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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타이레놀'만이 답이었을까

  • 2021.06.08(화) 15:08

백신 접종 후 이상 반응 완화에 도움
항체 형성 방해 등의 부작용 우려도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접종 후 불편한 증상이 있으면 타이레놀과 같은 소염 효과가 없는 진통제를 복용하는 게 적절한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정례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방역당국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타이레놀을 언급하면서 '백신 접종 전에 미리 타이레놀을 사놓아야 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1년 전 마스크 공급 대란처럼 타이레놀 품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방역당국이 특정 상품을 홍보했다는 논란도 제기됐다.

백신은 병원균이나 바이러스 등의 병원체에 감염되기 이전에 몸속에 인위적으로 병원성을 약하게 만든 병원체를 주입해 면역체계를 만든다. 이때 접종 부위에 통증이 생기거나 열이 나는 등의 이상반응이 나타난다. 백신을 맞고 항체가 생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백신 면역반응'이다.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달리 전문가들은 백신 면역반응을 면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본다.

하지만 사람마다 면역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유독 심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고열이나 두통이 심할 때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해열진통제가 발열과 두통 등의 통증을 가라앉히는 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타이레놀은 이름이 가장 잘 알려진 의약품이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기도 하다. 정 질병관리청장이 정례브리핑에서 타이레놀을 언급한 것도 이런 이유였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백신 접종 후 아세트아미노펜 복용의 효과나 복용 방법에 대한 고지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백신 접종 후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는 것이 백신 효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또 아세트아미노펜은 독성이 강해 철저한 복약 지도가 필요하다. 이는 안전성과 직결돼있는 만큼 방역당국의 특정 상품 홍보 논란보다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우선 아세트아미노펜은 소염 효과가 없는 진통제다. 즉 소염진통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소염진통제는 백신 바이러스가 체내 면역세포가 싸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염증을 가라앉혀 백신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 반면 아세트아미노펜은 항체 생성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백신의 이상반응을 완화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세트아미노펜에 대한 다른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많은 의학 전문가들이 백신 접종 후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면 항체 생성을 방해해 백신의 효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실제로 독감 백신 접종에서는 아세트아미노펜이 항체 형성을 방해하지 않지만, 영유아 필수 접종 시에는 항체 형성을 방해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특히 상대적으로 빠르게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임상 데이터가 부족하다. 감기 바이러스의 일종인 아데노 바이러스를 전달체로 활용해 만들어진 '바이러스 벡터' 백신의 경우 혈전 위험성이 제기됐다. 코로나19 백신의 심각한 부작용인 혈전이 생기는 메커니즘은 여전히 찾지 못한 상태다. 아세트아미노펜이 코로나19 백신 효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셈이다.

아세트아미노펜의 부작용 문제도 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독성이 강한 의약품이다. 함께 복용하는 약물이나 기저질환, 환자의 체중에 따라 양을 조절해야 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아세트아미노펜을 간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퇴출시킨 바 있다. 반면 우리나라 방역당국은 직접 타이레놀을 언급, 국민들에게 '안전한 약'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 탓에 잘못된 방법으로 복용하거나 남용하는 사례도 자주 보인다. 백신 접종을 하기 전에 미리 약을 먹거나 접종 이후 며칠 동안 이어서 복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의사협회는 "해열제는 항체 형성을 저하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힘들지 않으면 해열제를 먹지 않는 게 좋다"며 "38.5도 이상이거나 많이 힘들 때 항체 형성에 영향을 적게 미치는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을 권장한다"고 밝혔다. 또 아세트아미노펜 구매 전에 약사의 복약지도에 따를 것을 강조했다.

정례브리핑으로 혼란이 빚어진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제품명 리스트를 공개했다. 그러나 약국에서 소분 판매가 불가능한 조제용 일반의약품이 포함돼 있어 또 한 번 혼란을 야기했다. 이에 약국과 국내 편의점에서는 타이레놀 품절 사태까지 나타나고 있다. 의사와 약사들도 방역당국의 미숙한 행정을 비판하며 정부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와 방역당국은 코로나19가 처음 창궐했던 1년 전 마스크 공급 대란을 일으키며 혼란을 빚은 경험이 있다. 당시의 경험을 교훈 삼아 이제는 신속하고 정확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의약품 복용의 위험성이나 복용법을 고지하는 것은 안전과 연관된 만큼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정확한 안내로 혼란을 줄이고 백신 접종률에 맞춰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의약품 수요를 맞추는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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