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STX그룹의 주력 계열사였던 STX조선이 법정관리를 목전에 두고 있다. 채권단의 의사결정 과정이 아직 남아있는 단계지만 이미 STX조선이 가야할 길은 정해진 상태다. STX조선 채권단은 이날 "5월말 부도가 예상된다"며 법정관리 신청을 공식화했다.
한때 재계 13위까지 올랐던 STX그룹은 지난 2013년 유동성 위기이후 사실상 해체작업을 거쳐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수순에 접어들었다.
◇ 수직계열화 '양날의 칼'
STX그룹은 지난 2000년 강덕수 전 회장이 사재를 털어 인수한 쌍용중공업을 모태로, 급속하게 성장했다.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금융권에서 자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하고, 기업에서 나오는 수익을 바탕으로 이를 되갚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강 전 회장은 2001년 디젤엔진 부품업체인 STX엔파코(STX메탈)에 이어 같은 해 대동조선(현 STX조선)을 인수했다. 2002년 산업단지관리공단(STX에너지), 2004년 범양상선(STX팬오션) 등을 잇따라 품에 안으며 몸집을 불렸다.
조선관련 기자재와 엔진, 해운물류로 이어지는 '수직적'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STX그룹은 2000년대 중반 세계 조선·해양업이 호황을 보이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2005년에는 STX건설을 설립했고, 2007년에는 세계 최대 크루즈선 건조사인 아커야즈(현 STX유럽)를 인수해 국내외 업계를 놀라게 했다. 2008년에는 STX 중국 다롄 생산기지를 준공하며 글로벌 생산체제를 구축했다.
인수합병을 통해 거침없는 성장을 이어온 STX그룹은 설립 10여년만에 재계순위 13위까지 도약했다. STX조선은 한때 조선업계 4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과거 쌍용그룹에서 평사원으로 출발했던 강덕수 회장은 '샐러리맨 신화'로 불리며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이같은 STX의 성장 공식은 금융위기가 발생하며 한계에 부딪혔다. 조선과 해운 업황이 장기침체에 들어가며 계열사들에서 나오는 수익으로는 더 이상 빌린 돈을 갚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특히 호황기에 빛을 발했던 수직계열화 구조는 글로벌 경기침체가 시작되자 급속하게 충격을 받기 시작했다. 그룹의 주력인 조선과 해운사업이 부진하자 관련사업을 하던 STX엔진과 중공업 등 다른 계열사들의 재무상태도 급격하게 악화됐다. 호황기에 막대한 수익을 내주던 구조가 불황에 빠지자 막대한 부실을 내는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STX그룹은 결국 지난 2013년 주력 계열사들이 자율협약을 신청하며 사실상 해체수순을 밟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주주였던 강 전 회장은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잃고, 사법처리까지 받게 된다.
◇ 탈출구는 없었다
문제는 자율협약 진행에도 불구, STX조선의 경영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STX 채권단이 4조5000억원 가량을 지원했지만 여전히 마이너스 상태다. 조선경기 침체가 계속되며 신규 수주에 어려움을 겪었고, 과거에 저가로 수주했던 선박들로 인한 우발채무들도 속속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실제 채권단은 내년까지 선박건조 등에 필요한 자금을 최대 1조2000억원으로 전망했다. 특히 이 자금을 투입해 선박을 건조해 인도하더라도 역시 손실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미 막대한 자금지원과 함께 대출을 가지고 있는 은행들 입장에서 더이상 자금을 지원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처해있는 경영환경상 법정관리 신청이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STX조선의 회생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법원에서 법정관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경우 청산 절차에 돌입할 수 밖에 없다.
이미 STX그룹은 해체된 상태다. 과거 STX조선과 함께 그룹 주력계열사였던 STX팬오션(현 팬오션)은 하림그룹에 인수됐다. STX조선의 법정관리가 수용되고, 회생절차가 이뤄지더라도 한때 재계의 주목을 받았던 STX(System Technology eXcellence)라는 브랜드는 역사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