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굴뚝 산업인 화학업계가 변신 중이다. 탄소중립 등을 중시하는 움직임이 거세지자 친환경 신사업에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작년부터 이어진 기존 사업군의 부진으로 화학사에게 신사업은 선택 아닌 생존 문제가 됐다. 친환경 신사업을 외치는 화학사들의 변신 과정과 감내해야 할 고충을 살펴본다.[편집자]
석유화학 회사였던 한화솔루션은 이제 태양광 회사로 거듭났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공들인 결과다. 한화솔루션 신재생에너지 부문(한화큐셀)은 지난해부터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한화솔루션에 호조 요인이다. 한화솔루션은 미국에 3조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해 태양광 허브를 건설하고, 회사의 중심축으로 성장시킨다는 구상이다. 이미 여러 투자들로 차입금이 많은 상황에서 한화솔루션은 곳간에 쌓아둔 현금을 투자금으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태양광, 이제는 주력사업
지난해 상반기까지 태양광 사업은 한화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한화큐셀은 원재료비 상승과 물류비 부담으로 2020년 4분기부터 지난해 1분기까지 6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태양광 사업이 빛을 보기 시작한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한화큐셀은 작년 2분기 소폭 흑자전환에 성공한 이후 3분기부터는 기존 주력 사업인 케미칼 부문의 영업이익을 앞지르며 한화솔루션의 구원투수가 됐다.
태양광은 이제 한화솔루션 내 확실한 수익원이다. 2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화솔루션은 지난해 4분기 3143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전망이다. 이 중 한화큐셀의 영업이익은 2598억원(82.7%)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화솔루션은 그동안 한국보다 미국 시장에 투자를 집중해왔다. 그 결과 미국 태양광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우드맥킨지에 따르면 한화솔루션은 지난해 3분기까지 미국 주택용 태양광 모듈 시장에서 17분기 연속, 상업용 태양광 모듈 시장에서 12분기 연속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최근 실적 개선도 미국 정부가 태양광 발전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면서 태양광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다.
미국에 '솔라 허브' 만든다
한화솔루션이 미국 시장에 집중 투자한 것은 선견지명이 됐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IRA 덕분이다. IRA엔 미국 내에서 태양광 제품을 만들어 팔 경우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 조항을 살펴보면 폴리실리콘은 ㎏당 3달러, 잉곳·웨이퍼는 ㎡당 12달러(와트당 4.69센트), 셀과 모듈은 W(와트)당 각각 4센트와 7센트의 세액을 공제한다.
현재 한화솔루션은 미국에 태양광 모듈 제조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솔루션이 IRA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이유다. 이 회사는 현재 조지아주 달튼에서 1.7GW(기가와트)의 모듈 생산 공장을 운영 중이다.
이곳에 2000억원을 투자해 올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1.4GW 규모 모듈 생산 설비를 증설하고 있다. 공사를 모두 마치면 3.1GW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이를 계산하면 한화솔루션은 올해만 2억1700만달러(약 2680억원)정도의 세액공제를 받게 된다.
앞으로 한화솔루션은 미국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IRA를 통해 2032년까지 태양광 관련 투자 비용의 30%를 감면받을 수 있어서다. 이 회사는 지난 11일 미국 태양광 사업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혔다. 총 3조2000억원을 투입하는 거대 프로젝트다.
우선 현재 가동 중인 달튼 공장에 연말까지 2GW의 생산력을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달튼 공장은 올해 말 기준 총 5.1GW의 모듈 생산 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달튼 공장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카터스빌에 오는 2025년 상반기까지 3.3GW 규모의 '솔라 허브'를 만든다. 이곳에 '잉곳-웨이퍼-셀-모듈'로 이어지는 생산 시설을 건설하고 태양광 밸류체인(가치사슬)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모듈 생산량만 따지면 북미 내 실리콘 전지 기반 모듈 업체 중 최대 규모(8.4GW)다. 지난해 기준 미국 내 태양광 모듈 발전량 총합이 19GW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한화솔루션은 내년 말 카터스빌 공장을 완공하면 IRA를 통해 연 8억7500만달러(약 1조원) 이상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태양광 시장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는 구상이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화솔루션은 앞으로 10년간 7조7000억원의 세금 혜택을 받아 투자비를 빨리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난해 30% 수준이었던 미국 시장 판매 비중을 2025년 70%까지 확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곳간풀어 투자금 마련
한화솔루션이 3조원이 넘는 투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관심이다. 현재 외부 자금 조달을 최대한 피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3분기 한화솔루션의 연결 기준 순차입금은 5조7653억원으로 순차입금비율이 60%에 달했다. 순차입금비율은 자기자본 대비 순차입금의 비율이다. 높을수록 차입에 기대는 정도가 많다. 업계에서는 보통 20~30%를 적정 수준으로 평가한다. 현재 이 회사의 순차입금 비중은 높은 편에 속한다는 의미다.
한화솔루션의 분기보고서를 살펴보면 작년 3분기까지 차입금에 따른 금융비용(이자비용)만 1496억원을 지출했다. 이미 지난해 이자비용(1475억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미국 태양광 사업 투자금을 추가로 차입할 경우 이자 부담이 상당히 커진다.
카터스빌 공장이 내년 하반기부터 완전 가동될 예정이라는 점도 이슈다. IRA를 통한 세액공제는 공장이 완전히 가동돼 제품을 생산·판매할 경우 지급된다. 최소한 올해는 카터스빌 공장 설비 증설분에 대한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는 셈이다.
결국 기존 보유 현금과 영업활동으로만 투자금을 조달해야하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케미칼 사업이 부진하고 있다는 점은 한화솔루션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서연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한화솔루션이 이번에 증설하는 설비는 2024년 이후로 완전 가동될 예정이다"며 "이 기간 동안 석유화학 업황 저하에 따라 한화솔루션의 자체적인 현금 창출력은 다소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단기적으로 현금흐름이 적자가 이어지고, 차입금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한화솔루션은 보유하고 있는 현금과 향후 세액공제를 통해 충분히 투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3분기 말 연결 기준 2조2253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한화첨단소재와 HAM홀딩스 지분을 매각하고 6800억원을 추가로 확보했다.
신용인 한화솔루션 전략부문 재무실장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한화솔루션은 작년 말 기준 현금 2조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 당장 차입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집중적으로 투자가 진행되는 올해와 내년 보유 현금을 최대한 활용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추가적으로 해외 법인을 통한 차입을 고려할 것"이라고 설명혔다.
또 그는 "차입하는 부분은 공장 완공 이후 IRA를 통해 받는 연간 1조원 이상의 세액공제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투자에 우호적인 국내 정책자금을 통해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