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의 이차전지 전구체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판정받으면서 향후 경영권 분쟁의 변수가 될지 주목받고 있다.
고려아연은 이번 판정으로 해당 기술의 해외 유출이나 해외 매각 시 국가안보와 경제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는 점이 인정됐다고 판단했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 핵심 기술들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18일 업계 따르면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는 고려아연과 자회사인 켐코(KEMCO)가 개발한 '니켈 함량 80% 초과 양극 활물질 전구체의 제조·공정 기술'에 대해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했다.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이 국가핵심기술을 외국 기업 등에 매각 또는 이전 등의 방법으로 수출할 때, 또한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이 해외 인수합병과 합작투자 등 외국인 투자를 진행할 때는 미리 산자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산자부 장관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한 뒤 산업기술보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승인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은 정부 승인 없이는 해외에 매각할 수 없게 됐다. 최근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모두 국내 기업에 매각된 점을 고려하면, 고려아연의 해외 매각이 사실상 어려워진 것이다.
일례로 국내 대형 전선 회사인 A사는 2019년 보유하고 있는 '500kV급 이상 전력 케이블 시스템 설계·제조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선정되면서 당시 추진하던 해외 매각이 막혀 2년 뒤 국내 기업에 인수됐다.
국내 대형 공작기계 회사인 B사도 '고정밀 5축 머시닝센터의 설계·제조 기술'을 보유하면서 중국과 일본 기업 등에 적극적으로 인수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결국 국내 기업에 인수됐다.
'니켈 함량 80% 초과 양극 활물질 전구체의 제조·공정 기술'은 우리나라가 이차전지 소재 산업뿐만 아니라 전방 산업인 전기차 산업에서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해외 매각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시장 조사 기업인 크레딧솔루션에 따르면 전 세계 전구체 시장에서 중국 점유율은 85% 이상이다. 국내에서 중국산 전구체 의존도는 무려 97.5%(한국무역협회 기준)에 달한다.
이번 고려아연 기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으로 자연스럽게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새 국면을 맞을지 주목된다. 국가 경제와 안보와 연결될 수 있는 변수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앞서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 초반부터 산업부에 관련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MBK가 고려아연을 인수하면 투자금 회수를 위해 해외에 매각해 차익을 챙길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고려아연의 경우 시가총액이 20조원 넘는데다 대규모 인수자금으로 향후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투자금 회수를 위한 매각 작업이 지지부진해지면 고려아연 기업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려아연은 MBK와 영풍이 투자금 회수 차원에서 고려아연의 해외 우량 자산을 먼저 구조조정해 수익화를 도모하고 분할 매각 등을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중요 기술을 해외에 공유하거나 수출 등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금 회수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영풍 측은 입장문을 통해 "국가핵심기술 지정을 환영하며 고려아연의 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영풍·MBK 연합은 중국 기업에 고려아연을 팔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이날도 "공개매수 시점부터 국가기간산업으로서 고려아연이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