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개미운동의 열기가 한풀 꺾이면서 대형 증권사들의 2분기 실적 역시 뒷걸음질 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실적이 후퇴하기는커녕 또다시 분기 최고 기록을 바꿔 쓰면서 '화양연화(花樣年華·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26일 비즈니스워치가 지난해 말 기준 자기자본 2조원 이상 10개 대형 증권사의 2분기 연결 순익을 분석한 결과 전체 순이익은 2조3669억원으로 집계됐다. 역대 분기 최고 기록인 올 1분기 2조2967억원보다 700억원 가까이 늘어나면서 기록적인 실적 행진을 이어갔다. 10개 증권사 모두 순익 1000억원을 넘어선 것도 인상적이다.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수수료 수익이 줄어들긴 했지만 투자은행(IB)과 자산관리(WM) 등 다른 본업들의 성과가 이를 상쇄하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하반기에도 지금의 기세가 쉽사리 꺾이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깜짝 1등' 대신…'자존심 지킨' 미래에셋
2분기 대형 증권사 성적표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자기자본 10위 대신증권이 내로라하는 증권사들을 모조리 제치고 2분기 실적 왕좌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대신증권의 2분기 연결 순익은 3845억원. 지난해 대신증권의 순익이 1642억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불과 한 분기에 그 두 배 이상을 벌어들인 것이다.
이는 5년에 걸친 '나인원한남 비즈니스'의 결실이 한꺼번에 반영됐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 대표 부촌인 서울 한남동에 들어선 고급 주거단지인 나인원한남은 대신증권의 계열사 대신에프앤아이가 진행한 총 사업비 1조4000억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다.
대신에프앤아이는 나인원한남 분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2분기 3673억원의 순익을 기록했고 이는 대신증권이 사상 처음으로 분기 실적 1위 자리를 꿰차는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라임 펀드 관련 충당부채로 인식한 544억원까지 순익에 포함했다면 대신증권의 2분기 순익은 4400억원을 넘어설 수도 있었다.
대신증권이 깜짝 성과로 금융투자업계를 놀라게 했다면 미래에셋증권은 국내 최대 증권사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위용을 과시하며 업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미래에셋증권은 2분기 3565억원의 순익으로 분기 실적 기록을 갈아치우는 것과 동시에 국내 증권사로는 최초로 자기자본 1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2016년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확정 직후 글로벌 IB로 도약하겠다며 내걸었던 목표를 5년 만에 달성한 것이다.
상반기 실적을 놓고 보면 연간 순익 1조원과 2년 연속 영업이익 1조원 달성도 무난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순익 디펜딩 챔피언인 미래에셋증권의 2연패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졌다.
NH·삼성 '이름값'…한투는 사모펀드 우려 털어
NH투자증권은 옵티머스 펀드 사태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제 실력을 찾은 모습이다. 2분기 2705억원의 순익을 거두며 미래에셋증권의 뒤를 이었다.
특히 NH투자증권의 2분기 성적은 시장 컨센서스를 35%나 웃도는 '어닝서프라이즈'다. 옵티머스 펀드 관련 충당금 부담이 사라진 덕을 톡톡히 봤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고 있는 삼성증권의 기세도 놀랍다. 2645억원의 순익으로 NH투자증권을 바짝 추격했다. 마찬가지로 증권가 컨센서스를 30% 넘게 웃도는 성과다.
삼성증권은 상반기에만 지난해 전체 이익 5076억원을 뛰어넘는 5535억원을 벌어들이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누적 세전이익의 경우 7643억원으로 지난해 미래에셋증권에 이어 1조원 달성도 가능해 보인다.
반면 1분기 홀로 3000억원대 순익을 기록하면서 최강자 자리에 올랐던 한국투자증권은 2분기 2322억원의 순익에 그치며 5위로 미끄러졌다.
그러나 이는 라임과 옵티머스, 디스커버리 등 사모펀드 피해자들에게 투자원금 전액을 보상하기로 하면서 그에 따른 충당금을 600억원가량 반영한 영향이다. 충당금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한국투자증권의 순익은 3000억원에 육박한다.
카카오뱅크 상장에 따른 지분법 이익이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만큼 3분기 실적은 대폭 개선될 것으로 예상돼 미래에셋증권과의 연간 순익 1위 경쟁은 하반기에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키움·메리츠 '꾸준'…금융지주 계열 3사 '평타'
키움증권과 메리츠증권은 꾸준한 실적 관리 능력이 돋보인다. 키움증권은 2분기 2212억원의 순익을 거둬들이며 5분기 연속 2000억원대 순익 행진을 이어갔다. 지난해 전체 순익 7000억원의 3분의 2에 달하는 순익을 상반기에 올리면서 톱5 진입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현재 준비 중인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자격을 3분기 중 정식으로 얻게 되면 성장세에 더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메리츠증권은 1903억원의 순익을 올리면서 1000억원 이상 연속 분기 순익 기록을 14분기로 늘렸다. 무엇보다 그간 취약점으로 거론되던 재무건전성을 양호하게 유지하면서 뛰어난 성과를 낸 게 고무적이다.
메리츠증권의 순자본비율(NCR)은 지난 6월 말 기준 1501%로,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12%포인트나 개선됐다. NCR은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높을수록 재무건전성이 좋다는 뜻이다.
10대 증권사 중 만년 순익 꼴찌를 기록했던 대신증권이 1위로 치고 올라가면서 8~10위는 신한금융투자와 KB증권, 하나금융투자 등 국내 굴지의 금융지주 계열사들이 나눠가졌다.
신한금융투자(1547억원)와 하나금융투자(1392억원)가 전분기와 비슷한 수준의 실적을 낸 것과 달리 1분기에 2200억원대 순익으로 6위에 랭크됐던 KB증권은 2분기 1533억원의 순익에 머무르면서 9위로 처져 아쉬움을 남겼다.
브로커리지 부진 속 IB·WM 구세주로 등장
대형 증권사들에 2분기는 녹록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사상 유례없는 실적 고공행진의 바탕이 된 개인투자자들의 주식투자 열풍이 최근 눈에 띄게 약해진 탓이다.
2분기 일평균 증시 거래대금은 27조764억원으로 1분기 33조3504억원보다 19%가량 줄었다. 이는 곧바로 브로커리지 수수료 수익 감소로 이어졌다. 대형 증권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브로커리지 수수료 수익이 전분기보다 20% 내외 줄었다.
자칫 실적이 고꾸라질 수도 있었지만 구세주가 등장했다. 바로 IB와 WM이다.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주축으로 한 구조화금융과 기업공개(IPO)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대다수 증권사의 IB 실적은 전분기 또는 전년 동기 대비 호전됐다.
한국투자증권의 IB 수수료 수익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7% 증가한 1611억원에 달했고 미래에셋증권의 IB 수수료 수익 역시 전분기보다 20% 넘게 늘어난 1137억원을 기록했다. 대신증권의 IB 순영업수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8% 급증했다. 브로커리지 수수료 수익 의존도가 높은 키움증권이 2분기 양호한 성과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IB에서 600억원 가까운 수익을 낸 덕분이다.
NH투자증권과 삼성증권의 경우 평소 강점을 지닌 WM의 역할이 컸다. NH투자증권의 WM 관련 이자수지는 전분기 대비 4% 늘어난 688억원, 금융상품 판매 수수료 수익은 같은 기간 11% 증가한 257억원에 달했다. 삼성증권은 랩어카운트 판매 증가와 주가연계증권(ELS) 조기상환이 반영되며 WM에서 작년 1분기보다 55.5% 늘어난 328억원을 벌었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쏠쏠한 이익을 거둔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그룹 차원에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잘 갖춘 미래에셋증권은 2분기 중국 차량공유서비스 디디추싱을 비롯한 해외 기업에 대한 프리 IPO(Pre-IPO·상장 전 지분투자)로 수백억원의 이익을 냈다. 아울러 해외법인의 자기자본투자(PI)로도 1100억원이 넘는 세전순익을 벌어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