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팀이 기름 값을 정조준 했다. 국제 유가 하락이 디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기름 값 인하를 통해 소비를 활성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일 “국제 유가 하락은 우리 경제에 큰 호재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는데, 호재가 되기 위해선 우선 기름 값이 떨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야 가계에 여윳돈이 생기고, 가계가 소비를 늘려야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논리다.
업계는 가뜩이나 마진이 줄어 고사 직전인데 기름 값을 더 내리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처사라고 반발한다. 기름 값이 국제 유가 하락 폭 만큼 떨어지지 않는 것은 유류세가 종량제로 고정돼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세금을 내리는 게 먼저라고 주장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9일 오전 석유·LPG 유통업계 간담회를 열어 업계가 석유제품 가격 인하에 '협조'해달라고 주문했다.
◇ 정부 : 기름값 내려라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은 “국제 유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데 주유소 판매가격의 하락 속도는 다소 느린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유가 하락의 혜택이 골고루 전해져서 기름 값이 싸질 수 있도록 업계와 협회에서 협조해달라”고 말했다. 같은 지역에서도 휘발유 판매 가격이 ℓ당 800원 이상의 격차가 벌어지는 만큼 가격을 내릴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앞으로 석유·LPG 가격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알뜰주유소의 확산, 전자상거래 활성화 등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국내 석유가격 인하를 유도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에너지·석유시장 감시단에서 석유제품·LPG 가격 비교를 통해 주유소 간 가격경쟁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휘발유 판매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나선 것은 국제 유가 하락을 기회로 삼아 경제 활력을 높여보겠다는 취지다. 최경환 부총리는 “국제 유가가 하락해 석유·화학제품 원가가 인하됐으므로 이것이 가격에 적절히 반영돼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는 유가하락이 전반적인 제품가격 인하와 국내소비 증가 등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물가구조를 개선하고, 소비·투자 등 내수활성화 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 업계 : 유류세 내려라
석유·LPG 업계는 시장경제체제에서 가격 결정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김문식 한국주유소협회 회장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세금 때문에 주유소가 유통마진을 줄여서 휘발유 가격을 인하할 여력이 크지 않다”면서 “휘발유 판매가격이 ℓ당 1300원 이하로 떨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들은 최저가 주유소와 최고가 주유소를 단순 비교해 리터당 800원까지 가격 차이가 난다고 오해한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ℓ당 890원 가량의 세금을 인하하지 않는 한 국제유가가 떨어져도 휘발유 가격의 판매가격 하락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휘발유 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월 49%에서 12월 말엔 56%까지 치솟았다. 휘발유 1ℓ에는 교통세 529원, 교육세 79원(교통세의 15%), 주행세 138원(교통세의 26%), 부가세 129원(세후 가격의 10%) 등이 붙는다.
서울시내 한 주유소 관계자는 “기름 값은 주유소 임대료, 고용인력 수, 판매전략 등에 따라 결정된다”며 “휘발유 가격을 1400원대까지 내린 주유소의 경우 영업력 확대를 위해 마진을 포기하고 파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