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은행과의 경쟁 촉진과 사전적 구조조정을 위해 저축은행의 인수·합병(M&A) 유연화 방안 도입을 예고했다. 저축은행간 활발한 M&A로 규모가 커지면 지방은행으로 전환해 '메기'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는 것이 당국의 생각이다.
하지만 최근 재무 건전성 지표가 악화된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M&A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방은행 전환 가능성에 대해서도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반응이다.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M&A를 진행해도 지방은행의 규모 차이가 커 전환시 이점이 없고, 경쟁력 확보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는 현시점에서는 몸집을 키우는 것보다 경영 지표 회복을 위한 연체채권 민간 매각 허용과 지역 의무대출 비중 완화 등의 규제 개선이 우선이라는 반응이다.
저축은행 M&A 족쇄 풀리지만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이달 내에 저축은행간 M&A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저축은행 인가 지침 개선방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5일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을 통해 저축은행의 영업 권역 제한을 완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연스러운 인수·합병으로 부실은행 정리와 동시에 은행에 견줄 수 있는 초대형 저축은행 출현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가장 먼저 지난 2011년 저축은행 사태로 2015년 9월부터 묶였던 저축은행 M&A에 대한 족쇄가 풀릴 전망이다. 구조조정 목적이거나 비수도권 저축은행이라면 영업구역 제한없이 4개 사까지 인수를 허용하기로 한다는 방침이다.
현행 상호저축은행법에서는 동일 대주주가 3개 이상의 저축은행을 소유할 수 없고 다른 지역으로 영업구역을 넓히기 위한 합병 또한 금지돼 있다. 금융당국은 구체적인 저축은행 인가 지침 개선방안을 이달 중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저축은행들이 실제 M&A에 뛰어들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저축은행들이 최근 실적은 급감하고 연체율은 상승하는 등 경영 악화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저축은행 79개사는 올해 1분기 523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이는 저축은행 부실 사태가 한창이던 2014년 2분기(5059억원 순손실) 이후 약 9년 만이다.
특히 M&A 가능성이 가장 클 것으로 전망되는 대형 저축은행 위주로 순익이 급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산 규모 상위 5개 사(SBI·OK·한국투자·웰컴·페퍼)의 1분기 순이익은 전년동기(1711억 원) 대비 77.92%(1333억원) 감소한 378억원으로 집계됐다.
2분기 실적은 더욱 어두울 전망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현재 저축은행 전반적으로 M&A에 대한 수요가 없다"며 "최근 업권 자체가 힘든데, 일부 지방 저축은행들 중심으로 부실 이야기가 나오자, 당국에서 규제를 풀어준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과거에 저축은행들이 M&A 완화를 요구했던 이유는 비대면 영업이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최근 비대면으로 사실상 지역 규제가 없어진 것과 다름없는데 지역을 넓히기 위해 굳이 부실화된 저축은행을 인수하려고 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우리금융그룹 자회사인 우리금융저축은행의 경우 M&A시장에 뛰어들 수도 있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충북 청주에 영업부를 두고 있는 우리금융저축은행은 수도권으로 영업망 확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3월 취임한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취임사에서 기존 비은행 자회사 시장 존재감을 높여 그룹이 균형있는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우리금융쪽에서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관 출신이라는 점이 영향을 주는 것 같다"며 "현 상황에서 저축은행 M&A가 도움이 됐다면 다른 지주사들도 관심을 보여야 하는데 실효성이 없다는 분위기가 전반적"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우리금융지주 관계자는 "현재 보험사나 증권사가 1순위"라며 "최근 저축은행 업황도 좋지 않아 저축은행 M&A에 들어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말했다.
몸집보다 건전성이 우선
당국은 기존 금융회사를 은행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적극 허용할 예정이다. 은행업 영위 경험이 있는 주체가 업무영역·규모 등을 확대하는 것으로 단시일내 안정적·실효적 경쟁 촉진 가능하는 것이다. 이에 지방은행을 시중은행으로, 저축은행을 지방은행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당국의 계획이다.
하지만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저축은행 지방은행 전환 또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들이 M&A를 진행한다고 해도 지방은행의 전환은 다른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방은행 전환은 사업 구조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적용받는 법과 규제가 달라진다"며 "실익을 전부 검토해야 해, 지방은행 전환 요건을 충족했다고 해서 바로 전환할 회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저축은→지방은→시중은행?'…정작 업계는 '떨떠름'(3월9일)
아울러 이미 수도권을 기반으로 운영하고 있는 큰 상위 5개 저축은행과 우리금융저축은행(충북)을 제외한 금융지주 기반 저축은행(KB·신한·하나·NH저축은행)들이 지방은행으로 전환해 지방으로 거점을 옮기기에는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것도 저축은행들이 지방은행으로 전환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이미 수도권 기반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저축은행들의 경우 굳이 지방으로 내려가기에는 지방은행만의 메리트가 많이 떨어진다"며 "최근 저축은행 전반적으로 조달금리 상승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연체율 증가 등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몸집을 키우는 것보다 부실채권 매각을 통해 연체율 등 자산 건전성을 안전화 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실제 저축은행 업계에 대해 건전성 관리를 위해 불법추심이 우려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연체채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상황이다. 이에 정부도 저축은행 부실채권에 대한 민간 매각 채널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1일 저축은행중앙회·상위 10개 저축은행의 건전성관리 담당임원들 등과 함께 연채채권 매각과 관련해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엔 우리금융F&I, 하나F&I, 대신F&I, 키움F&I 등 NPL투자회사 4곳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앞서 지난 5월말 저축은행의 개인 무담보 연체채권을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외에도 유동화전문회사의 매각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저축은행 연채채권은 2020년 6월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 차주에 대한 불법 및 과잉 추심을 예방을 위해 캠코에만 매각이 가능했다.
하지만 연채채권 매입 회사가 캠코 한곳이다 보니 가격 경쟁이 없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연체채권을 팔지 않고 보유하는 저축은행이 늘어나면서 자산건전성이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저축은행 79개사 연체율은 지난해말 3.41%에서 올해 1분기 5.14%로 1.7%포인트 늘어났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캠코가 독점하다 보니 민간 매각보다 가격이 낮게 책정된다"며 "저축은행들이 연체채권을 매각하지 않아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건전성 우려가 해소가 우선이다 보니, 연체채권 민간 매각과 같이 수익성에 직결된 규제 해소가 필요한 상황"고 설명했다.
아울러 저축은행업계는 '영업구역내 의무대출 규정' 개선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저축은행은 전국을 6개 구역으로 나눠서 각 지역내 가계·기업에 의무적으로 40%(수도권은 50%) 이상 대출을 공급해야 하는 규제를 받고 있다.
영업구역내 대출이 줄어들면 다른 지역 고객의 신규 대출 신청을 더 받지 못하는 구조다. 앞서 저축은행중앙회는 지방 저축은행의 영업구역 의무대출 비율을 40%에서 30%로 낮추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모바일을 통한 비대면 영업이 늘어 겉에서 보기엔 인터넷 전문 은행과 다른 점이 없는데 저축은행은 여러 규제에 붙잡혀 있다"며 "당장은 M&A나 지방은행 전환과 같은 장기적인 문제보다는 서민금융기관이라는 특성을 잘 살릴 수 있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규제 완화가 우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