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법. 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올해 1분기 화려한 실적 파티와 함께 일제히 사상 최고 분기 실적을 갈아치웠다. 가히 무서운 질주다.
증권사들은 지난해 본격화한 개인들의 주식투자 열풍이 올해도 계속되며 리테일 부문에서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부진했던 투자은행(IB)과 트레이딩 부문까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금융투자업계 실적 역사에 남을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1분기 실적 대잔치의 주인공은 한국투자증권이었다. 터줏대감처럼 지켜오던 연간 순이익 1위 자리를 지난해 미래에셋증권에 뺏기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첫 시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으면서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사명 변경에 따른 일회성 비용 탓에 진검승부가 어려웠던 미래에셋증권과 연말까지 치열한 대결을 예고했다.
삼성증권도 자산관리(WM) 강자로서 면모를 재차 과시하면서 미래에셋증권을 맹렬히 추격했다. '동학개미운동'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키움증권은 자기자본 빅5인 NH투자증권과 KB증권을 제치고 순익 4위를 꿰차며 또 한 번 놀라운 수익성을 자랑했다.
'꾸준함'이 무기인 메리츠증권 역시 분기 기준 최대 실적을 달성하면서 순이익 2000억원대 증권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라임펀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작년 4분기에 10대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 순손실을 내기도 했던 신한금융투자도 1700억원 가까운 순이익을 기록하며 환골탈태했다.
작년 2분기부터 매분기 10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면서 메리츠증권 못지않은 '모범생' 대열에 오른 하나금융투자는 이번에도 양호한 성과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대신증권은 지난해 3분기 적자 탈출 이후 성장세를 거듭하면서 분기 순이익 1000억원에 바짝 다가섰다.
24일 비즈니스워치가 지난해 말 기준 자기자본 2조원 이상 10개 대형 증권사의 1분기 연결 순익을 분석한 결과 전체 순이익은 2조2967억원으로 집계됐다. 역대 분기 최고 기록인 지난해 3분기 1조9126억원보다 무려 20%가량 더 많았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최악의 성과를 냈던 지난해 1분기 2543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2조원 넘게 늘어났다.
전분기에는 순이익 1000억원 이상 증권사가 4곳, 2000억원 이상 증권사는 2곳에 불과했지만 올 1분기에는 대신증권을 제외한 9개 증권사가 모두 100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올렸고 2000억원 이상을 올린 증권사도 7개에 달했다.
역대급 성적의 일등공신은 이번에도 위탁매매였다.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급락장을 틈타 주식 투자에 나선 개인투자자들의 열기가 올해도 식을 줄 모르는 기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 주식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33조3000억원으로 전분기보다 21%나 증가했다. 연초 코스피 시장 위주로 거래가 급증한 덕분이다.
국내를 넘어 이른바 '서학개미'를 주축으로 한 해외 투자도 활발하다. 1분기 해외 주식 약정대금은 1285억달러로 전분기 대비 102%, 전년동기 대비 368% 급증했다. 특히 이중 미국 주식 거래 비중이 2019년 75%, 2020년 90%에서 올 1분기에는 93%까지 높아졌다.
상대적으로 기대를 밑돌았던 IB 부문은 SK바이오사이언스와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을 필두로 한 기업공개(IPO) 시장 활황 그리고 인수합병(M&A) 자문 및 인수금융 시장의 회복을 바탕으로 눈에 띄게 개선됐다. 금리 상승으로 우려했던 채권과 파생상품 운용 부문의 실적도 양호한 모습을 보이면서 전체 실적 호조의 한 축을 담당했다.
한투, 화려한 '1위 복귀'…미래와 '선두 다툼' 예고
매분기 순익 1위 자리를 다투는 '숙명의 라이벌'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 중 올해 첫 대결의 승자는 한국투자증권이었다.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인 3506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면서 2968억원에 그친 미래에셋증권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지난해 1분기 적자 '불명예'를 떨쳐버리고 '수익성 최고 증권사' 타이틀도 되찾았다.
위탁매매와 WM, IB, 자산운용(Trading) 등 전 부문에서 호조를 보였지만 특히 비대면 채널 서비스 강화와 해외 주식 활성화를 통한 위탁매매 부문의 수익 증가가 두드러졌다. 고보수 수익증권과 주식형 랩(Wrap) 등 신규 매각에 힘입은 자산관리 부문 성과도 힘을 더했다.
지난해 연간 '디펜딩 챔피언' 미래에셋증권은 한국투자증권에 선두를 내줬지만 성과는 괜찮았다. 미래에셋대우에서 미래에셋증권으로 사명을 바꾸면서 영업외비용이 566억원 발생한 것을 감안하면 순이익과 지배순익 모두 사실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국내외 주식거래가 활발한 모습을 띠면서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이 전분기보다 36% 넘게 늘어난 데다 해외 법인 순익이 전분기보다 157% 이상 급증하는 등 한국투자증권과 마찬가지로 전 부문의 성과가 좋아졌다.
미래에셋증권은 최근 금융위원회로부터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최종 인가를 받으면서 실적을 업그레이드할 호기를 맞은 터라 연말까지 올해 순이익 왕좌를 놓고 한국투자증권과 불꽃 튀는 대결을 이어갈 전망이다.
'물 오른' 자산관리 강자 삼성…'뒤쫓는' 키움과 NH
삼성증권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가장 돋보이는 증권사 가운데 하나다. 자타 공인 'WM 강자'로서 동·서학개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3000억원 가까운 순익을 올렸다. 한 분기 만에 지난해 연간 순익의 절반이 넘는 이익을 거둬들인 셈이다.
리테일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데다 경쟁사 대비 부진했던 IB 부문의 실적이 개선되면서 창사 이후 첫 연간 세전이익 1조원 돌파에 청신호를 켰다.
자기자본만 놓고 보면 9위에 불과한 키움증권은 동학개미들의 '최애 증권사'답게 이번에도 남다른 성과를 과시했다. 내로라하는 대형사들을 제치고 순익 4위를 꿰찬 것이다.
키움증권의 1분기 순익은 2668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에 기록한 역대 분기 최대치를 경신했다. 온라인 주식거래 점유율 1위 증권사로서 증시 거래대금 증가를 바탕으로 리테일 부문에서만 2800억원이 넘는 수익을 낸 덕분이다. 다만 다른 증권사들의 선전으로 키움증권의 순위는 △작년 3분기 1위 △4분기 2위 △올 1분기 4위로 하향 추세다.
지난해 1300억원에 달하는 옵티머스 펀드 충당금 적립 등으로 정상적인 실적 달성이 어려웠던 NH투자증권은 올 1분기에는 시장의 기대치를 웃도는 2500억원대 순익을 올리면서 저력을 과시했다. 약 400억원에 달하는 옵티머스펀드 충당금 추가 적립에도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점이 인상적이다.
국내외 주식 거래 수수료 수익에다 IB, 운용 업황 개선에 따른 이익 증가가 실적 호조를 이끌었다. 옵티머스 펀드 관련 배상 문제가 마무리되면 지난해보다 실적이 대폭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투자증권과 더불어 지난해 1분기 적자를 기록하며 체면을 구겼던 KB증권은 2200억원이 넘는 순익으로 분기 최대 실적을 새로 쓰면서 자존심을 되찾았다. 위탁매매 수수료 외에도 대형 IPO와 유상증자 딜을 통해 IB 실적을 끌어올리면서 대형사다운 성적표를 내놨다.
메리츠증권은 창사 이후 처음으로 분기 순익 2000억원을 돌파하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특히 지난 2018년 1분기부터 13분기 연속 1000억원대 이상 순익 행진을 이어가면서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자랑했다. 리테일과 트레이딩 모두 역대 최고 성과를 내면서 최대 실적을 견인했다.
신한금투 정상화 신호탄…하나금투·대신 '안정성' 돋보여
신한금융투자는 라임펀드와 독일 헤리티지 부동산 파생결합증권(DLS) 사태의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모습이다. 전분기 10대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 적자를 기록했던 신한금융투자는 1분기 1681억원의 순익을 기록하면서 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위탁매매 수수료와 상품매매 수익이 전년동기 대비 각각 92.4%, 194.9% 늘어나는 등 전 분야에서 고른 실적 개선이 나타났다.
최근 새 대표이사 취임 후 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 5조원 규모의 대형사로서 위용을 갖춘 하나금융투자도 1300억원대 순익으로 탄탄한 수익성을 자랑했다. 지난 2분기부터 꾸준히 1000억~1500억원대 이익을 실현하면서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타 증권사와 마찬가지로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 증가가 실적 성장에 핵심 역할을 했다.
지난해 라임 펀드 관련 선보상 지급 등의 이슈를 털어버린 대신증권은 1000억원에 육박하는 분기 순익으로 이익 성장세에 속도를 냈다. 위탁매매와 이자 수익이 늘어난 데다 주식과 파생상품 운용, 대신F&I를 비롯한 자회사들의 실적이 골고루 개선된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