 피해기업이 신청한 분쟁조정에 대해 손실액의 평균 23%를 배상하도록 조정 결정했다고 밝혔다. 배상금액을 보면 A기업 42억원(배상비율 41%), B기업 7억원(20%), C기업 66억원(15%), D기업 141억원(15%)다.
분조위는 과거 동양 사태 분쟁조정 등에 적용된 기본배상비율 30%를 적용한 뒤 은행과 기업의 과실상계 사유 등을 감안해 최종 배상비율을 조정했다. 배상비율 하한선은 10%다.
은행별 배상액을 보면 신한은행 150억원, 우리은행 42억원, 산업은행 28억원, KEB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 등이다.
분조위는 이 은행들이 고객보호를 다하지 않고 키코를 불완전판매했다고 판단했다.
은행들은 키코계약 체결시 예상 외화유입액 규모를 파악하지 않거나 타행의 환헤지 계약을 감안하지 않고 과도한 규모의 환헤지를 권유해 '적합성 원칙'을 위반했다는 판단이다. 또 향후 환율이 오르면 무제한 손실이 가능하다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설명의무'도 위반했다는게 분조위 설명이다.
배상비율이 가장 높은 A기업의 경우 수출실적이 급감해 무역금융과 수입신용장 한도는 감액하면서도, 추가 환헤지 계약을 계약서도 아닌 구속력이 없는 협약서(agreement)상 주문예정수량을 근거로 키코 계약을 체결했다.
분조위는 이 기업과 은행에게 조정결정을 통지하고 수락을 권고할 예정이다. 조정안 접수 후 20일 내에 수락하면 조정이 성립된다. 나머지 키코피해 기업은 조정결정이 성립되면 은행과 협의해 대상 기업 범위를 확정한 후 자율조정 방식으로 분쟁조정이 진행된다.
정성웅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 부원장보는 "지금이라도 피해구제에 나서는 것이 은행의 신뢰를 되찾고 오래된 빚을 갚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은행들이 키코 조정안을 수락할지 여부다. 키코는 소멸시효(10년)이 지났고 2013년 대법원도 23개 키코 피해 기업에 대해 평균 26.4%(총 105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을 한 상황이다. 은행 경영진이 이번 조정안을 수용했다가 자칫 배임 혐의를 받을 수도 있다.
금감원은 로펌 9곳으로부터 법률 자문을 받은 결과 "법적 이슈는 해소됐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국내 법제도상 지주사의 주주가 은행의 이슈(키코)로 민사상 배임 소송을 제기하긴 불가능하다"며 "형사상 소송도 분조위 권고를 내부 절차를 걸쳐 결정한다면 배임이 있다고 판단하기 곤란하다"고 전했다.
아울러 금감원은 "2013년 대법원은 불공정성 및 사기성은 부인했으나 불완전판매에 대해서는 사례별로 인정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피해기업은 분쟁조정 대상이 된다"며 "소멸시효가 완성되더라도 임의변제가 가능해 소비자보호를 위해 조정결정을 권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키코 불완전판매의 배상금을 뒤늦게 주는 것을 배임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며 "은행에 이익이 된다는 경영진의 신중한 판단하에 배상금 지급을 결정한다면 경영진에 고의적인 배임의사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관련 은행 관계자는 "경영진과 이사회의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며 "독립적으로 의사결정하는 이사진들이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법률적 검토를 통해 이사진들에게 자료를 제공하고 판단을 맡길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