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험업계에서는 주력 상품군을 설명할 때 '일·장·자(일반·장기·자동차보험)'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합니다. 업계에서 오랫동안 관행처럼 굳어진 분류 방식입니다.
하지만 사업의 무게중심은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한 장기보험이 급성장하고 자동차보험이 안정적인 수익원 역할을 하면서 일반보험(통상 기업보험)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옅어졌습니다. 업계에서 "이제는 장·자·일(장기·자동차·일반보험)"이라고 통용할 정도로 사업 포트폴리오에 변화가 나타난 것이죠.
삼성화재 일반보험부문은 '일반보험'의 자존심 회복을 꿈꾸고 있습니다. 여기서 일반보험은 업계에서 통상 기업보험(B2B)을 의미합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첨단 제조시설 등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아 부문 차원에서 B2B 비중을 현재 약 11%에서 장기적으로 50%까지 확대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죠.
산업따라 보험도 발전한다
보험은 산업을 따라 진화해왔습니다. 산업화 시절에는 공장 화재를 대비한 화재보험과 수출 화물을 위한 적하보험이 중심이었습니다. 산업이 고도화되자 건설공사보험과 기계보험, 기업의 영업손실까지 보장하는 패키지보험이 등장했고요.
해외 진출이 늘면서는 임원배상책임보험(D&O)과 제조물책임보험(PL)이 성장했습니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는 사이버보험이 새로운 시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산업의 변화가 새로운 위험을 만들고 보험은 그 위험을 담아내며 성장해온 셈입니다.
자연스레 캡티브 마켓을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삼성화재와 삼성전자는 물론이고 현대해상은 범현대가, KB손배보험(옛 LIG손보)은 과거 LG계열사 물량을 상당부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계열분리나 지배구조 변화 등을 거치면서 과거처럼 계열사 물량이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아니긴 합니다.
최근 AI 확산을 위한 인프라 투자가 전 세계적으로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반도체와 전력설비, 첨단 제조시설 투자도 함께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우리 정부도 용인과 서남권을 동시에 개발하는 '초대형 반도체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삼성전자도 광주 최첨단 반도체 공장과 해남 AI 데이터센터 구축 등을 포함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요.
삼성화재가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첨단 제조시설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시점이 그래서 절묘합니다. AI 인프라를 둘러싼 글로벌 투자가 확대되는 흐름과 맞물려 관련 기업보험 수요도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계열사 물량에 경험까지
보험업계는 삼성화재의 강점으로 삼성전자 등 그룹 계열사 물량을 꼽습니다. 반도체 공장과 배터리 생산시설, 연구개발(R&D) 시설 등 대형 리스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보험사보다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강점은 단순히 계열사 물량만이 아닙니다. 일반보험은 장기보험보다 복잡하고 난이도가 높습니다. 반도체 공장과 같은 대형 산업시설은 위험 구조가 복잡해 오랜 경험이 경쟁력이 될 수 있죠.
새로운 보험사가 갑자기 반도체 공장 물건을 맡겠다고 나서도 기업 입장에서는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을 테고요. AI 데이터센터처럼 초대형 위험일수록 새로운 보험사로 갈아타기보다 기존에 위험을 관리해온 보험사를 선호할 수 있습니다.
삼성화재가 AI 데이터센터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낙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AI 데이터센터는 서버와 반도체 등 고가의 장비가 집적된 시설인 만큼 화재와 정전, 사이버 리스크 등에 대비한 보험 수요가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존 데이터센터가 주로 중앙처리장치(CPU)를 기반으로 운영됐다면 AI 데이터센터는 고가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대규모로 집적됩니다. 설비 규모도 훨씬 크고 투자 비용도 막대하죠. 그만큼 가입 금액 자체가 커질 수밖에 없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 규모도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계약 한 건의 가치가 큰 시장인 동시에 고도의 위험 분석 능력이 요구되는 분야인 셈입니다.
AI리스크 선점…미래 경쟁력
하지만 일반보험의 존재감을 다시 키우는 일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장기보험도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일반보험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B2B 비중을 빠르게 끌어올리기 어려울 것"이라며 "결국 일반보험이 기존 사업보다 훨씬 빠르고 큰 성장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계열사 물량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계열사의 투자 사이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신규 투자도 무한정 늘어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룹 밖 일반 기업과 해외 시장에서 얼마나 새로운 계약을 확보하느냐가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AI 데이터센터는 보험사에도 새로운 영역입니다. 아직 관련 사고 통계가 충분하지 않아 국내 보험사들이 자체 보험요율을 산출하기는 쉽지 않고요. 삼성화재 역시 초기에는 글로벌 보험사와 협업해 위험을 평가하고 보험료를 산정한 뒤 경험과 데이터를 축적하면서 자체 요율을 만들어간다는 계획입니다.
결국 삼성화재의 B2B 전략은 AI 산업 성장과 함께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첨단 제조시설, 신재생에너지 등 대규모 산업 투자가 예상보다 빠르게 확대되고 해외 기업보험 시장에서도 입지를 넓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산업의 변화가 보험의 변화를 이끌어왔던 것처럼 AI 시대는 일반보험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삼성화재가 AI 시대의 새로운 위험을 일반보험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