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위 건설사 태영건설이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하자 관련 당국이 발빠르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금융시장과 건설업 전반의 위기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다만 이 과정은 최종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게 관건이다. 이 작업이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현재 추진되는 방안들은 결국 일부 기업의 단기 유동성 문제만 해결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발빠르게 나선 정부…태영건설 '고강도 구조조정'
28일 금융위원회는 김주현 금융위원장 주재로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과 관련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에는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등이 참석했다.
금융당국은 '원칙'대로 태영건설의 고강도 구조조정을 추진하되 태영건설의 정상화를 유도하겠다고 했다. 그간 금융당국이 강조해온 '부동산 PF 연착륙'을 위해 살릴 수 있는 것은 살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태영건설의 PF 사업장은 올해 9월말 기준 총 60개다. 금융당국은 사업장의 유형과 사업진행상황에 따라 △PF 대주단 협약 △PF 정상화 펀드 △HUG(주택도시보증공사) 및 주택금융공사의 PF사업자보증, 분양보증 등을 통해 사업추진 또는 정리에 나선다.
구체적으로 사업 초기 단계로 브릿지론 투입단계인 18개 사업장은 대주단이 함께 사업성을 판단한다. 이후 태영건설 정상화를 전제로 브릿지론 공급자들과의 협의해 태영건설이 시공을 지속하도록 할 예정이다. 하지만 태영이 해당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거나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시공사를 교체하거나 공·경매에 내놓기로 했다.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42개 사업장의 경우 비주거 사업장과 주거 사업장으로 나눠 관리한다. 주거 사업장의 경우 분양계약자 등 국민의 직접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이 조치키로 했다.
17개 비주거 사업장의 경우 사업 초기 단계 18개 사업장과 마찬가지로 대주단 협약에 따라 처리한다. 반면 주거 사업장의 경우 태영건설의 계속공사 또는 필요시 시공사 교체 등을 통해 사업을 계속 진행해 분양계약자의 입주를 지원한다. 사업 진행이 곤란하다고 판단되면 HUG 분양보증을 통해 분양계약자에게 기존에 납부한 분양대금(계약금 및 중도금) 환급을 진행한다.
태영건설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 방안도 마련됐다. 금융당국은 태영건설이 본격적인 사업장 정리에 나서더라도 대부분 협력업체들이 대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대체로 건설공제조합의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에 가입돼 있거나 발주자 직불합의가 돼 있어서다.
단 일시적 유동성 부족에 처한 협력업체에게는 채권은행 공동으로 대출 만기 연장, 이자상환 유예, 금리 인하 등의 내용이 담긴 식속지원(Fast Track)프로그램을 우선 적용하기로 했다.
예견된 태영 워크아웃…시장불안 최소화 '중점'
금융권에서는 이날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을 '사실상 예견된 일'로 보고 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 공시 직후 시점임에도 이날 진행된 정부의 대책회의에는 대응방안이 준비돼 있었다. 자칫 국내 금융시장과 건설업 전반으로 위기가 확대될 수 있어 시장은 물론 금융당국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일단 금융당국은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은 물론 국내 금융시장도 안정적인 상황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면서 국내 부동산 PF의 도미노 부실화를 막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도 제시했다. 올해 9월 말 기준 국내 부동산 PF 규모가 134조2000억원에 달해서다. 건설사들이 자금경색에 빠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건설사가 발행하는 회사채, 기업어음(CP), 건설사 보증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해서는 차환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 시행키로 했다. PF ABCP는 장기 대출로 전환하는 보증 프로그램도 증액하기로 했다.
이번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으로 인해 채권시장이 냉각기에 빠져 타 업권 기업들도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가능성에 염두에 두고 저신용 기업들의 시장성 자금조달을 지원하는 채권담보부증권(P-CBO)프로그램도 규모를 확대한다.
금융회사들 역시 충당금 적립 금액을 늘리도록 유도해 손실흡수능력을 강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당국은 금융회사들이 자금을 공급한 PF 사업장들 각각의 사업성을 감안토록 하고 이에 따른 충당금 적립을 주문한다는 방침이다.
이해관계자 다양한 PF…'설득'의 시간 필요
금융권에서는 부동산 PF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정부의 시나리오 대로만 상황이 흘러가지는 않을 가능성도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 건설업황은 지금보다 좋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올해 추진됐던 부동산 PF 방안은 기존 사업장의 유동성 해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부동산 경기가 나아지지 않으면 '밑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 없을 수 있다. 돈을 대 준 채권자들 입장에서는 PF 사업장의 정상화보다는 자금 회수를 우선시 할 수밖에 없어서다.
한 부동산 PF 채권기관 관계자는 "올 한해 부동산 PF 위기설을 잠재우기 위해 채권자들이 만기연장, 이자상환 유예 등으로 인해 손실을 감내해 왔다"며 "채권자들도 더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질 수 있어 마냥 사업장의 정상화만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PF의 경우 워낙 이해당사자가 다양하기 때문에 사업을 정상화할지, 청산할지 등을 결정할 때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주채권기관만의 결정으로 사업의 향방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이 부동산 PF"라며 "이해관계자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설득시킬 수 있는 방안이 동시에 추진돼야 연착륙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이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시장 참여자들을 설득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우리경제의 규모와 여력을 감안하면 시장 참여자들의 협조 아래 건설업과 부동산 PF시장의 연착륙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시장 참여자와 지속 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