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원 환율의 상승세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까지 올라선 가운데 외환당국의 환율 방어 동력인 외환보유액 규모에 관심이 쏠린다. 한국은행은 주중 8월말 외환보유액 규모를 발표한다.
최근 몇달새 환율방어에 통화당국이 지속해서 축적해둔 외화를 사용해 왔다는 점과 지난달 달러/원 환율이 상승세가 더욱 강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외환보유액이 감소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다만 이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면 외환당국이 앞으로 달러/원 환율이 상승해도 이전보다 쉽게 개입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외환보유액이 지속해서 감소한다면 해외시장에 우리나라의 안전자산 금고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줄 수 있어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국은행은 오는 5일 8월말 기준 외환보유액을 발표한다. 지난해말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631억2000만달러로 중국, 일본, 스위스, 인도, 러시아, 대만, 홍콩, 사우디 아라비아에 이어 전세계 9위를 기록했다. 전 세계에서 달러로 언제든지 바꿀수 있는 자산을 9번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7월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386억1000만달러로 세계 9위 자리는 유지했다. 하지만 약 7개월간 245억1000만달러, 약 33조원(환율 1300원 기준)가량 줄어들었다.
이는 미국이 올들어 연이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달러 강세 현상이 나타나자 외환당국이 환율 방어를 위한 미세조정(스무딩오퍼레이션)에 나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간 방기선 기재부1차관은 물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넘어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환율 방어를 위한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달러/원 환율의 상승세를 잠재우기에는 무리였다.
시장에서는 외환당국이 직접 시장에 개입해 달러/원 환율의 방어선을 세워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외환당국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매도해 달러/원 환율의 과도한 상승을 막아왔다는 얘기다.
하지만 달러강세는 좀처럼 사그라들고 있지 않다. 8월 줄곧 연고점을 경신해오던 달러/원 환율은 급기야 지난 2일 1362.6원으로 마감하며 1360원선을 돌파했다. 이는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8월에도 외환당국이 지나친 환율상승 방어를 위해 금고에 쌓아둔 달러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8월 외환보유액 역시 감소했을 것으로 점쳐진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규모가 줄어들고 있는 것을 보고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자산 가치를 지금보다 더 위험한 자산으로 평가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달러금고'가 계속해서 줄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 이러한 우려에 힘을 보탠다. IMF는 △연간 수출액 5% △시중통화량 5% △유동외채 30% △외국환 증권 및 기타투자금 잔액 15%를 합한 규모의 100~150% 이상을 외환보유액으로 확보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외환보유액을 착실히 쌓아두면서 통계 작성인 2000년 이후에는 줄곧 이 비율을 넘어섰지만 코로나19(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이 발생한 2020년 권고치를 하회하는 98.97%로 하락하더니 지난해에는 98.84%까지 떨어졌다. 올해의 경우 계속해서 달러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비율이 더 낮아졌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주요 경제부처 수장들은 외환보유액은 우려와 달리 충분한 수준이기 때문에 감소추세를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있었던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제가 IMF에서 왔지만 IMF 직원중 그 누구도 우리나라에게 외환보유액을 더 쌓으라고 권고하는 직원은 없을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세계 9위에 해당하는 외환보유액을 확보하고 있어 IMF의 기준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지난달 29일 있었던 '긴급 금융시장 안정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7월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세계 9위 수준이며 대외건전성이 양호하고 상대적으로 견실한 성장률 등 기초여건도 견조하다"라며 "과거 위기를 거치며 국내 금융산업의 체질 개선을 지속 추진해 온 결과 악화된 대외 여건을 충분히 감내해 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