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즉생'의 위기에 몰린 삼성전자가 '심기일전'의 각오를 다졌다. 경영진들이 직접 나서 지난해 사실상 전 사업부에서 부진했던 과오를 되짚고 다시 도약하기 위한 계획을 공표했다.
업계에서는 정기 주주총회 직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임원들에게 '사즉생의 각오'를 강조한 것에 주목한다. 이 회장이 주주들과의 소통 자리에 앞서 강한 메시지를 보냈다는 점에서 적절한 타이밍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19일 삼성전자는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정기주주총회가 끝난 이후에는 약 1시간 30분에 걸쳐 주주와의 대화를 가졌다. 한종희 DX부문장 부회장과 전영현 DS부문장 부회장이 직접 사업계획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주주들로부터 질의를 받았다.
이날 삼성전자는 정기주주총회 이후 이사회에서 전영현 DS부문장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공식 선임했다. 지난해 인사의 후속 조치지만, 이날부터 한종희·전영현 부회장이 이끄는 공식 투톱 체계를 다시 가동한 것이다.
삼성전자는지난 5월 경계현 전 대표가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이동한 후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 1인 체제를 유지하다 지난해 11월 말 다시 2인 대표 체제로 전환을 택했다.
이날 주주와의 대화 역시 투톱 체제가 제대로 자리잡은 모습으로 진행됐다. 한종희 부회장과 전영현 부회장이 각각 DX, DS 부문의 사업계획을 나눠 설명했다.
한종희 부회장은 DX 부문에서 AI(인공지능) 경쟁력을 강화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개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을 소개했다. 한 부회장은 "스마트폰, 태블릿, 워치, 버즈 등 모바일 제품 전체에 갤럭시 AI를 확대 적용할 것"이라며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일상 가전제품은 AI기반의 지능적인 개인 맞춤형 사용자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로봇, 메드텍(의료) 등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해 어떠한 환경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DS 부문 사업 계획을 발표한 전영현 부회장은 "(HBM은) 트렌드를 늦게 읽어 초기 시장을 놓쳤다"고 밝히며 삼성전자의 현실을 되짚었다. 아울러 이를 되돌리기 위해 조직개편, 기술개발을 위한 준비는 모두 마쳤다며 올해 부터 본격적으로 HBM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시장에 공급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전 부회장은 D램, 파운드리, 반도체설계 등의 사업 분야에서도 최대한 빠르게 수익성을 회복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려놓겠다고도 공언했다.
무엇보다도 이날 주주와의 대화에 나선 한종희 부회장 등 경영진들은 주주들에게 "다시금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재용 회장이 '사즉생'이란 단어까지 꺼내들며 독한 삼성을 주문한 직후다.
최근 이재용 회장은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영상 메시지를 통해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 문제에 직면했다"며 "경영진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재계를 비롯한 업계에서는 주주들과 대면하는 주주총회에 앞서 이 회장이 위기 의식을 강조한 것에 주목한다. 삼성전자의 재도약 의지에 명확성을 더해줬다는 평가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가장 뼈아픈 한해를 보낸데다 이재용 회장이 임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 이후란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며 이어 "이재용 회장이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고, 핵심 경영진들 역시 이를 받아들여 심기일전 하는 모습을 보인 만큼 이 회장의 리더십이 부각된 측면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재용 회장이 사법 리스크로 경영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위기 돌파를 위한 강력한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필요했던 상황인 만큼 이재용 회장이 메시지를 낸 타이밍도, 주총을 통해 삼성전자 경영진들이 이를 재차 천명한 타이밍도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이날 주총 직후 열린 이사회에서 '재무통'인 신제윤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신 의장은 2020년 박재완 의장, 전임 김한조 의장에 이어 사외이사가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을 맡는 3번째 사례가 됐다.
지난해 3월부터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활동해온 신 신임 의장은 금융위원장과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의장, 외교부 국제금융협력대사,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한 금융·재무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