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 6단체장을 만난 것에 이어 노동계 양대 단체 중 하나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지도부를 찾았다. 국정 운영 맨 윗자리에 '경제 살리기'를 두고 있는 윤 당선인이 재계와 노동계를 동시에 끌어안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변함없는 친구로 계속 남겠다"
15일 윤 당선인은 서울 여의도 한노총을 방문해 김동명 위원장 등 지도부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윤 당선인은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국가나 기업은 지속 가능 발전이 어려운 시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고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한국노총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동명 한노총 위원장은 "새 정부와 모든 문제, 모든 현안에 대해 어떠한 틀에도 얽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화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어 "근로시간과 최저임금을 포함한 임금체계 문제에 접근하는 정부의 태도가 향후 5년간 노정관계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지난해 출범한 플랫폼노동공제회에 대한 윤 당선인의 관심을 부탁했다. 김 위원장은 "법과 제도의 바깥에 방치된 플랫폼 노동자와 연대하기 위한 플랫폼노동공제회가 빠르게 자리잡기 위해선 정부의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노총은 9가지 개선안을 요구했다.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기본법 제정 △노동이사제를 통한 공공기관의 투명성 강화 △산업전환 고용영향 사전평가, 산업·지역별 노동전환서비스 제공 △플랫폼종사자 기본권리 보장, 청년알바보호법 △공무원 타임오프 적용 △기초연금 인상, 국민연금 감액 미세조정 △재난적 의료비 지원 확대 △한국형 상병수당 도입 시기 단축 △지역 필수의료 확대 등이다.
윤 당선인은 한노총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 출마 이후 세 차례나 한노총을 방문했다. 이날 윤 당선인은 "나는 늘 '한노총의 친구가 되겠다'고 말했고, 앞으로도 변함없는 친구로 계속 남겠다"고 전했다.
새 정부의 핵심 요직에 한노총 인사도 포진됐다. 한노총 출신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복지문화분과 간사를 맡고 있다. 한노총에서 26년간 일한 이정식 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은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깜짝 발탁됐다. 윤 당선인은 그에 대해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고 합리적 노사관계 정립의 밑그림을 그려낼 적임자"라는 믿음을 보였다.
공약 두고는 대립
새 정부와 한노총이 앞으로도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나갈지는 지켜봐야 한다. 경제 살리기를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로 두고 있는 윤 당선인 입장에선 재계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윤 당선인을 만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일자리 모습이 다양해져 노동자 법제가 대폭 개정돼야 하는데, 우리 노사관계 풍토가 국가 경쟁력 발목을 잡고 있다"며 "공권력 집행이 과감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서로 대립하고 있는 노사 사이에 윤 당선인이 끼어있는 셈이다.
윤 당선인의 노동 공약을 두고 한노총과 의견이 대립되기도 했다. 윤 당선인은 공약집 '노동개혁' 부문을 통해 현행 근로기준법은 20세기 공장법 방식으로 획일적, 경직적인 근로시간·임금규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1~3개월→1년 이내로 확대 △초과근로시간을 장기휴가로 사용하는 연간 단위 근로시간저축계좌제 △전일제근로와 시간제근로를 자유롭게 전환하는 근로전환 신청권 △직무 성과형 임금체계 등을 제시했다. 노사관계 개선을 위해선 △노사관계 전문가를 노동위원회 조정담당 상임위원으로 임명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정착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 공약에 대해 지난 3월 한노총은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선택적근로시간제에 대해선 "사용자 편의에 따라 장시간 노동이 가능해지고 노동자는 초과임금도 건강권도 손해 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직무 성과형 임금체계에 대해선 "임금체계는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다"고 반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