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지주가 결국 핵심 계열사인 우리은행장을 교체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부당대출 의혹과 관련해 조병규 우리은행장이 수사 대상으로 이름을 올리면서 더이상 이 리스크를 안고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금융지주는 22일 정기 이사회를 열고 자회사후보추천이사회 안건을 논의, 조병규 행장을 차기 행장 후보군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병규 행장 결국 연임 불가…이사회 의지 더 컸나
우리금융지주 이사회가 조병규 행장을 차기 행장 후보군에서 제외키로 한 것은 손태승 전 회장 부당대출 의혹에 대한 압박이 금융당국을 넘어 검찰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조병규 행장 역시 이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검찰은 지난 18일 우리금융지주를 압수수색하고 조병규 행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명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손태승 전 회장의 부당대출 의혹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이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보고의무 등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병규 행장의 신분이 '피의자'가 되면서 형사처벌 가능성까지 생기자 우리금융지주 이사회 역시 이같은 사법리스크가 그룹의 지배구조를 흔들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번에 조병규 행장 연임 불가를 판단하는 것은 임종룡 회장의 의지보다는 주요 주주들의 의지가 더욱 강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금융지주 자회사후보대표추천위원회는 임종룡 회장을 의장으로 하며 7명의 사외이사들로 구성된다. 임 회장이 의장으로 있기 때문에 임종룡 회장의 의중이 반영되는 구조지만 이번에는 임 회장의 의중보다는 사외이사들의 의견이 더욱 힘을 얻었다는 의미다.
우리금융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우리금융 사외이사 7명 중 과반수 이상이 과점주주들이 추천한 인사들인데, 이들을 중심으로 조 행장의 연임을 불가하다고 본 것으로 보고있다"라며 "임 회장이 자추위 의장이지만 본인의 목소리를 우선시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끝나지 않은 우리금융의 고민…차기 행장은?
우리금융 자추위는 이르면 다음주 중 차기 행장 후보를 결정하기로 했다. 후보군을 따로 발표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조율을 거쳐 최종 후보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조병규 행장의 임기가 한달여 밖에 남지 않았고 12월에는 그룹과 은행 인사 등을 마무리 한 이후 내년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속도를 내 은행장을 선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현재 우리금융 비은행 계열사 CEO들과 우리은행 부행장들 중 한명이 차기 행장으로 이름을 올릴 것이란 관측이 높다. 어수선한 우리은행의 분위기를 다지기 위해서는 내부에서 인정받은 인사가 필요하다는 관측에서다.
다만 내부 인사가 임명될 경우 파벌 문화 종식은 임기 내내 과제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앞서 금융권은 물론 정치권에서는 손태승 전 회장 부당대출 의혹은 우리은행 내 뿌리깊게 자리잡은 한일은행 및 산업은행 파벌 형성의 연장선 상 위에 놓여져 있다는 분석이 나왔고, 임 회장 역시 이를 인정했다. 한일은행 출신이던 손 전 회장의 부당대출 의혹을 한일은행 출신 파벌이 감싸주면서 일이 커졌다는 의미다.
이같은 상황에서 현재 차기 행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대부분 상업은행 혹은 한일은행 출신이다. 취임 초기에는 파벌 문화가 가라앉는 모양새가 재현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은행장의 출신 은행 쪽 파벌이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무용지물 된 '경영승계 프로그램'?
금융권에서는 이번에 우리금융 자추위가 은행장 선임 과정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으면서, 임종룡 회장 취임 당시 마련했던 '경영승계 프로그램'이 가동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임종룡 회장은 지난해 취임 이후 은행장을 선임하는 절차를 대폭 개선한 바 있다. 그간 우리은행장은 자추위가 몇 차례 회의 이후 선임하는 간소한 절차로 진행됐는데, 이 절차를 공개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우리금융 자추위는 4인으로 구성된 은행장 후보군을 선임 60여일 전에 사전에 공개한 후 이들에 대한 내·외부 검증과정을 진행한 바 있다.
이번의 경우 이같은 프로그램이 일부만 가동된 모습이다. 후보군 자질 검증을 위한 절차는 애초 마련했던 대로 가동됐더라도 이를 이사회 등에서만 공유하는 소위 '깜깜이'로 진행되면서 우리금융이 선언했던 투명성을 상실했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우리금융의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조병규 행장 선임 당시 마련했던 프로그램 운영 내역을 공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다만 임 회장 취임 직후 대대적으로 마련했던 방안이 100% 가동되지 않은 것은 두고두고 아쉬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