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이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주목받으며 너나 할 거 없이 뛰어들고 싶은 산업으로 성장했지만, 아무나에게나 허락되진 않는다. 매우 고도화 한 기술력이 필요하고 진입장벽이 높아서다.
반면,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산업 역시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만 최종 완성품 설계 및 생산 등 핵심 공정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해볼 만 하다는 평가다. 반도체 '밸류체인' 합류를 원하는 국가 혹은 기업들이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를 중심으로 투자를 늘리는 이유다.

기업 '체질' 바꾼 반도체
캐논, 니콘, 후지필름 세 곳은 대중들에게 친숙한 일본 기업들이다. 공통적으로 카메라 회사 혹은 필름 회사로 강하게 각인돼 있다.
이들 기업은 카메라뿐만 아니라 '광학장비'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광학장비란 말 그대로 '빛'을 다루는 기계다. 카메라 역시 '빛'을 조절해 피사체를 담아내는 광학장비의 일종이다.
반도체 공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이러한 '빛'을 그것도 매우 정밀하게 사용해야 높은 수준의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 일찌감치 '빛'을 다뤄온 이들 기업에게는 노하우가 쌓여있다.
반도체 산업이 각광받으면서 이러한 '광학장비' 기술은 이들 기업을 몰락에서 구원하기도 했다. 캐논, 니콘, 후지필름 3사는 모두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카메라 부문에서 나오는 매출이 상당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스마트폰에 고사양의 카메라가 탑재되기 시작하면서 매출 신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서는 매출을 다시 끌어올렸다. 여기에는 의료기기와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광학장비 전문화를 꾀한 것이 주효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제 캐논은 노광 장비, 니콘은 측정 및 계측 장비, 후지필름은 반도체 화학 소재가 회사의 핵심이 됐다. 캐논, 니콘, 후지필름을 카메라 관련 기업보다는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기업으로 봐야하는 이유다.
'핵심' 안된다면 '소부장'부터
현재 '반도체' 하면 떠오르는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TSMC 등으로 한정된다. 이들 기업은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 및 판매를 모두 소화하는 종합 반도체 회사(IDM)와 생산만 담당하는 파운드리 등으로 반도체 시장에서 최종 제품을 생산한다고 보면 된다.
반도체 산업은 '첨단' 산업으로 분류되는 산업으로 고도화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기술력을 쌓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 반도체 기업들이 매년 천문학적인 R&D(연구개발) 비용을 투자하는 이유다.
또 필요한 것이 '시간'이다. 제품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생존하기 힘들다. 중국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 진출한다고는 하지만,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오랜 기간 쌓아온 신뢰도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반도체 밸류 체인에 합류하고자 하는 국가 혹은 기업들이 먼저 노리는 곳이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분야다. 이 분야 역시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신뢰도를 요구하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R&D 규모나 제조 인프라 구축에 대한 부담이 낮아 시장에 발을 내딛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해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밸류 체인에 합류하고자 하는 국가에서는 자국의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를 우선적으로 활용하는 국산화 작업이 함께 진행된다"라며 "반도체 최종 생산은 외국의 기업에게 맡기더라도 이에 들어가는 소재, 부품, 장비를 국산화 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부터 시작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인공지능(AI) 붐 이후에는 국가 차원에서 지원이 확대되면서 기회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평가다. 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면서 소재, 부품, 장비 분야에 진출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는 거다.
앞선 관계자는 "AI산업이 발달하면서 반도체는 경제적 가치를 넘어 안보적인 가치까지 지닌다는 평가가 더욱 대두되면서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대만 등 기존 밸류체인 내에 있던 국가들 뿐만 아니라 인도, 유럽 등지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라며 "특히 소재, 부품, 장비 기업은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면서도 자국의 기업을 육성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투자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