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해 유망한 물질이라도 임상이 중단되고 실패할 수 있다. 유망 파이프라인 하나에 의존하지 않고 연구개발 영역을 지속해서 확대하겠다
김재경 신라젠 대표는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향후 연구개발 계획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과거 신라젠은 단일 파이프라인이었던 항암 바이러스 후보물질 '펙사벡'에 연구개발을 집중해왔다. 펙사벡은 바이러스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으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글로벌 간암 임상3상이 무산되면서 회사를 존폐 위기까지 내몬 바 있다.
이날 김 대표는 파이프라인 다각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연구개발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내놨다. 또 진행 중인 임상에 속도를 내고 기술이전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회사가 가장 주목하는 파이프라인은 'SJ-600' 시리즈다. 펙사벡과 같은 항암 바이러스 후보물질로, 신라젠이 자체 개발했다. 현재 동물 전임상을 마쳤다. 내년 미국암연구학회(AACR)나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등에서 연구 결과를 공개할 계획이다.
특히 회사는 SJ-600이 정맥주사 방식의 항암 바이러스 후보물질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대부분 항암 바이러스 후보물질은 종양에 직접 주사하는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항암 바이러스 신약은 미국 암젠의 흑색종 치료제 '임리직'이 유일한데, 이 역시 종양 내 직접 주사한다. 다만, 이런 방식은 전이암이나 크기가 작은 암 등 종양이 주사하기 어려운 곳에 있는 경우 사용하기 어려웠다.
관건은 항암 바이러스가 종양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다. 항암 바이러스는 정맥 투여 시 몸속에서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단백질(보체)에 취약하다. 바이러스가 보체한테 잡아 먹히지 않고 종양에 이르러야 약효를 낼 수 있다. 오근희 신라젠 연구소장은 "보체 저항성을 가져 정맥주사해도 혈액에서 사라지지 않고 종양에 도달, 더 높은 항암 효과를 내는 항암 바이러스를 개발했다"면서 "정맥주사로 전신에 투여할 수 있어 고형암은 물론 전이암까지 적응증 확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9월 스위스 제약사 바실리아로부터 항암제 후보물질 'BAL0891'은 연내 임상1상을 개시한다. BAL0891은 세포 분열 과정에서 염색체의 비정상적인 분열을 유도하거나 분열을 아예 억제하는 방식으로 암세포를 죽이는 원리의 후보물질이다. 삼중음성유방암, 자궁내막암 등 난치성 암종을 타깃해 임상을 진행한 뒤 혈액암 등으로 적응증을 넓힌다는 목표다.
이재정 신라젠 박사는 "세계적으로 세포 분열 과정에 작용하는 인산화 효소 TTK와 PLK1을 동시에 억제하는 기전을 개발하는 기업은 아직 없어 신라젠이 이 분야의 선두 주자로 볼 수 있다"고 "전임상 결과 단독제제뿐만 아니라 파클리탁셀 병용 연구에서도 우수한 항암 효능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내일모레 정도 첫 연구 개시 미팅을 시작해 올해 안으로 미국 임상에 돌입할 예정"이라면서 "한국에서도 임상을 진행하기 위해 국내 빅5 병원 중 일부와 협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 펙사벡·면역항암제 병용 임상, 펙사벡 술전(수술 전) 요법 등도 이어갈 전망이다. 신장암을 대상으로 한 미국 리제네론의 면역항암제 '리브타요(성분명 세미플리맙)' 병용 임상은 현재 임상2상을 진행 중이다. 내년 3분기 결과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전립선암 대상 술전 요법의 경우 내년 1분기 호주에서 임상2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연구 인력을 확충하고 임상에 집중해 발 빠르게 글로벌 제약사(빅파마)로 기술이전을 추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이라며 "연구개발 인프라 확충, 인재 확보 등을 통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아낌없이 쏟아 기업 가치를 제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