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제네시스'가 올해 탄생 10년을 맞았다. 대표 세단 그랜저를 뛰어넘는 단일 럭셔리 모델로 태어나 이제는 3개 모델을 갖춘 고급차 브랜드를 구축한 게 제네시스다. 동시에 제네시스는 양적 성장으로는 한계를 맞고 있다는 현대·기아차의 미래이기도 하다. 제네시스가 걸어온 10년의 이력을 토대로 오늘의 브랜드 위상을 점검하고,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맞을지 짚어본다.[편집자]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4년 서울 강남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샀다. 세계에 현대차 위상을 뽐낼 마천루를 서울 복판에 지어 올리기 위해서였다. 사업 호조로 쌓인 돈은 넉넉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걸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하던 차였다. 재규어-랜드로버, 볼보, 크라이슬러 등이 매물로 나오며 현대차에 입질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이를 물리고 10조원 넘는 돈을 현대차의 랜드마크를 세우는 데 몰방했다.
그 배경 중 하나가 당시 곧 브랜드로 출범시키려던 '제네시스'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유럽 명차 브랜드 인수에 편승해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것은 한계도 있고 현대차의 방식과도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기존 브랜드를 현대차에 덧대는 것보다 현대차만의 독립적 고급화 전략을 실현하면 품질로도, 브랜드 색깔로도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밑그림이 정 회장 머릿속에 있었다.
◇ "6종 라인업 갖추고 판매망 구축"
제네시스는 현대차그룹의 전략적 로드맵상 2단계에 접어든 상태다. 2017년까지가 1단계였다. 2세대 제네시스(DH) 'G80'을 중심에 두고 아래위로 각각 'EQ900(G90)', 'G70' 등 3종의 차급별 세단 플래그십(기함) 모델을 갖추는 게 작년까지 밟아야 할 단계적 목표였다.
제네시스 2단계는 올해부터 3년 뒤인 2021년까지다. 이 시점까지 차종을 6개로 늘려 독자적인 고급 브랜드로서 수요층을 확대하는 게 기본적인 목표다. 추가될 3개의 모델은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스포티 쿠페, 중형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등으로 계획돼 있다. 기존 3종 라인업 판매에 간섭 없이 고급차 수요자들의 선택지를 늘리는 방향이다.
제네시스는 일단 이달 국내에서 종전 EQ900의 페이스리프트(부분 변경) 모델을 G90라는 해외명으로 통일해 새로 출시할 예정이다. 신차급으로 디자인을 변경해 대형 고급차 시장 내 지배력을 확대한다는 복안이 깔려 있다. 이어 내년에는 제네시스의 주축인 G80의 3세대 모델을 선보이고, 첫 번째 SUV 모델 'GV80' 출시도 계획하고 있다.
로드맵 2단계에서 또 하나 중요한 목표는 제네시스만의 판매망을 갖춰 나가는 것이다. 지금은 국내 일부를 제외하고는 기존 현대차 매장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수요층이 다른 만큼 제네시스만의 고급 마케팅을 진행하려면 이원화 전략을 세우는 게 필수다.
하지만 독자 판매망을 갖추기 위해선 그만큼 초기투자비가 많이 들어간다. 3년 전 브랜드를 출범하면서도 이를 바로 현실화하지 못한 이유다. 투자비와 판매비 증가가 오히려 수익성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서 2021년까지는 완전한 독립 판매망을 구축하는 것보다는 일부 현대차 딜러에게 제네시스 판매권을 주는 전략을 꾀하고 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접점을 늘려가는 방식도 병행한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작년 말 미국 제네시스 판매를 위한 별도법인(GMA)을 설립했다. 최근에는 캐나다에서부터 독점 점포를 개설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21년까지 독자적 제네시스 전시장을 설치할 수 있는 현대차 딜러들에 한정해 제네시스 판매권을 주는 식으로 판매전략에 변화를 주고 있다.
▲ 2017년 6월 신세계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하남에 공개된 'GV80' 콘셉트카/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 중국·유럽도 양보할 수 없다
제네시스가 글로벌 고급 브랜드로 성장하려면 세계 최대인 중국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지난 5월 한 외신 인터뷰에서 "제네시스의 제품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중국 럭셔리 시장에 대한 특성도 잘 봐야 한다"며 "이르면 내년 중국 시장에 진출해 3~4년 내에 가시적 성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여러 불확실성이 많은 시장이지만 굴지의 자동차 업체들이 포기하지 못할 만큼 규모가 크다. 고급차만 한 해 200만대 넘게 팔린다. 특히 현대·기아차에는 최근 급격한 실적 악화를 겪은 가장 아픈 손가락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내에서 생산해 중국으로 판매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관세 등의 장벽이 시장 경쟁력을 반감시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국 현지에 제네시스의 첫 해외 생산기지를 만드는 방안이 최근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현재 제네시스는 국내에서만 생산해 북미·중동·러시아 등 해외 각지로 수출한다. 하지만 중국을 공략하려면 현지 생산이 필수다. 고급차 브랜드 대명사로 제네시스가 따라잡아야 할 상대인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도 합자회사 방식으로 이미 중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업계에서는 로드맵 2단계에서 내놓을 신차 중 중형 CUV(프로젝트명 'GV70')를 중국에서 생산하는 것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최근 현지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이 차급을 현지에서 판매하고 판매를 늘려, 이를 마중물 삼아 다른 국내 생산 제네시스 차종의 수출도 늘려나가겠다는 전략이다.
고급차 본산인 유럽시장 진출도 숙제다. 현대차는 역시 로드맵 2단계 시기인 2020년께로 그 진출 시점을 잡고 있다. 하지만 유럽 시장에서 빠른 시장점유 성과를 보는 것은 서두르지는 않고 있다. 도요타 고급브랜드 렉서스조차 고전할 정도로 현지 아성이 공고한 시장이란 점에서다.
▲ 지난 6월 부산모터쇼에 선보인 제네시스 에센시아 콘셉트카/사진=현대차 제공 |
◇ 승부는 3년 안에…
2021년 이후로 계획된 제네시스 로드맵의 3단계는 아직 밑그림 수준이다. 6개 라인업에 더해 동력계통을 다양화해 친환경 모델을 도입하고, 독점 딜러를 완전히 분리 운영하는 판매 전략 정도의 청사진이 그려져 있다. 이는 시장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수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친환경차 도입 등은 2단계 시기 내로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현재 현대차그룹에서 제네시스 사업을 이끄는 건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제네시스사업부장(부사장)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서 람보르기니 브랜드를 키운 대표적인 마케팅 전문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4실 7팀 체제의 제네시스 사업부 조직을 운영하는 그는 전무로 영입된 지 2년 반만인 지난 6월 승진했다. 현대차가 제네시스에 얼마나 힘을 싣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제네시스를 지원사격 하는 인물들도 쟁쟁하다. BMW M출신의 알버트 비어만 시험고성능차담당 사장이 성능을, 벤틀리·람보르기니 출신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과 역시 벤틀리 디자인을 총괄했던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전무)이 영입돼 제네시스 디자인을 지휘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앞으로 3년이 제네시스 성패에 관건이라고 내다본다. 이 시기가 고급 브랜드로서 생존의 분수령이라는 얘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최근 부진을 극복할 수 있느냐는 제네시스 브랜드가 어떻게 자리를 잡는지에 달렸다"며 "판매도 중요하지만 차별화한 전략과 독창성을 보여주는 것이 제네시스뿐 아니라 그룹 전체 브랜드의 생존 여부를 가를 수 있다"고 말했다.[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