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실리콘 웨이퍼(반도체 기판) 생산기업인 SK실트론이 SK그룹의 알짜 계열사로 거듭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시장이 커지면서 반도체의 핵심 재료인 웨이퍼 수요도 늘어난 덕분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웨이퍼 가격이 얼마든 물량부터 빨리 확보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높아진 웨이퍼의 몸값은 SK실트론의 선수금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선수금은 물건을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고 받은 계약금으로, '착한 부채'로 불린다. 반도체 회사들이 장기공급계약금을 미리 내면서 SK실트론의 '곳간'이 두둑해 지고 있는 것이다.
SK실트론에 줄 서는 반도체 회사
최근 한국신용평가는 SK실트론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올리면서 올해 중 SK실트론으로 유입되는 선수금이 6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분석했다. 웨이퍼를 선점하려는 고객사들이 장기공급계약 선수금으로 수천억원을 미리 낸 것이다.
회사 측의 설명도 다르지 않다. SK실트론 관계자는 "사내 자금팀이 한신평에 낸 자료를 바탕으로 선수금이 예측됐다"며 "이번에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하면서 받은 선수금"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SK실트론의 주요 고객은 SK하이닉스·삼성전자·인텔·마이크론 등이지만, 이번 계약 상대와 기간은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이번 장기공급계약은 최근 공장 증설 물량에서 대부분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SK실트론은 지난 3월 본사가 있는 구미국가산업단지에 3년간 총 1조495억원을 투입해 300mm 웨이퍼 생산공장을 건설한다고 밝혔다. 300mm 웨이퍼는 현재 SK실트론 매출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핵심제품의 '캐파'(생산능력)를 더 키우겠다는 것이다.
1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지만 SK실트론 입장에선 재무적 부담이 크지 않은 편이다. 새 공장의 '첫 삽'을 뜨자마자 웨이퍼 장기공급계약이 체결되면서다. 올해 들어오는 선수금만 총 투자의 60%에 이르는 것이다.
한신평은 "증설 물량의 상당 부분이 고객사와의 장기공급계약으로 소화되면서 증설 물량의 많은 부분이 장기공급계약으로 체결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선수금은 이전 계약과 비교해도 규모가 큰 편이다. 2018년 SK실트론은 주요고객과 2019~2023년에 웨이퍼를 장기공급하겠다는 계약을 맺고, 계약대금 3720억원을 받은 바 있다. 2018년 장기공급계약보다 올해 계약이 61% 더 늘어난 것이다.
1분기 역대 최대 실적, 이어질까
올해 SK실트론 실적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 연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미 지난 1분기 SK실트론은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이 기간 매출은 5555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31.6% 늘었다. 영업이익(1193억원)은 135.3%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이 21%가 넘는 것이다.
실적 개선세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AI), 전기차, 5세대 이동통신(5G), 클라우드 등 급증하는 반도체 수요를 웨이퍼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다. 웨이퍼 생산 회사들이 증설에 나서고 있지만 공사기간이 수년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웨이퍼 판매가격은 고공행진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실적 개선세에 힘입어 기업공개(IPO)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증권가에선 SK그룹의 IPO '후보'로 SK실트론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주식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원스토어와 SK쉴더스 등 SK 계열사가 IPO를 중도에 연기한 점, 공정거래위원회가 2017년 개인적으로 SK실트론 지분을 확보한 최태원 회장에 대해 과징금·시정명령을 내린 것을 두고 행정소송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 등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