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ETF(상장지수펀드) 시장은 주식 자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국내 주식 외 다른 방향으로 가면 성장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지난 20일 한국거래소가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한 '2019 글로벌ETP 컨퍼런스'에 참석한 문경석 삼성자산운용 패시브운용본부 상무는 비즈니스워치와 만나 해외 자산을 기초로 한 ETF 상품 강화와 관련 제도 개편을 주문했다.
ETF의 가장 큰 특징은 증시 상장을 통해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대부분 특정 지수를 추종하고 거래 비용이 여타 펀드에 비해 저렴하다. 펀드 조합을 통해 여러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상장 종목 수는 2002년 4개에서 현재 440여개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순자산 규모도 3400억원에서 현재 45조원으로 팽창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세는 완만해지고 있다.
문 상무는 "ETF 시장은 신상품 라인업이 갖춰지면서 계속 성장해왔다"며 "추가 성장을 위해서는 국내 주식에 치중한 상품 외연을 확대하고 제도 개선을 함께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상무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대우증권과 도이치자산운용 KB자산운용 등을 거쳐 현재 삼성자산운용에서 패시브운용본부를 이끌고 있다. 국내 ETF 전문가로 손꼽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문 상무가 가장 먼저 꼬집은 것은 국내 세제 정책이다. 최근 증가하고 있는 해외상장 ETF 직접투자 수요를 국내 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현행법은 해외상장 ETF 매매차익에 대해 양도소득세 22%를 매긴다. 250만원 미만일 경우 면제한다. 국내상장 ETF(주식형 제외)의 경우에는 배당소득세 15.4%가 적용된다.
절대적 세율 수치만 보면 국내상장 ETF가 유리해 보이지만, 국내상장 ETF는 해외상장 ETF와 달리 금융소득 종합과세 항목에 포함된다. 종합과세 누진세율은 최대 46.2%에 달한다.
물론 정확한 과세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별 투자 빈도 및 차익 규모 등을 따져봐야 하지만, 직관적으로 해외상장 ETF 직접 투자가 절세에 유리하기 때문에 수요 자체가 확대되지 않는다.
문 상무는 "대만 시장의 경우 정책 당국이 ETF 투자 한도를 없애는 등의 조치로 지난해 급성장해 국내 시장 규모를 압도했다"며 "수요 촉발과 공급 확대에 이어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상품 공급도 주문했다. 4차 산업혁명 섹터를 발굴하거나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제공할 수 있다. 초과 수익 확보를 위해 액티브 전략을 추구하는 상품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미국 나스닥 거래소의 경우 연내 투자 포트폴리오 공표 의무가 없는 ETF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 투명성 확보를 위해 포트폴리오를 공표해야 하지만 이 경우 운용전략 노출 등의 부작용이 거론됐다.
초과수익 달성을 위해 액티브 전략을 장려하는 조치의 일환으로, 추종 지수 이상의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패시브 펀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단일 ETF로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법도 소개했다. 삼성자산운용이 올 7월 선보인 TRF(Target Risk Fund)가 대표적이다. TRF는 ETF 상품으로 다양한 라인업을 마련해 투자자가 개별 위험성향에 맞는 상품을 골라 투자토록 했다.
상품을 세분화해 맞춤형 상품이 가능할 경우 연금 운용 상품으로 활용할 여지도 충분하다. 이 경우 "개별 재무적 목표 달성을 기존 펀드 위주에서 ETF를 활용하는 등 수요도 함께 촉발돼야 한다"는 것의 문 상무의 설명이다.
시장의 지나친 보수 경쟁은 고민거리다. ETF 시장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쟁이 과열된 나머지 저 보수 체제가 너무 일찍 자리잡아 자칫 산업의 경쟁력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상무는 "ETF 시장 발전은 향후 운용업계 구조 변화와 직결된 문제"라며 "국내 시장 성장세가 정체하고 있지만 그 반대급부로 새로운 영역을 발굴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