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인수합병(M&A)을 통해 자기자본이 500억~1500억원 이상 증가하는 M&A 증권사에 사모펀드 운용업 겸영을 우선 허용키로 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모펀드는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로 헤지펀드에 해당한다.
정부는 사모펀드 제도 개편 일환으로 전문투자형 사모집합투자업을 인가 단위로 신설할 예정인데 우선적으로 M&A 증권사에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M&A 유인책 가운데 요구되는 자본증가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M&A에 나서는 증권사들의 부담도 적고 신규사업을 노리는 중소형 증권사를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정부, M&A 증권사에 헤지펀드 문 개방
정부는 최근 사모펀드 개선방안에서 기존에 일반사모펀드와 헤지펀드와 같은 전문사모펀드, 사모투자전문회사(PEF), 기업재무안정 PEF로 나뉘던 체계를 전문투자형(헤지펀드)과 경영참여형(PEF)로 단순화하기로 했다.
또 진입이나 설립, 운용 판매 규제를 상당부문 완화했고 최소투자한도를 5억원으로 설정하는 등 부작용 방지장치는 강화시켰다. 사모펀드 순기능을 활성화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런 규제 완화와 함께 정부는 진입요건을 갖춘 증권사에 대해서도 겸업을 허용하고 당장 3년간은 M&A 추진 증권사에 한해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M&A 촉진을 위한 인센티브로 500억~1500억원 이상 자본이 증가하는 조건이 제시되면서 헤지펀드 설립에 관심이 있는 중소형 증권사들에게 M&A에 나설 유인을 제공할 수 있다. 한시적인 기간만 주어지기 때문에 M&A 추진 시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 증권업계, 헤지펀드 과실 제대로 못누려
이처럼 정부가 사모펀드 활성화에 팔을 걷은 이유는 사모펀드가 소수의 전문투자자를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자산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침체돼 있는자본시장 활성화에 필수적인 요소인 셈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1990년대부터 사모펀드가 활성화됐고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높고 그만큼 규제의 벽이 높다보니 사모펀드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일례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헤지펀드 비중은 미국(8.83%), 영국(11.8%)의 10분의 1수준인 0.09%에 불과하다. 운용전략도 단순화돼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미 2년전 한국형 헤지펀드가 태동했고 급성장했다. 그러나 그 과실을 증권사들이 제대로 누리진 못했다.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인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 속하는 증권사들이 헤지펀드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라임브로커를 통해 일부 득을 본 정도다.
본래 국내 증권사들은 대형사들 위주로 일찌감치 헤지펀드 운용을 위한 준비에 나섰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대우증권과 대신증권이 지난해 9월 예비인가 승인을 받았지만 본인가가 보류됐다. 대우증권은 현재 자회사인 믿음자산운용을 통해 헤지펀드를 추징 중이고 대신증권도 대신자산운용으로 넘겼다. 이후 최근까지 금융당국은 증권사의 헤지펀드 운용사 진입을 철저히 규제해왔다.
◇ 비용 만만치 않아..중소형사 운용여력 의문도
헤지펀드는 일찌감치 증권산업의 구조개편 촉매로 지목돼 왔다. 헤지펀드가 도입되면서 대형사를 중심으로 이들을 관장하는 프라임 브로커리지가 생기고 대형 증권사 수익을 높이면서 대형사와 중소형사간 양극화를 초래하면 이것이 자연스럽게 시장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최근까지 상황을 보면 헤지펀드 시장이 부상하긴 했지만 증권업계 구조개편 등 의도한 결과로 이어지진 못했다.
이에 더해 최근 정부가 마련한 안에 따라 M&A를 통해 중소형증권사들의 헤지펀드 겸업이 허용된다면 몸집을 지금보다 키우면서 새로운 동력을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중소형증권사들에 헤지펀드의 문이 단순히 열린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헤지펀드 투자 비용부터 인력확보까지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M&A를 통해 헤지펀드 운용자격이 따라올 순 있지만 이를 얻기 위해 M&A에 나서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헤지펀드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인력 투자도 필요하고 (기업내 정보교류를 차단하는) 차이니스월도 설치해야 하는 등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M&A를 통해 헤지펀드 활성화를 유도한다고 하지만 중소형사들에게 그 정도의 여력이 충분하게 생길지는 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M&A를 통해 헤지펀드 시장이 확실히 열릴지도 불투명하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