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유가가 다시 곤두박질하고 있다. 5일(현지시간) 국제 유가는 장중 50달러 선이 결국 붕괴됐다. 지난 2009년 미국의 경기후퇴 이후 처음이다. 유가 하락은 곧바로 글로벌 증시 급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가 하락과 동시에 제기됐던 구매력 증가나 기업 비용 절감 기대는 아직까지 전혀 작용하지 않는 모습이다.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가열된 에너지 패권 다툼 우려에 더해 이제는 공급 과잉과 수요 부족 등 근본적인 수급 문제가 크게 부각되면서 투자심리를 급격히 위축시키고 있다. 당장 유가 바닥을 예측하기 힘든 이유다.

◇ 불어나는 원유 재고, 심리 강타
지난해 연말 시장의 가장 큰 화두였던 유가 하락은 연초에도 지속될 것으로 어느정도 예견됐다. 하지만 하락속도가 생각보다 더 가팔라지자 시장도 적지않게 당황하는 모습이다.
유가 하락 속도가 빨라진데는 직접적인 수급상황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원유를 가져다 쓰는 주체는 없고 생산만 늘어서다. 대개 연말이면 정유업체들은 세금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유 재고를 줄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12월에는 이들의 원유 재고는 오히려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980년 이후 미국의 원유 재고가 늘어난 적은 2008년과 지난해 두 번 뿐이었다. 2008년 당시에도 금융위기 여파로 글로벌 경제가 위축되면서 재고가 급증한 바 있다.
지난해 역시 미국의 원유 공급 증가에 더해 사우디아라비아도 생산을 지속하면서 심각한 공급과잉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원유 생산분을 시장이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 1년간 국제 유가(WTI) 추이(출처:FT) |
◇ 에너지 기업들 추풍낙엽..배당도 적신호
유가 급락으로 당장 증시도 타격을 받고 있다. 글로벌 경제 둔화 우려는 물론 에너지 기업들의 실적 감소가 불가피하면서 고스란히 시장 충격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에너지 기업들은 유가 하락으로 생산마진이 줄어 들 수밖에 없고 에너지 업계의 대규모 감원 우려도 흘러나온다. 이미 할리버튼 등 일부 기업들은 수천명규모의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5일(현지시간)만 해도 대표 정유업체인 브리티쉬페트롤리엄(BP)과 로얄더치셸은 5% 안팎으로 급락했고 프랑스 토탈과 이탈리아 Eni는 각각 6%와 8%이상 빠졌다. 엑손모빌과 셰브론 역시 2~4%의 하락세를 보였다.
이런 에너지 기업들의 주가 하락에 더해 배당 기대도 줄어들면서 이들 기업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상실감을 맛볼 전망이다. 브리티쉬페트롤리엄(BP)과 더치셸 등 유럽 최대 정유업체들의 지난해 배당은 전년대비 11% 가까이 증가할 전망이지만 향후 수년간은 저유가로 인해 배당이 쉽지 않아질 수 있다고 경고에 나섰다.
◇ 계속 낮아지는 전망치..30달러대 관측도
유가 하락이 가팔라지면서 30달러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 손익분기점을 감안할 때 58달러대가 마지노선이란 분석도 있지만 공급 과잉과 수요 둔화라는 수급 상황이 이런 논리를 압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
지난해 유가가 100달러를 웃돌았던 당시 75달러선 하락을 예상했던 씨티그룹은 올해 유가 전망치를 63달러로 추가로 낮췄다. 모간스탠리는 이미 올해 전망치를 53달러대로 제시했다.
이들은 미국의 생산 지속과 사우디의 감산 거부, 글로벌 경제 부진이 맞물려 올해 하반기와 내년까지 유가가 계속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씨티그룹은 "유가 하락은 공급과잉이 주도했고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것"이라며 "미국과 사우디뿐 아니라 캐나다와 여타 중동 지역들의 원유 생산능력도 늘어날 것"으로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