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들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을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았다는 소식을 줄줄이 전하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지아이이노베이션은 메르켈 세포암 적응증에 대해 면역항암제 'GI-101'가 FDA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또 △엠투엔의 'PCLX-001'은 급성골수성백혈병 △HLB 관계사 베리스모 CAR-T 치료제 ‘SynKIR-110’는 중피중 △유틸렉스 'EU204'은 NK·T세포림프종 △HLB테라퓨틱스 안구질환 치료제 'RGN-259'는 NK·신경영양성각막염 △일동제약 계열사 아이디언스의 표적항암제 '베나다파립' 등도 올 하반기에 FDA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았습니다.
바이오 투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런 소식에 '혹'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개발단계에서의 희귀의약품 지정은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개발하는 희귀의약품에 대해 일부 지원할 뿐 의약품 품목허가신청(NDA)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 투자에 있어 호재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과거 희귀의약품은 낮은 유병률로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아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개발을 꺼리던 분야였습니다. 이에 다수 국가들은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관련 제도를 마련하고 지원혜택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6년에서야 희귀질환관리법을 제정 및 시행하면서 희귀의약품 관련 인센티브에 대한 법적근거를 마련했죠.
세계 각국의 희귀의약품 개발 지원으로 글로벌 희귀의약품 시장도 급성장세를 타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이밸류에이트파마에 따르면 전세계 희귀의약품 시장은 지난해 약 1600억 달러(231조원_에서 오는 2026년 2800억 달러(404조원)로, 연평균 12% 성장할 전망입니다.
이에 국내외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희귀의약품 개발도 활발해지고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먼저 개발 및 출시한 후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것과 달리 유독 희귀의약품은 우리나라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개발을 진행하면서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는 분위기입니다.
올 하반기(7월 이후) FDA로부터 개발 단계에서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은 국내 기업의 물질은 10여개 내외지만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은 건 세포바이오의 동종탯줄유래골모세포(대퇴골두 골괴사 적응증)와 뉴지랩테라퓨틱스의 탈레트렉티닙(ROS1 양성 비소세포폐암 적응증) 단 2개 뿐입니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국내 보다 해외에서의 희귀의약품 지정을 선호하는 이유는 대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타 국가와 우리나라의 희귀의약품 개발 지원제도를 살펴보면 국내 인센티브 제도는 미약한 수준입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 우리나라의 희귀의약품 개발 지원제도 중 공통점은 품목허가 심사신청 수수료 할인 및 면제와 우선심사제도 뿐입니다.
미국과 유럽은 연구개발(R&D)에 들어간 비용의 50%에 대해 세금 감면 혜택과 임상개발 보조금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일부 R&D 비용의 세제를 감면해 주고 있죠.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시장 독점권 부여기간입니다.
의약품 혜택 중 시장독점권 보장은 해당 기간동안 다른 기업이 동일한 의약품을 출시할 수 없도록 제한하기 때문에 수익을 독점할 수 있어 가장 강력한 인센티브 제도로 꼽힙니다. 유럽과 일본은 시판허가일로부터 10년, 미국은 7년의 시장 독점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4년에 불과합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희귀의약품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코로나 백신 개발 기업인 화이자는 지난 8월 희귀질환 치료제 전문 제조기업인 글로벌블러드테라퓨틱스를,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해 희귀질환 치료제 전문 바이오텍인 알렉시온을 인수했죠. 이밖에 사노피, 다케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 노바티스, 머크 등도 희귀의약품 개발기업을 인수하면서 희귀질환 파이프라인을 강화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앞서 올 하반기 FDA로부터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은 기업 외에도 LG화학, 한미약품, 대웅제약, 크리스탈지노믹스, 에이비엘바이오, 안트로젠 등 다수 기업들이 희귀의약품 연구개발에 힘쓰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이 희귀의약품을 해외에서 개발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전체 인구수가 적은 우리나라에서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임상참여자를 모집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국내에서 R&D를 진행하기도 어려운데 R&D 관련 인센티브 지원은 아예 없으니 해외로 발길을 돌리게 되는 겁니다.
윤석열 정부는 대선 당시 중증 및 희귀질환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덜기 위해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환자들의 희귀질환 의료비 부담을 덜고, 국가 건보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희귀의약품이 국산 의약품으로 개발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을 글로벌 산업으로 키울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국산 희귀질환 치료제가 빛을 보기 위해 해외 임상을 포함한 R&D 단계의 인센티브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희귀의약품은 개발에 성공하면 약가가 높게 책정돼 부가가치가 상당히 높은 분야"라며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산업을 글로벌 산업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경쟁력이 있고 부가가치가 높은 희귀질환 같은 분야에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