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가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로컬 업체들의 매서운 추격 때문이다. 특히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현대·기아차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 로컬 업체들은 그동안 글로벌 자동차 업체 모델의 '짝퉁'만을 생산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드넓은 자국 시장을 평정해가고 있다.
중국승용차연석회의 등에 따르면 지난 7월 베이징현대의 판매량은 전년대비 32.4% 감소한 5만4160대(잠정치)를 기록했다. 둥펑위에다기아는 전년대비 33.3% 줄어든 3만8대를 나타냈다. 월별 판매량은 언제든지 감소할 수 있다. 문제는 추세다. 올들어 현대·기아차의 월별 중국 판매량은 지난 3월을 기점으로 매월 급감하고 있다.
지난 3월 현대차와 기아차는 중국 시장에서 올들어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현대차는 10만2552대, 기아차는 5만9001대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후 현대·기아차의 월별 판매량은 계속 줄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현대차의 판매 감소 속도가 빨랐다. 지난 3월 최고점을 찍은 이후 4월과 5월에는 월 1만대 규모씩 감소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 6월에는 2만대 가량 줄었다. 상대적으로 기아차는 완만한 하락세를 보였다.
지난 3월 현대차와 기아차 판매량을 합산 실적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현대·기아차의 합산 판매 실적은 16만1553대였다. 하지만 지난 7월에는 8만4168대로 떨어졌다. 불과 4개월만에 판매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월별 판매는 이제 추세적으로 확실하게 우하향하는 모습이다.
시장 점유율도 낮아지고 있다. 지난 3월 현대·기아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10.1%였다. 하지만 이후 계속 하락해 지난 6월에는 7.3%까지 떨어졌다. 아직 판매 실적 확정치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현대·기아차의 7월 점유율은 7%대가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대·기아차의 올해 중국 시장 판매량 목표는 199만대, 점유율은 10.7%다. 이런 추세라면 목표 달성은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 버팀목이었던 중국 시장
지난 2002년 처음으로 중국 시장에 발을 들여 놓은 이후 현대·기아차는 중국 시장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지난 2002년 3만1097대에 불과했던 현대·기아차의 중국 판매량은 이후 매년 10만대 이상씩 판매량이 증가했다.
가장 큰 폭으로 성장했던 시기는 지난 2009년이다. 2008년 중국 시장에서 43만6514대를 판매했던 현대·기아차는 2009년 한해 동안 81만1695대를 판매했다. 불과 1년만에 약 2배 가량의 판매 신장을 이뤘다. 중국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성공은 업계의 화제였다. '현대 속도'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현대·기아차의 성장 속도는 빨랐다.
이후에도 탄탄대로였다. 특히 지난 2010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대부분의 자동차 업체들이 판매 부진으로 고전하던 때에도 현대·기아차는 질주했다. 오히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판매량이 늘어났다. 중국에서는 연간 판매 100만대를 넘어섰다. 큰 성공이었다. 지난 4월에는 중국 누적 판매 1000만대를 돌파했다.
현대·기아차는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섰다. 중국 시장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 중 가장 큰 시장이었다. 적재적소에 신차를 투입하고 현지 전락형 모델을 출시했던 현대·기아차의 전략은 맞아 떨어졌다. 중국에서의 성공은 현대·기아차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지난 2011년 현대·기아차가 기존 양적 성장 전략을 버리고 질적 성장을 선언할 수 있었던 것도 중국에서의 성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동차 업체가 질적 성장을 선언하기 위해서는 양적인 성장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 중국 시장은 현대·기아차가 양적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곳이다. 지금도 현대·기아차가 중국 시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현대·기아차는 현재 중국에 7개 공장, 연산 195만대 체제를 갖추고 있다. 오는 2018년에는 9개 공장, 연산 270만대 체제로 확대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현재 추세대로라면 더 이상의 양적 성장은 장담할 수 없다.
◇ 로컬 업체들의 매서운 추격
현대·기아차가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중국 로컬 업체들의 공세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의 자동차 시장을 해외 업체들에게 전면 개방하지 않았다. 해외 업체가 중국 시장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국 업체와 합작회사를 설립해 진입하도록 했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자국 업체들을 육성하고 드넓은 시장을 해외 업체들에게 완전히 내줄 수 없다는 의지였다.
중국 정부의 이런 방침 때문에 중국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모두 중국 로컬 업체와 합작 형태로 시장에 진출했다. 현대차는 베이징기차와, 기아차는 둥펑위에다와 합작형태로 중국 시장에 진입했다. 해외 업체와 합작을 통해 자동차를 생산하던 중국 로컬업체들은 조금씩 기술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이 가미되면서 중국 로컬 업체들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급속하게 성장했다.
실제로 최근 중국 로컬 업체들은 차량 가격을 중국 내 외국계 합작사 차량의 60~70% 수준으로 선보였다. 로컬 업체들의 저렴한 가격 정책은 성공했다. 로컬 업체들의 상반기 판매량은 전년대비 28.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국 전체 자동차 판매가 8.3% 증가애 그친 것을 감안하면 전체 판매 대비 3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중국 로컬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도 지난 2012년 29%에서 올해 상반기 30%대 후반까지 상승했다.
로컬 업체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성공을 거두자 중국 내 해외 합작 브랜드들도 대대적인 가격 인하에 나섰다. 업체들은 최소 1만 위안에서 최대 5만4000 위안(180만~980만원)까지 가격을 인하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각 업체들은 무이자 할부와 전 모델 보험 혜택, 소비세 보전 등 마케팅 역량을 총동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가격 인하에 나서지 않았던 현대·기아차의 판매량은 급속도로 감소했다.
가격 인하 효과는 컸다. 현대·기아차의 경쟁자인 GM은 지난 5월 8.5%에 머물렀던 시장 점유율이 지난 6월에는 10.2%로 크게 올랐다. 포드도 4.3%에서 5.6%로, 닛산은 5.7%에서 6.2%, 도요타는 3.9%에서 4.2%로 점유율이 상승했다. 로컬 업체인 창안자동차는 4.4%에서 4.5%로 점유율이 올랐고 지리는 전월에 이어 2.4%를 유지했다. 중국 상위 주요 자동차 업체 중 현대·기아차의 점유율만 유일하게 후진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도 뒤늦게 일부 모델에 대해 가격 인하에 나섰지만 실기(失期)한 측면이 크다"며 "지금부터라도 신차 투입과 대대적인 가격 인하 등 마케팅 역량을 집중하지 않는다면 향후 경쟁 업체들과의 격차는 뒤집을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