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제조 강국인 한국과 소재·장비 주도국인 네덜란드 간 '반도체 동맹'이 굳건해진다. 양국 정부와 기업은 반도체 관련 인력 육성부터 차세대 연구까지 맞손을 잡기로 했다. 기술혁신과 더불어 최근 미·중 기술 패권 경쟁 격화로 위기에 빠진 반도체 공급망이 상당 부분 안정화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인력 육성부터 차세대 연구까지 맞손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 시각) 세계 유일 반도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생산 기업 ASML 본사를 방문, 네덜란드와의 반도체 협력을 동맹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ASML은 업계 내 '슈퍼 을(乙)'로 불린다. ASML은 EUV 장비 독점업체로, 최첨단 파운드리 공정인 2나노(nm)*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지금까지 16차례 해외 일정을 소화한 윤 대통령이 처음으로 현지 기업을 찾은 이유다.
* 'nm'는 반도체 회로 선폭을 뜻한다. 선폭이 좁을수록 처리 속도가 빨라진다. 현재 기준 최고 기술은 2nm다. 이 기술이 본격화될 경우 해당 시장은 7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윤 대통령은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페터르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과 함께 ASML을 찾았다. 클린룸 등 ASML 핵심 시설이 외국 정상에게 공개된 것은 최초다.
해당 자리서 양국 정부와 기업 간 협의도 구체화됐다. 우선 한국과 네덜란드 정부는 첨단 '반도체 아카데미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미래 반도체 인력을 함께 양성하는 것이 골자로, 반도체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이다.
첫 교육은 내년 2월 네덜란드에서 1주간 진행된다. 대상은 양국 석박사급 대학원생과 엔지니어 각 50명으로 총 100명이 선발된다. 선발된 교육생들은 아인트호벤 공대에서 첨단 반도체 공정기술 특강을 수강하고, ASML·NXP 등 네덜란드 기업 현장서 실무 교육을 받게 된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ASML과 1조원을 공동 투자해 차세대 반도체 기술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키로 했다. 해당 센터는 한국에 지어진다. 두 기업은 차세대 EUV를 기반으로 초미세 제조 공정을 공동개발할 방침이다.
해당 센터는 ASML이 반도체 제조기업과 공동설립하는 첫 해외연구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에 한국 정부는 설치부터 운영까지 전폭적 지원을 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도 ASML과 맞손을 잡는다. 양사는 EUV 장비 내부의 광원 흡수 방지용 수소가스를 소각하지 않고 재활용하는 기술을 공동 개발하기로 협의했다. EUV 한 대당 전력 사용량이 20%가량 감소, 약 165억원의 연간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윤 대통령은 13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정상회담을 통해 반도체 동맹 논의를 이어간다. 정상회담에선 이를 더 구체화하는 결실이 나올 것이란 기대다.
경제안보 위기에 대응하고 공급망 취약 요소 보완을 위해 양국 간 경제안보 대화체를 신설, 정례 협의를 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