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되던 지난해 1분기만 해도 짐작조차 할 수 없던 증권사들의 실적 랠리가 올 들어서도 멈출 줄 모르는 기세다. 대형사와 중소형사를 막론하고 창사 이후 지금처럼 '장사'가 잘 된 적은 없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올 정도다.
1분기 실적 발표가 마무리된 상황에서 증권가의 관심은 실적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에 쏠려 있다. 증권가에서는 2분기는 1분기와 비교해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실적 파티의 주역인 개인투자자들의 주식투자 열풍이 조금씩 식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주식투자로 재미를 본 동학개미들의 발길이 어디로 향할지 단정 지을 수 없는 데다 극심한 부진에서 벗어나 빠르게 회복 중인 투자은행(IB) 부문 등을 고려할 때 아직 향후 실적을 예측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거래대금 감소 변수로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분기 역대급 실적의 원천은 누가 뭐라 해도 위탁매매(브로커리지) 수수료 수익이다. 해가 바뀌고 거래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을 마치 비웃듯 올 1분기 국내 증시 일평균 거래대금은 33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4분기보다 21% 늘어났다.
지난해 코로나19 반등장을 계기로 거세게 불기 시작한 동학개미운동의 파워가 여전했던 셈이다. 이는 연초 코스피가 상승 랠리를 펼치며 3200선 돌파에 성공한 데 따른 영향도 컸다.
동학개미 이상으로 증시를 뜨겁게 달구는 '서학개미'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1분기 해외 주식 약정대금은 1285억달러로 전분기 대비 102%, 전년동기 대비 368% 급증했다. 특히 미국 주식 투자 붐이 일면서 해외 주식 내 미국 주식 거래 비중은 2019년 75%, 2020년 90%에서 올 1분기에는 93%까지 높아졌다.
그러나 주식 거래 현황을 월별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변화의 기운도 감지된다. 지난해 4분기 27조6000억원을 기록했던 일평균 거래대금은 올 1월 42조1000억원까지 폭증했다가 2월 32조4000억원, 3월 26조2000억원으로 꾸준히 감소세를 나타냈다. 전월 대비 증감률로 따지면 △1월 25.1% 증가 △2월 23.1% 감소 △3월 19.1% 감소다.
거래대금 변동은 주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연초 반짝했던 코스피는 이후 박스권에 갇히면서 1분기에 6.6% 상승하는 데 그쳤다. 작년 4분기 상승률 23.7%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유안타증권 분석에 따르면 최근 일평균 거래대금과 증시는 동행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지난해 3월 증시 급락 이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주가연계증권(ELS) 자체 헤지가 축소돼 위탁매매의 이익 기여도가 코로나19 이전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거래대금 감소세와 증시 부진은 증권사 실적과 직결된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거래대금 증가와 증시 상승, 금리 하락이 지속돼야 증권사들의 이익 추가 성장이 가능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추가 유동성 확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정 연구원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상승하면서 기준금리가 추가로 인하될 가능성은 제한적인 만큼 2월 이후의 양상은 계속될 것"이라며 "2분기 이후로는 증권사들의 이익이 감소할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다만 일부 전문가는 고수익을 좇아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의 암호화폐 시장으로 눈을 돌렸던 젊은 투자자들이 암호화폐 시장의 극심한 변동성에 지쳐 다시 증시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전망을 제기한다.
유근탁 키움증권 연구원은 "비트코인을 필두로 암호화폐 시장의 각종 자산가격이 급락세를 이어가면서 증시로 자금 재유입이 기대된다"며 "5월 일평균 거래대금이 전월 대비 14.1% 증가한 것이 그 예"라고 설명했다.
IPO 활황 타고 IB는 바닥 찍었다
증권사들의 또 다른 대표적인 수익원인 IB 부문도 실적 변수로 지목된다. IB는 위탁매매 부문과 달리 대체로 긍정적인 전망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바닥을 찍은 뒤 올 들어 눈에 띄게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 바탕에는 기업공개(IPO) 시장의 활황이 존재한다. 상반기 증권사 IB 실적 호조에 큰 보탬이 된 SK바이오사이언스와 SK아이이테크놀로지에 이어 카카오뱅크와 크래프톤 등의 대어들이 상장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앞서 20년 만에 1000포인트를 돌파하기도 한 코스닥 지수를 고려할 때 올해 공모 규모는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것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고은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백신 접종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IPO 등 기업의 대규모 자금 조달이 이어지고 있다"며 "공모주 활성화는 대형 증권사의 기업금융과 리테일 실적을 모두 견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근탁 연구원도 "IPO 시장이 지난해 이후 활황을 유지하면서 인수 수수료 수입이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이와 함께 채무 보증 수수료와 기타 수수료 수입 등 PF 관련 수입도 증가세를 나타내는 만큼 증권사 IB 부문의 수익 창출력은 좋은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