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이 하나은행장 재직시절 발생한 DLF(파생결합증권) 사태의 책임이 있다는 법원의 판단을 받았다. 법원은 금융감독원이 함영주 부회장에게 내린 중징계가 합당하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간 금융권에서는 같은 사안으로 소송을 했던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1심에서 승소한 만큼 함영주 부회장 역시 같은 판결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법원의 결정은 정반대였다.
일단 함 부회장 측은 즉각 항소하기로 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함영주 부회장의 1심 판결 영향이 현재 진행중인 손태승 회장의 2심 판결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손태승-함영주 재판부 무엇을 다르게 봤나
금융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1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함영주 부회장과 하나은행 등이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낸 업무정지 등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DLF사태는 하나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그 책임을 물어 당시 하나은행장이었던 함영주 부회장에게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금감원으로 부터 중징계 통보를 받은 금융사 임원은 향후 3년간 금융권 재취업이 금지된다. 당시부터 유력한 차기 회장으로 이름을 올렸던 함영주 부회장은 이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한 것이다.
반면 같은 사유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던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8월 있었던 1심에서 승소했다. 당시 1심을 맡았던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금감원의 중징계는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려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두 인사가 같은 사안으로 인해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고 이에 대해 불복 소송을 냈지만 결과가 다르게 나온 상황이다.
앞서 손 회장의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금감원이 손태승 회장의 제재 근거로 제시했던 다섯 가지 사유중 '금융상품 선정 절차 마련 의무 위반'만 인정했다. 당시 금감원이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에 대한 법리를 잘못 적용해 징계를 내렸기 때문에 이 징계가 무효라는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금감원이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을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으로 해석한 것이 법리를 잘못 적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시말해 내부통제기준을 '준수'하기만 한다면 제재 근거가 없는데 금감원이 이를 '마련'해야 하는 의무로 해석해 제재를 내린 것은 법적 근거가 부족했다는 얘기다.
반면 함 부회장의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는 회사의 영업에 관해 재판상 또는 재판외 모든 행위를 할 권한이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업무집행을 감시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고 봤다.
아울러 회사의 내부통제시스템이 구축돼 있더라도 감시·감독 의무 이행을 외면해 다른 임원 등의 업무집행을 방지하지 못하였다면 대표이사가 회사 전반의 업무를 게을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손 회장 재판부가 판단했던 내부통제 기준 '준수'와 '마련'에 대한 법령 해석은 지배구조법상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가 실효성 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을 근거로 구체적인 내용이 법령에 직접 규정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는 같다고 봤다.
금융전문 한 변호사는 "재판부가 내부통제 기준에 대한 해석을 전혀 달리했기 때문에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며 "손 회장의 경우 내부통제 관련 법리에 대해 의무와 준수에 대해 따져봤지만 함 부회장의 경우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기준의 포괄적 의미를 해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재판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정부에 이어 다음 정부까지 금융소비자 보호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도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손태승-함영주, 법적 리스크 장기화
일단 하나금융측은 "하나은행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적, 절차적 부당성에 대해 적극 설명했으며 손님 피해 회복을 위해 금감원의 분쟁조정안을 모두 수용해 투자자들에게 배상을 완료하는 등 최선을 다해 대응해 왔음에도 입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유감스럽다"며 항소 하겠다고 밝혔다.
하나금융 측의 입장은 이번 재판에서 같이 논의된 하나은행 업무정지 및 과태료 등에 대한 처분 결과에 대한 설명이지만, 사실상 함 부회장 역시 항소를 결정하기로 결정한 셈이다.
일단 함영주 부회장은 차기 하나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추천돼있어 오는 25일로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해당 안건이 통과되면 회장 자리에 오를 수는 있다. 이번 법원의 판단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1심 선고일로부터 30일까지고 주주총회는 그 사이에 열리기 때문이다.
관건은 주주들의 마음이다. 앞서 채용비리 소송에서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법적 리스크를 더는 듯 했지만 DLF 판결에서는 패소하면서 다시금 법적 리스크가 불거진 셈이다. 하나금융지주는 외국인 지분률이 67%에 가까운데 외국인 주주들의 경우 CEO에게 법적 결격 사유가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평가다.
자칫 이번 주주총회에서 회장 자리에 오르는 것이 힘들 수 있다. 특히 외국인 주주들에게 영향력이 큰 국제 의결권 자문회사 ISS가 함 부회장의 회장 선임안에 대해 이같은 법적 리스크를 바탕으로 반대 의결권 행사를 권고한 것도 걸리는 지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 김정태 회장의 4연임 당시 주주총회에서도 ISS가 반대를 권고하자 반대 비중이 3연임 당시에 비해 높아졌다"며 "함영주 부회장이 즉각적으로 주주 설득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하나금융지주의 주주총회에서 김정태 회장의 연임을 위한 안건에 대한 반대 비중은 17.7%(참석주식수 기준)이었다. ISS가 찬성을 권고한 3연임 당시 2018년 주주총회에서 해당 안건의 반대 비중은 15.0%로 이보다 낮았다.
이번 재판의 결과로 손태승 회장 역시 법적 리스크를 장기간 안고갈 것으로 보인다. 일단 1심에서는 승소했지만 이번 판결이 2심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반대의 결과를 내렸지만 손 회장의 판결을 내린 재판부 역시 우리금융을 향해 따끔한 질책을 내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지난해 손 회장의 재판부는 중징계에 대해서는 근거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면서도 금융회사들이 내부통제규범 기준을 위반하거나 무력화시키는 행태와 문제점들을 판결문에 적시하기도 했다.
만일 2심에서 판결이 뒤집힐 경우 현재 손태승 회장 체제로 꾸려진 우리금융지주의 경영체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완전 민영화 첫해를 맞은 우리금융지주는 주력 계열사인 우리은행 신임 행장에 이원덕 우리금융지주 부사장을 내정하는 등 손 회장을 중심으로 한 내부정비를 사실상 마친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함 부회장의 선고 결과가 손 회장의 2심 재판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커졌다"며 "일단 두 인사 재판을 최대한 길게 끌고 갈 것으로 보이지만 법적 리스크를 계속해서 안고간다는 점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