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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의 한은 총재, 닮은 것과 다른 것

  • 2020.02.05(수) 11:34

저금리가 불편한 이성태·이주열…끝내 정상화 못해
외부 출신 김중수, 정부 협력 강조 불구 금리인상

몸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온도보다 약간 춥게 느껴지는 곳에서 공부가 더 잘 된다.

2006년 참여정부 시기 임명돼 이명박정부까지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이성태 전 총재는 완화적인 통화정책에 대한 불편함을 곧잘 이렇게 빗댔다. 경제 주체들이 돈을 빌릴때 약간 부담을 느낄 정도의 수준의 금리가 적정하다는 얘기였다.

그는 "중앙은행은 정부와 떨어져 작은집 하나 마련해 사는 것"이라며 금리인하를 압박하는 정부와 의도적인 거리두기를 했다. 이런 탓에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말 청와대에선 한은 총재에 대한 경질론이 고개를 들었다.

흔한 것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돈도 마찬가지다. 중앙은행 사람들은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물가불안, 자산가격 거품 등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한꺼풀 들어가면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다.

한국은행의 존재감을 드러낸 건 누구일까. 사진 왼쪽부터 이성태·김중수·이주열 총재.

한국은행도 정부다. 정부의 정책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2010년 취임한 김중수 전 총재는 전임자와 달랐다. 취임 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했던 이 말이 한은 직원들을 뒤집어놨다. 한은 노조는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신념을 밝히라"며 그에게 날을 세웠고 몇달 뒤에는 "(김 총재가) 직원들의 능력을 폄하해 총재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42년간 한은에 몸담았던 이 전 총재와 달리 김 전 총재는 한은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외부인이다. 그는 한은 직원들이 '우물안 개구리식 시각을 갖고 있다'며 쓴소리를 해 직원들의 반감을 샀다.

재미있는 건 한은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기준금리만 보면 한은의 위상을 높인 것은 김 전 총재라는 평가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전 총재가 취임할 때 4.00%이던 기준금리는 4년 뒤 그가 퇴임할 땐 2.00%로 정확히 반토막났다. 반면 김 전 총재 취임 당시 2.00%였던 기준금리는 퇴임할 때 2.50%로 올라있었다. 비둘기로 불리던 그는 다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끌어올렸다. 알고보니 매였던 셈이다.

이 전 총재 당시엔 금융위기라는 폭탄이 터진 때라 김 전 총재와 직접 비교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김 전 총재 때도 강도가 달랐을 뿐 유럽의 국가채무 위기 등으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았다.

우리는 기축통화국보다 금리를 높게 유지하는 게 맞다. 금리가 제로(0)까지 가는 건 상정하고 싶지 않다.

지난달 17일 기준금리 동결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 이주열 총재는 한은의 기준금리가 0%까지 내려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한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미국 등 선진국보다 기준금리를 높게 가져가야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40년 이상 한은에 몸담았다.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것처럼 그도 지나치게 완화적 통화정책에는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성적표는 신통치않다. 2014년 총재 취임 당시 2.50%이던 기준금리는 현재 1.25%까지 내려앉았다. 한은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총재의 리더십에도 물음표가 달린다. 한은에 따르면 이성태 전 총재가 취임한 2006년 4월 이후 기준금리와 관련해 금융통화위원들이 총재와 다른 의견을 낸 횟수는 총 47회다. 이 가운데 절반인 23회가 지금의 이 총재 임기중 벌어졌다.

이 총재가 연임에 성공한 2018년 이후엔 반기를 든 횟수가 더 잦아졌다. 한해 8번 열리는 회의에서 금통위원들이 총재와 다른 의견을 낸 횟수는 2017년 2회→2018년 4회→2019년 5회로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올해 들어 처음 열린 지난달 회의에서도 반대표가 나왔다.

4일 공개된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조동철·신인석 위원이 금리인하를 주장하며 총재와 다른 길을 걸었다. 이들은 현재의 통화정책이 충분히 완화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복병은 언급조차 안된 회의다. 이 때문에 오는 27일 열리는 금통위 회의에선 이 총재를 향한 반대표의 압박이 훨씬 강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금의 이 총재는 중앙은행의 존재가치를 입증하고 싶지만 번번이 좌절한 이 전 총재 모습과 묘하게 닮았다. 날개는 무겁고 발톱은 무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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