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거나 자유롭다. 궁상맞거나 화려하다. 독거노인, 무연사회, 고독사 등 그동안 암울하게만 그려졌던 '혼자'가 이젠 새로운 대세가 되고 있다. 더불어 살면서도 때로는 1인 라이프를 즐기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두 시선 모두 '혼자'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혼자'는 다면적이며, 변화무쌍하다. 앞으로 1인 사회를 어떻게 맞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에 더하기 1이 될 수도, 빼기 1이 될 수도 있다. 1인 라이프가 빚어내는 다양한 현재와 미래를 살펴봤다. [편집자]
매일 아침 BMW를 타고 출근하는 30대 직장인 박도경 씨(가명). 그는 지인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산다. 옷도 잘 빼입고 다니는 데다가 자유롭게 사는 모습이 영락없는 '화려한 싱글'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말 못 할 속사정이 있다.
3년 전 박 씨에게는 대학 시절부터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다. 잘 나가는 은행원인 그녀와 결혼을 약속한 뒤 전셋집을 알아봤는데, 갑작스레 예비 장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우리 애가 돈을 얼마나 버는데 자네가 집 한 채를 못 해오느냐"는 것이다.
본인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집을 사기 힘들었던 그는 결국 그녀와 헤어지고 말았다. 자괴감에 빠진 박 씨는 남들에게 당당하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에 지난해 BMW를 샀다. 남들은 이 고급 차를 부러워하지만, 박 씨는 BMW를 몰다 보면 종종 씁쓸해지곤 한다.
1인 가구로 사는 이들 중에는 박 씨처럼 어쩔 수 없이 '싱글'인 경우가 적지 않다. 늦은 취업과 늦은 결혼, 자녀의 유학 등 갖가지 이유로 '비자발적인' 1인 가구로 사는 경우다. 이들에게 '싱글'은 자유롭게 느껴지기보다는 벗어나고 싶은 타이틀이다.
◇ 전셋집에 3억원 "그 돈으로 드림카 살래"
6년 차 대기업 직장인인 김현정 씨의 경우도 그렇다. 그는 얼마 전 새로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김 씨는 퇴근 후 헬스클럽에 가고, 곧장 유도를 배우러 가는 일정을 소화하며 외로움을 달랜다.
자신을 '쉬운 남자'라고 표현하는 그에게 결혼은 어려운 문제다. 김 씨는 "내 연차에 1억원을 모았다고 쳐도 경기도 군포역 3번 출구 근처 건물의 전세금이 3억원을 넘는 게 현실"이라고 푸념했다. 아등바등하면서 결혼하느니 그 돈으로 고급 차를 사겠다는 게 김 씨의 솔직한 심정이다.
결혼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김 씨는 덜컥 겁이 난다. 애 둘을 낳은 그의 친구는 출근 전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막노동을 해 생활비를 보탠다고 한다. 반면에 거래처 사장 아들들을 보면 눈꼴시다. 김 씨는 "그들은 부모를 잘 만난 덕에 서른 살을 넘기 전에 집을 마련해 결혼하지만, 나는 빡세게 매년 3000만원씩 10년을 모아야 겨우 살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사회학자 노명우는 책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비자발적 1인 가구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화려한 싱글'이라는 거짓말은 보호받지 못한 채 홀로 버려진 사람들을 생략한다. 결혼 따위는 우습게 알아도 괜찮은 '화려한 싱글'도 있지만, 생존을 위협받는 한계 상황에 놓여도 아무도 돌보지 않는 '처참한 싱글'도 있다"고 지적했다.
◇ 물가에 울고 범죄에 떠는 1인 가구
▲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 참석한 자동차관련 학과 학생들이 모의 면접을 보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비자발적인 1인 가구의 하루는 화려하지도 자유롭지도 않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 임수빈 씨는 지방에서 상경해 혼자 살고 있다. 임 씨의 하루는 과목별 스타 강사의 강의를 찾아 이동하느라 빡빡하다.
이동 전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끼니를 때울 때마다 임 씨는 혀를 내두른다. 임 씨의 고향에서 500원짜리인 빵이 1500원에 팔리고 있어 '날강도'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임씨가 가장 걱정하는 건 안전이다. 범죄자의 무단 침입을 막기 위해 보안장치를 해뒀지만 떠도는 소문을 들으면 소름이 끼친다. 몇 해 전 납치됐다는 동네 학생은 독서실에서 집 앞으로 가는 짧은 사이에 변을 당했는데, 범인에게서 납치 계획서 2장이 나왔다고 한다.
임 씨의 부모님도 그와 전화통화가 안 될 때마다 "머릿속으로 공포소설 100권을 쓴다"며 한숨 쉰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1인 가구가 됐는데, 생활비는 더 든다는 것도 문제다. 이윤미 한국투자증권 책임연구원은 "1인 가구는 부양과 양육 부담이 없어 가처분 소득 비중이 큰데도 주거와 내구재 등 2인 이상 가구에서 공유하는 품목을 일일이 사야 해 소비성향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과 사는 것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임 씨는 "보험사 광고처럼 화목한 가족이 어디 있느냐"고 토로했다. 볼 때마다 취직을 언제 할지 질책을 하니, 어쩌다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올 때 서너 시간 정도만 봐야 아름다운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 '혼자'로 내몰린 사람들
▲ 지난 6일 오후 업무를 마친 직장인들이 고단한 하루를 지낸 지친 몸을 빽빽한 지하철 속에 맡기고 귀가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1인 가구는 아니지만 혼자 지내야만 하는 이들도 많다. 개인사업자 고성호 씨는 부인과 자식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다. 아침 식사는 선식이나 우유로 때운다. 점심은 주로 거래처와 먹지만, 약속이 없으면 굶거나 분식으로 해결한다.
불규칙하게 식사를 하다보니 영양 불균형이 오는 걸 실감한다. 고 씨는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12시"라며 "애들 교육비를 대려고 이렇게까지 일하는데 그만큼 성과가 안 나오면 맥 빠진다"고 하소연했다.
회사의 권위적인 집단주의 문화나 끊이지 않는 집안 일은 사람들을 혼자로 내몰기도 한다. 직장인 김선희 씨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종종 떠난다"고 말했다. 김 씨는 "평소엔 동물원, 놀이공원처럼 아이가 좋아하는 곳 위주로 놀러 다니지만 혼자 여행을 가면 내가 원하는 곳에서 힐링한다"고 강조했다.
회사의 권위적인 집단주의 문화나 끊이지 않는 집안 일은 사람들을 혼자로 내몰기도 한다. 직장인 김선희 씨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종종 떠난다"고 말했다. 김 씨는 "평소엔 동물원, 놀이공원처럼 아이가 좋아하는 곳 위주로 놀러 다니지만 혼자 여행을 가면 내가 원하는 곳에서 힐링한다"고 강조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5명 중 한 명은 6개월에 한 번꼴로 혼자서 숙박 업소를 찾는 '혼텔족'인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어때'와 '호텔타임'을 운영 중인 위드이노베이션은 자체 커뮤니티 '여기톡' 이용자 125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의 35%가 홀로 숙박 업소를 이용해봤다고 답했고, '혼텔'의 이유를 묻자 '기분 전환 겸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가 38%로 가장 많았다.
변미리 서울연구원 글로벌미래연구센터장은 '서울의 4종4색 1인가구, 대세로 자리 잡다'라는 보고서에서, 스스로 원하지 않았지만 혼자 살게 된 사람들에게 사회적 보살핌을 제공하는 공공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커뮤니티 차원의 사회적 연결망을 복원하고 건강검진, 심리상담 서비스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