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테크놀로지그룹과 한국아트라스비엑스의 합병이 삐걱거리고 있다. 한국아트라스비엑스의 소액주주가 합병비율이 불리하다고 반발하면서다. 시민단체 등이 소액주주의 편에 서면서 논란은 커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한국아트라스비엑스가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 534만6107주(58.43%)다. 자사주가 합병과정에서 지배주주인 한국테크놀리지그룹엔 지배력을 강화하는 '자사주의 마법'을 부리지만 한국아트라스비엑스 소액주주엔 합병비율이 불리해지는 '자사주의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26일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자회사인 한국아트라스비엑스를 흡수합병한다고 공시했다. 한국아트라스비엑스는 자동차 배터리 전문 회사로, 올 1~3분기 영업이익률이 10.7%에 이르는 알짜회사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이번 합병으로 자회사를 총괄하는 순수 지주회사에서 수익사업을 벌이는 사업형 지주회사로 체질을 바꿀 수 있게 됐다.
합병비율은 1대 3.39로, 한국아트라스비엑스 1주를 가진 주주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 3.39주를 받을 수 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자신이 보유한 자사주 132만5090주를 우선 한국아트라스비엑스 소액주주에 합병대가로 지급하고, 부족한 부분은 합병신주를 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국아트라스비엑스 소액주주는 합병비율에 불만을 보이고 있다. 소액 주주가 반발하는 것은 자사주때문이다. 지난 9월 기준 한국아트라스비엑스 지분구조를 보면 한국테크놀로지그룹 31.13%, 소액주주 10.44%, 자사주 58.43% 등이다. 전체 지분 중 자사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이 넘는 기형적인 구조다.
한국아트라스비엑스 자사주는 2016년 자진상장폐지 '실패의 흔적'이다. 당시 한국아트라스비엑스는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폐지하기 위해 시장에서 534만6107주(58.43%)를 공개매수했다. 공개매수에 투입된 자금만 2673억원에 이른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총 89.56%의 지분을 확보했지만 상장폐지에 실패했다. 상장폐지를 위해 최대주주가 지분 95%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못해서다.
상장폐지 실패 이후 지난 4년간 회사 '금고'에 보관돼있던 자사주는 최근 합병이 추진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자사주 등을 감안해 합리적으로 합병비율을 산정했다는 입장이다. 이번 합병과정에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보유한 한국아트라스비엑스 지분 31.13%와 한국아트라스비엑스 자사주 58.43%에 대해선 합병 신주가 배정되지 않았다. 소액주주에만 신주가 주어진 것이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자사주에 합병대가가 배정되지 않으면서 주주가치 증대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관계자는 "자사주 등을 감안해 합병비율을 조정했다"며 "합병 후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주식을 갖게되는 한국아트라스비엑스 주주는 배당이 3배 가량 늘어나게 되는 등 주주가치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아트라스비엑스의 주력 사업인 납축전지는 환경규제로 쇠퇴기"라며 "앞으로 리튬전지로 전환하기 위해선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브랜드로 자금과 인력 투자가 단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아트라스비엑스 소액주주의 입장은 다르다. 합병에 앞서 자사주를 먼저 소각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가는 오르고, 합병가의 잣대인 주가가 오르면 한국아트라스비엑스 소액주주 합병비율이 유리해진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도 "자사주를 소각하는 등의 조치 이후 합병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원사격에 나섰다.
류영재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한국아트라스비엑스 현금으로 산 자사주가 지배주주 이익을 강화하는 한 방향으로 활용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자사주를 소각하게 되면 시장에서 한국아트라스비엑스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되고, 소액주주 합병비율도 유리하게 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1타 3피' 자사주
자기주식(자사주)은 회사가 자기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회사 금고에 보관된 주식이라고 해서 금고주(treasury stock)라고도 한다.
회사가 돈을 들여 자사주를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주가 부양이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수가 줄어 주당 가치가 올라가는 원리다. 자사주 매입이 배당과 함께 대표적인 주주 환원정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주가 부양을 위해선 자사주 매입에만 그치면 안 된다. 자사주 소각이 뒤따라야 한다. 금고에 있던 주식을 태워 없앤다는 얘기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금고에 보관돼 있던 자사주가 다시 시장에 풀릴 일이 없어진다. 일례로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3~6월 680억원 규모 자사주를 매입한 이후 소각했다.
자사주는 경영권 방어용으로도 활용된다. 자사주엔 의결권이 없지만 경영 분쟁시 우호세력에 자사주를 팔면,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2015년 넥슨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엔씨소프트는 자사주를 넷마블에 넘겨 경영권을 방어했다.
지주회사 전환과정에선 대주주 지배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는 회사 A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A회사 주주는 기존 지분율대로 지주사와 사업회사의 지분을 갖게 되는 동시에 지주사(존속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에 사업회사(신설회사) 지분이 배정된다. 죽어있던 자사주 의결권이 부활해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해준다고 해 '자사주 마법'으로 불린다. SK, CJ 등이 지주사 전환과정에서 '자사주 마법'을 부렸다.관련기사 ☞ [인사이드 스토리]'지주회사 마법' 어떻게 이뤄지나
이번 한국테크놀로지그룹과 한국아트라스비엑스 합병 과정에서도 자사주는 대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한국아트라스비엑스 자사주'엔 신주를 배정하지 않아도 되는 덕분이다. 한국아트라스비엑스 소액주주의 주장대로 자사주를 소각한뒤 합병이 진행되면 한국아트라스비엑스 주가가 올라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지급해야할 주식 부담이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