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매출 등의 재무 수치보다 환경과 같은 비재무적인 요소가 기업에 대한 평가를 크게 좌우하면서 '얼마나 윤리적으로 경영했는지'가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 통신사인 KT는 기업들의 ESG 지수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만한 획기적인 사업을 고안해냈다. 종이 문서를 디지털화하는 이른바 '페이퍼리스(paperless)'다. 회사에서 하루에도 수천장씩 쏟아지는 종이를 디지털화하면 불필요한 폐기물을 줄이고 자연을 보호할 수 있다.
문서의 디지털화를 위해선 '보안'이 필수다. KT는 블록체인 기술로 답을 찾았다. 블록체인으로 데이터의 보안을 비롯해 법적인 증명, 폐기 등 문서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올 3월부터 KT의 문서 디지털전환 특별팀(Document-DX TF)을 이끌고 있는 김태희 팀장은 20일 비즈니스워치와 인터뷰에서 "통합 페이퍼리스 사업은 결국 사회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팀장은 이메일과 전자결재 등 기업업무솔루션 '비즈메카' 사업에 오랜 기간 몸담은 이 분야 전문가이자 회사에 관련 신사업을 제안한 인물이다.
연내 블록체인 新공인전자문서센터 출범
KT는 관련 고시 개정이 완료되는 대로 '신(新)공인전자문서센터'를 신청해 연내 출범할 계획이다. 모든 문서의 디지털 전환을 목표로 하는 이 플랫폼은 '도큐먼트(Document)-DX'로 불린다. 이는 문서의 생성·등록·보관·열람·발급·증명·폐기 등 생애주기 전반을 관리한다.
기존에도 KT는 비즈메카 사업부를 통해 문서를 일정한 규격에 맞는 전자문서로 교환하는 EDI(전자문서교환) 사업을 해왔다. 하지만 별다른 기술 혁신 없이 고정된 고객사를 대상으로 B2B(기업간 거래) 사업에 치중하다 보니 사업 규모에 진전이 없었다.
비즈메카 EDI 사업을 총괄하던 김 팀장은 올 초 회사에 신박한 사업 제안을 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넣어 보자는 것이다. 전자문서 사업을 생애주기 전반으로 확장해야겠다는 큰 그림이다. 무엇보다 전자문서 폐기를 명문화한 전자문서법의 개정이 이뤄지는 등 시기적으로 절묘하게 맞물려갔다.
김 팀장은 "기존의 기술기반, 사업구조, 영업 방식으로는 페이퍼리스 사업이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직면하게 됐다"며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블록체인을 기술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전자문서 사업 체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이를 올해 초 회사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마침 KT 경영진은 디지털 컴퍼니(DIGICO) 전환과 ESG 경영을 강조하고 있었다. 디지털 전환과 ESG 경영에 페이퍼리스 사업이 기여할 역할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 김 팀장이 현재 이끄는 도큐먼트-DX TF다.
이 플랫폼의 가장 큰 특징은 본격적인 '내용증명' 서비스가 가능하단 점이다. 김 팀장은 "공인전자문서센터에 보관된 전자문서에 대한 원본증명과 KT의 공인전자문서중계자로서의 유통증명을 결합해 내용증명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내용증명의 법적 신뢰성이 보장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데이터 체인'이란 블록체인 기술이 쓰였다. 공인전자문서센터 내에 데이터를 저장·유통·삭제하는 전반에 이용되는 이 기술은 데이터의 위변조를 불가능하게 해 거래원장에 기록된 데이터의 신뢰성을 보장한다. 전자계약서상 계약 성립 일시를 법적으로 증명하고 전자등기의 유통 이력을 저장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이다.
김 팀장은 "KT에서 특허를 확보한 데이터 체인 기술은 일반적으로 거래 이력만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블록체인의 트랜잭션 내에 대용량의 데이터를 직접 저장하고 삭제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저장된 문서문서의 진본성에 대한 내용증명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종이 70% 절감·민감정보 철벽 방어
도큐먼트-DX 플랫폼은 ESG 경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페이퍼리스 사업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단연 환경이다. KT에 따르면 이 플랫폼을 활용할 경우 한 기업당 절감되는 종이량은 최대 70% 수준이다.
중소형 금융사의 경우 약 2000~6000박스의 종이문서를 사무실에 보관하고 있다. 박스당 들어가는 종이는 평균 600장. 법적 의무보관 기간이 지난 이후에도 혹시 리스크가 있을지 몰라 최소 120만장의 문서를 별도 공간을 할애하면서까지 보관하고 있다.
문서 보관을 위해 연간 수반되는 비용은 장당 20원으로 계산할 때 최소 2400만원. 도큐먼트-DX 플랫폼을 이용하면 보관·관리비를 4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어 경제적인 효과가 뚜렷하다.
기업의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해 준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기여도 기대된다. 도큐먼트-DX 플랫폼에 쓰인 블록체인 기술은 특히 보안 측면에서 획기적이다. 일례로 기업이 보관한 전자문서를 열람하는 경우 공동인증서 외에도 DID(블록체인 전자신분증시스탬) 인증을 거쳐야 한다.
김태희 팀장은 "신공인전자문서센터가 민감정보 보관과 보호에 필요한 정보보호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기업이 별도로 정보보호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과 운용유지 비용을 절감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수준의 데이터 보호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이 플랫폼이 안착한다면 디지털 중심의 업무 패러다임 시프트가 가능할 것이라고 김 팀장은 강조했다. 그는 "기존의 종의 문서와 전자문서가 혼합돼 어정쩡한 디지털화가 아닌, 디지털 자산 중심의 진정한 디지털화를 이루는 게 목표"라며 "이를 위해 혁신적이며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들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1차 타깃은 보험사·프랜차이즈 본사
KT는 신사업을 안정적으로 출범하기 위해 이달 각종 협력사와도 손을 잡았다. 넷케이티아이와 케이원정보통신, 스테이지파이브, 플랜아이, 포뎁스, KCB정보통신, 포스토피아, 아이앤텍, 애니모비, 동도시스템, IR큐더스 등이 그곳이다. 이달 말까지 협력사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모두 신전자문서센터 서비스로 B2B 사업을 하는 재판매사다. 김 팀장은 "신공인전자문서센터 서비스에 각 사의 전문 솔루션을 결합한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권장하고 있으므로 단순 위탁판매사업보다는 큰 수익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예상되는 어려움도 있다. 대부분의 조직 내부에 기존 종이 문서 중심의 프로세스가 굳건한 탓이다. 이런 내부 저항을 혁신하지 않고서는 실질적인 수요처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게 그의 고민거리다.
KT는 우선적으로 종이문서의 전자화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보험사를 포함한 금융기관, 유통사, 프랜차이즈 본사 등을 공략할 예정이다. 특히 보험사의 경우 이미 NH농협생명 등 다수를 고객사로 확보했다.
김 팀장은 "서류나 문서 보관 의무를 규정한 법은 상법, 공공기록물 관리법, 신용정보법, 전자금융거래법, 의료법 등 공공기관과 산업전반에 걸쳐 있다"며 "개정된 전자문서법에 따라 각양 각층에서 원본 전자문서 보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어 그는 "각 산업별 전문 협력사를 통해 종이 문서 중심의 프로세스 혁신과 함께 내부 저항을 극복하면서 시장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시장 파이는 당분간은 민간이 더 크지만, 공공기관도 클라우드를 점진적으로 확대 수용하고 있으므로 민간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