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을 글로벌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의약품 시장 규모는 전 세계 시장의 1.6%에 불과하다. 기업 규모 역시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 대비 매우 작은 수준이다. 신약 개발에 약 2조원의 비용이 들지만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매출은 2조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에 기업 규모와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수합병(M&A)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외 제약바이오 업계 M&A 동향과 M&A가 제약바이오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편집자]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보다 건수나 규모는 작지만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도 M&A는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과 삼정PwC 경영연구원 등 회계법인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제약바이오 산업 M&A 건수는 △2014년 19건 △2015년 25건 △2016년 26건 △2017년 31건 △2018년 41건 등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232건으로 국내 제약바이오 M&A 건수가 대폭 늘었다. 2018년 2조8000억원에 불과했던 M&A 거래액도 지난해에는 8조원으로 3배 가까이 커졌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내에서는 대형 M&A가 이제 막 태동하고 있고 M&A 효과에 대해서도 아직은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다. 최상위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처럼 다양하고 폭 넓은 M&A가 추진돼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1조 넘긴 M&A '3건'…대부분 1000억 미만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1조원을 넘는 M&A 딜은 현재 기준 총 3건이다. 첫 타자는 한국콜마다. 회사는 지난 2018년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를 1조31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인수금액에 비해 한국콜마의 매출액은 8216억원으로 자본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한국콜마는 약 6000억원을 특수목적회사(SPC) 설립을 통한 인수금융으로 조달했고 자체 자금 3600억원과 재무적투자자(FI) 유치를 통해 7100억원의 자본을 출자했다. 당시 인수금액이 한국콜마의 매출 규모를 훌쩍 뛰어넘어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두 번째로 M&A 규모 1조원을 넘긴 건 GS그룹 컨소시엄의 휴젤 인수였다. GS 역시 자본부족으로 싱가포르 소재 글로벌 헬스케어 전문 투자 펀드 CBC그룹, GS와 국내 사모펀드인 IMM인베스트먼트가 공동 출자한 SPC, 중동 국부펀드 무바달라의 투자회사 등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를 진행했다. 총 인수가인 약 1조5587억원 가운데 약 40%가량을 인수금융을 통해 조달했다.
이밖에 다수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지난해 1000억원 미만의 M&A를 진행하기도 했다. CJ제일제당은 마이크로바이옴을 통한 신약개발을 위해 천랩(현 CJ바이오사이언스)을 983억원에 인수했고 에이치엘비는 비임상시험 CRO(임상시험수탁기관) '노터스'를 962억원에 인수했다. 에이치엘비는 기존 신약 연구개발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와 함께 글로벌 CRO 시장 진출 등을 기대하고 있다.
2조 M&A 포문 연 '에스디바이오센서'
특히 올해 제약바이오 업계의 M&A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첫 2조원대 M&A가 성사된 데다가 글로벌 기업 인수가 잇따르면서다.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2조원 M&A 포문을 연 건 코로나 진단키트로 단숨에 업계 매출액 1위 자리에 오른 '에스디바이오센서'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코로나로 약 2조50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확보했고 지난 5월 사모펀드(PEF) 운용사 SJL파트너스와 함께 2조원(15억3199만 달러)을 투입해 미국의 체외진단 전문기업 '메리디안바이오사이언스'를 인수했다.
뿐만 아니라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지난 4월에는 이탈리아의 체외진단기기 유통기업 리랩(619억원), 지난 3월에는 독일의 체외진단기기 유통기업 베스트비온(161억원)을 품었다. 지난해에도 브라질의 체외진단기기 유통기업인 에코디아그노스티카를 470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에스디바이오센서의 M&A는 기존에 회사가 영위하던 사업과 연계돼 있어 '모 아니면 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식되면 진단기기 시장은 다시 위축될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반면 질병진단의 패러다임이 조기진단으로 움직이면서 코로나 진단키트 시장이 끝나도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차세대 체외진단기기 산업이 성장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자라면 에스디바이오센서의 M&A는 경영난 악화 등을 불러올 수 있고, 후자라면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올해 글로벌 기업들을 인수한 국내 기업들은 또 있다. GC‧GC셀과 메디포스트는 각각 미국의 세포유전자 위탁개발생산(CDMO)기업 '바이오센트릭'과 캐나다의 위탁개발생산(CDMO)기업 '옴니아바이오'를 인수하며 글로벌 CDMO 시장에 뛰어든다. 두 회사는 세포유전자 치료제 개발 기업인만큼 외형적으로는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치열해지고 있는 글로벌 CDMO 시장 경쟁에서의 생존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기술이전보다 효과적인 오픈이노베이션은 'M&A'
최근 몇 년사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으로 기술이전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기술 활용, 자산 등 외형 확장 측면에서 M&A가 더 효과적인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으로 꼽힌다. 최근 상위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올해 희귀질환‧암 등 신약 파이프라인 및 기술 확보를 목적으로 M&A를 추진하고 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희귀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시에라 온콜로지'를,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는 항암제 개발기업인 '터닝포인트 테라퓨틱스'를, 화이자는 희귀신경계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바이오헤븐'을 인수했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희귀질환 및 항암제 관련 신약 개발이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제약바이오 기업과의 M&A도 활발하다. 전문가들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욱 다양하고 폭 넓은 M&A가 추진돼야 한다고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자국 시장 위주로 움직이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M&A가 활성화되는 것이 관건"이라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의 사업 방향성과의 시너지 여부, 미래 가치, 성장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따져보고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해외 바이오텍 등으로 선택지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