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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제도보다 교육' 퇴직연금 구루의 일침

  • 2019.10.30(수) 08:44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연금포럼 대표 인터뷰
"자녀 도움에서 연금 소득으로 이전해야"
"제도만능주의 버리고 거버넌스 구축 시급"

"종업원도 기업 경영의 한 축입니다. 퇴직연금 교육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경영 윤리에도 어긋납니다. 종업원들이 윤택한 노후 생활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기업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됩니다. 패러다임 변환이 필요한 시기인 셈이죠"

저성장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예·적금으로는 이렇다 할 수익을 얻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일각에서는 마이너스 금리 논쟁으로 뜨겁다. 전문가들은 목돈 운용 수단으로 투자를 권하지만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발품을 팔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작년 기준 190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이 단적인 예다. 노후자금 성격이 짙은 탓에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할 것 같지만 전문가 의견은 다르다. '장기·분산투자' 효과를 믿고 투자한다면 만족스러운 수준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개인의 연금운용을 기업이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종업원을 기업 경영의 한 축으로 보고 관련 비용 지출을 단순 지출이 아닌 상생 발전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라고 여겨야 한다는 것.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이고 배운 만큼 할 수 있는 법이다.

지난 28일 오후 퇴직연금 교육 현황을 짚기 위해 서울 여의도에서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를 만났다. 강 대표는 빠르게 변하는 시장 상황을 인지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거래소와 대우증권 등을 거쳐 현대투자신탁운용 사장과 미래에셋 부회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퇴직연금 시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 작년 말 현재 퇴직연금 적립금 총액이 190조원이다. 기업이 운용을 책임지는 DB(확정급여)형이 64%, 개인이 직접 나서는 DC(확정기여)형이 36%다. 한국연금연구소 도움을 받아 향후 증가폭을 추정해봤다. 총 적립금 규모는 2027년 380조원으로 2배가 되고 DC형 비중은 절반 이상인 51%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이 되면 적립금은 444조원이 되고 DC형 비중은 56%로 확대된다. 이즈음 되면 DC형이 퇴직연금 시장의 주류가 되는 셈이다.

- DC형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 기업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일단 운용 책임이 기업에서 개인으로 옮겨간다. DB형은 운용비용도 들어가는 데다 재무제표에 부채로 계상된다. 1990년대 일본에서는 퇴직연금 운용에 실패해 부채가 급증한 결과 주가가 떨어지고 본업도 망가진 기업도 있었다. 퇴직연금 사업자(증권사·은행·보험사 등)를 불러서 책상 하나 가져다 놓고 직원들 불러 거의 반 강제적으로 DC형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다.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많은 중견·중소기업들이 DC형을 채택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 DC형 퇴직연금의 수익률 부진 문제는 오랜 기간 지적됐다
▲ 작년 말 기준 DC형 퇴직연금 운용 상품을 보면 원리금보장형이 대다수다. 비중으로 보면 원리금보장형이 82%, 실적배당형이 18%다. 실적배당형 안을 봐도 안정성을 강조한 채권형 펀드가 대부분이다. 수익률을 불리는 주식형 및 혼합형 펀드 비중은 25%가 안 된다. 연봉 6000만원인 종업원이 매년 1개월 분 급여 500만원을 불입해 30년간 운용한다고 하자. 연 수익률이 1%일 때는 투자금은 1억7700만원이 되지만 수익률이 4%로 오르면 3억4900만원이 된다. 두 배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연금을 굴리는 노력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다.

- 누구나 연금을 잘 운용하고 싶어 한다
▲ 비용 절감과 책임 전가를 위해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한다면 종업원이 안정된 노후설계를 할 수 있도록 기업이 적절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종업원도 기업 경영의 한 축이다. 종업원 노후 설계를 모른 체 일관하는 것은 경영자 윤리에도 어긋난다. DC형으로 전환했다고 운용을 방치하면 지금이야 괜찮지만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운용 성과는 개인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 근로 의욕이 떨어지면 기업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 외국이라면 소송으로 비화할 수 있는 문제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도드라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에 매월 1회 퇴직급여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도를 만든 정부도 노력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 다른 나라 사례가 궁금하다
▲ 선진국의 경우 사회적 견제 시스템(거버넌스·Governance)이 작동한다. 이웃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퇴직연금 지급은 법적 의무 사항이 아니다. 기업 재량이다. 실력이 있으면 주고 없으면 못 주는 거다. 퇴직연금 제공 여부가 사회의 관심 대상일 수밖에 없다. 연금 운용이 소홀하면 지탄을 받는다. 거의 모든 일본 기업이 직원 대상 퇴직연금 운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금융교육 역사가 100년이다.

작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현재 우리나라 노인 4명 중 1명은 노후 수입원을 자녀 도움에 기대고 있다. 연금을 수입원으로 삼는 비중은 12.5%에 불과하다. 일본은 70%, 독일은 90%다. 정부가 연금을 몇백억원 갖고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국민들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돌볼 수 있는 공적·사적 연금 시스템을 확보한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러고 보면 정부에서 제공하는 퇴직연금 교육 프로그램이 있긴 하다
▲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게 문제다.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퇴직연금 운용 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기업 평가가 떨어지거나 사회에서 지탄받는 이른바 견제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유럽 국가들이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단순히 법적인 의무이기 때문인가. 아니다. 인도주의를 강조하는 국제사회 시선을 외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문제는 사회 전체를 시야에 놓고 풀어나가야 한다.

- 퇴직연금 교육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대단한 걸 하자는 게 아니다. 투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나가면 된다. 개인이 단기 시황 전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20~40년 장기로 보면 오차 격차가 줄어든다. 매월 10만원씩 10년 동안 적립 투자한다고 가정해보자. 최초 평가액은 1만원이었지만 매년 떨어져 8년 후 2000원이 됐다. 이후 조금씩 올라 최초 평가액의 절반 수준인 5000원까지 겨우 회복했다. 평가액은 총 얼마일까. 10만원을 10년간 매월 꼬박 모으면 1200만원이다. 이보다 작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가. 계산해보면 평가액은 1390만원이다. 평가액이 떨어졌을 때 많이 사두니까 그렇게 되는 거다. 장기적립식 투자의 묘미다. 아주 간단하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적정 수익률에 대해 궁금해 하는 목소리도 많다
▲ 십여 년 전 미래에셋 부회장으로 근무할 당시 투자자들에게 기대수익률을 물어본 적이 있다. 20% 안팎의 수익률을 기대한다는 답변이 절반이었다. 당시 금리가 10% 수준이었다. 일본 얘기를 해보자. 지금 일본 기준금리는 마이너스다. 수익률이 3%만 되도 투자자들이 흡족해한다. 무작정 수익률이 낮다고 할 게 아니라 어디에 비해서 높고 낮은 건지 이해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연 1.25%다.

- 저성장 추세가 해소되진 않을까
▲ 우리나라 1950~60년대 베이비부머 세대 평균 출산율이 약 6명이었다. 노동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른바 '인구 보너스' 시대다. 인구가 늘어나니 생산성이 증가했고 경제가 고속성장 했다. 작년 우리나라 출산율은 0.98명이다. 생산성을 높이는 수단이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예전과 같은 성장 시대는 오기 힘들다고 봐야 한다. 성장률도 사실상 1%에 진입했다. 저성장 결핍의 시대다. 단 비교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세계 평균 수준에서 대폭 낮아졌거나 전년 대비 감소폭이 커지면 문제겠지만 잠재성장률에 상응하는 수준이라면 나쁘지 않다.

-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한다
▲ 프랑스가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전환하는 데 155년 정도가 걸렸다. 일본은 35년으로 프랑스보다 약 4배 빠르게 진행됐다.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우리는 26년이다. 일본보다 더 빠르다. 모든 것이 총알처럼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부동산 시장을 보자.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베이비붐 시대였다. 과거 내가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노조에서 받았던 대출 이자율이 연 36%였다. 주택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나,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올라 있던 시대다. 사람들이 관성이 생겨서 지금도 과거 부동산 투자 이야기를 한다. 30년 전 일본 도쿄에서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 거의 없었다. 지금은 오른다고 내다보는 사람이 없다. 무리해서 집을 사면 하우스푸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분명하다. 대출 받아 집을 사서 세를 준다 치고 수익률을 따져보면 의외로 1%도 안 되는 곳이 수두룩하다.

- 자산운용업계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 운용사들이 예금 이자에 알파 수익을 내는 대표 펀드를 갖고 있어야 한다. 장기 레코드를 쌓기 위해서는 철학을 관철시킬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기관투자자는 장기운용을 할 수 없다. 운용 성과를 단기적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영업으로 100억원을 끌어와 수익을 내면 100억원을 더 얹어 주지만 손실이 나면 바로 다 빼버린다. 진정한 의미의 장기운용은 개인자금에 기반한다. 그 중 퇴직연금이 중요하다. 최근 공모펀드 시장이 죽었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 말은 개인이 펀드시장을 떠나고 있다는 말이다. 장기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경영철학이 중요하다.

- 임기 1~2년의 대표 체제에서 어려운 것 아닌가
▲ 운용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독립계여야 한다. 대형 금융 계열사에 속한 운용사 사장 임기는 3년을 채우기 힘들다. 수년간 장기 트랙 레코드를 쌓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운용사들이 내놓은 타깃데이트펀드(TDF, 생애주기펀드) 상품 대부분은 외국 운용사 펀드에 재간접 투자하는 상품이다. 장기 레코드 가진 펀드가 없기 때문이다. 능력이 중요하지 그릇이 중요한 게 아니다. 미국 펀드 시장이 성장한 데는 퇴직연금 효과가 컸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미국 펀드 잔고의 46%가량이 DC형 퇴직연금으로 구성됐다. 미국에는 중소형 독립계 운용사가 많이 있다.

- 투자자든 운용사든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는 결론이지만 좀처럼 쉽지 않으니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 제도가 답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디폴트옵션을 도입한다고 하지만 정작 디폴트옵션 적정상품에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명시해버리면 의미가 없다. 너무 쉽게 제도를 도입해도 안 된다. 앞서 설명한 거버넌스가 작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교육이 중요하다. 투자에 따르는 리스크를 알리고 장기·분산 투자 효과에 대해 설명하는 거다.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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