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 업계가 원자재 가격 인하와 중국의 감산 등 호재 속에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한 수요 위축이 지속하면서 재고가 쌓여 있어 한숨만 쉬어야 하는 형국이다. 긍정적인 환경 변화가 당장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답답한 상황에 처해 있는 셈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 빅2 기업은 이런 환경에 맞서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만드는데 분주한 모습이다.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과 투자 등으로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등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원자잿값 인하 호재에도…엇갈린 전망
철강 업계에 따르면 제철의 핵심 원료인 철광석 가격은 최근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철강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인 스틸웨어에 따르면 철광석 가격은 지난 5일 장 마감 기준 90달러 대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1월 3일까지만 해도 143달러까지 치솟았던 가격이 불과 3개월여 만에 31.46% 내렸다. 이는 지난해 5월 24일 97달러 이후 최저치이기도 하다.
중국의 원료탄 수입 가격 역시 222.7달러로 전주(245달러) 대비 9.1% 하락했다. 전월과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각각 27달러, 31.7달러 낮아진 가격이다. 하락세가 지속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상 철강 업계에서는 이런 원자잿값 하락은 호재로 여겨진다.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여기에 더해 최근 중국 철강 업계가 생산을 줄이고 있는 것 역시 국내 업계에 나쁘지 않은 소식이다. 증권가 등에 따르면 중국 247개 철강업체의 4월 철강 생산량은 225~226만톤(t)으로 점쳐진다. 지난해 같은 기간 245만톤(t)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감소한 규모다.
하지만 철강 업체들의 표정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당장 이런 긍정적인 흐름이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시장에서도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이런 흐름에 맞춰 수익성이 좋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있는 반면, 지속하는 경기 침체 등을 고려하면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부정적인 분석도 나온다.
박성봉 하나증권 연구원은 "올해는 1분기를 저점으로 하반기로 갈수록 수익성 개선이 예상된다"며 "대표적 철강사인 현대제철의 경우 지난 4분기의 대규모 재고 평가 손실과 연말 성과급 등의 일회성 비용이 제거되며 영업이익 흑자전환이 가능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이유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의 경우 "제강사가 원료 변동에 따라 매월 제시하는 기준가는 의미가 없어진 상황"이라고 짚었다. 제강사들의 재고가 6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원자잿값 인하 효과가 크지 않을 거라는 의미다. 이 연구원은 "제강사들의 3월 말 보유 재고는 39만톤(t)으로 높은 상황"이라고 했다. 재고가 쌓이면 매출이 막히고 이는 재투자로 이어지는 현금흐름을 막는다. 즉, 외부 환경이 좋아 철강을 생산해 봤자 재고 부담만 늘어난다 의미다.
철강 빅 2, 고부가가치 철제에 올인
국내 철강 업계 빅2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당장의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보다는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개발과 투자 등으로 중장기 성장 전략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의 저가 공세에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하겠다는 계획이다.
우선 포스코는 이를 위해 전기강판 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전기강판 생산량을 30만톤(t) 이상으로 유지할 예정이다. 현대제철의 경우 유럽과 미국 중심의 전기차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 관련 강판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포스코는 광양제철소에 1조원을 투자해 고효율 무방향성 전기강판인 'Hyper NO' 공장을 준공한 바 있다. 오는 2024년 말 2단계 준공을 완료해 연간 30만톤을 생산할 계획이다. 또 포스코는 올해 영국 프라이메탈스와 협업해 수소 환원 제철 추진반을 신설했다. 자체적으로 전기로 사업추진반을 만들기도 했다. 수소 환원 제철은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고, 전기로의 경우 오는 2026년 250만톤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Hyper NO를 통해 국내 고객사의 소재 부족 우려를 해소하고 품질 경쟁력 강화를 통해 글로벌 시장을 능동적으로 선점할 계획"이라며 "넷제로로 대표되는 친환경 제품 생산에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겠다"고 강조했다.
현대제철도 고부가가치와 친환경 철강 생산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현대제철은 서강현 사장이 "앞으로도 철강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것에 맞춰 대규모 투자를 철강에 집중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중심의 전기차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 관련 강판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9월까지 미국 전기차 강판 공장을 조기 가동해 수익성을 높일 계획이다. 해당 공장은 고로 1기당 연간 생산능력이 슬리터(스트립 코일의 양 끝을 잘라서 정돈하는 기계) 기준 12만톤(t)이다. 전기차 연간 생산대수로 계산하면 25만대를 만들 수 있는 규모다.
현대제철은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미 가속화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자동차 산업이 자리하고 있다"며 "이 같은 추세에 발맞춘 친환경·경량화 자동차 소재 개발과 생산 및 판매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