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오히려 해외 당국자들과 만남이 편해진 측면이 있다. 언택트 방식이 대세가 되면서 화상으로 만날 수 있어 장소의 제약이 사라졌다.
얼마 전 한 시중은행에서 글로벌 사업을 담당하는 관계자와 나눈 대화다. 올해 초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시중은행의 글로벌 사업은 커다란 장벽에 부딪히는 듯했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사업 확장의 한계가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일단 한숨을 돌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화상회의를 비롯한 비대면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해외 영토 확장의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였던 현지 당국자와의 소통이 한결 더 쉬워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그럼에도 시중은행의 글로벌 산업은 여전히 위태롭다. 시중은행들이 해외 진출의 거점으로 꼽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이 코로나19로 위기를 겪고 있어서다. 그간 시중은행들은 동남아 진출의 근거로 '높은 경제성장률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금융산업의 외연 확장'을 내세웠지만 지금은 이를 적용하기 어렵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은 지난 6월 올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이른바 '아세안5'의 경제성장률이 –2.0%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2018년 5.3%에 이어 2019년 4.9%의 고성장세를 이어왔지만 코로나19라는 암초를 만나면서 역성장으로 돌아설 판이다.
경제 사정이 나쁘다 보니 당연히 금융시장 상황도 좋지 않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경기가 얼어붙자 가계와 기업들이 자금 확보에 나서면서 예치금은 빼고 대출은 더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베트남에 진출한 신한베트남은행의 예치금은 지난해 말 3760억원에서 올해 상반기엔 2785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같은 기간 개인 대출 잔액은 8010억원에서 1조 723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기업 대출도 2조 2345억원으로 1000억원가량 늘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금융그룹들이 이 상황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해당 국가의 신용도나 개인 및 기업의 신용 리스크에 연연하긴 보단 자금경색이 더 악화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자금중개 역할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비가 올 때 우산을 뺏지 말라는 말은 해외 거점 지역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주면 언젠가는 보답으로 돌아온다.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 준다면 추후 현지법인은 영업력 확장의 기회를, 현지지점은 현지법인 확대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아세안5 중에서 가장 강대국으로 꼽히는 태국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태국 정부의 만류에도 국내 금융회사들은 철수를 강행했다. 물론 당시엔 국내 은행들 역시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긴 했다.
하지만 당시 점포를 철수하지 않고 우산을 내밀어 준 일본 금융회사들은 현재 태국에서 은행과 보험, 증권 등 다양하게 금융사업을 펼치고 있다. 반면 국내 은행들은 신남방국가 경제력 1~2위를 다투는 태국에서 여전히 깃발을 꽂지 못하고 있다.
마침 해외 당국자들도 디지털 창구를 활용해 예전보다 더 활발하게 국내 금융회사들과 소통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우리 경제도 어렵지만 그들의 손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 과거 태국 사례를 반복해선 안된다. 코로나19 사태는 양날의 검이다. 그럼에도 해외 진출이란 오랜 숙제를 풀려면 이번 위기를 더 과감하게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