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 열풍이 한풀 꺾인 가운데에서도 대형 증권사들의 실적 고공행진은 이상무다.
23일 비즈니스워치가 지난해 말 기준 자기자본 2조원 이상 10개 대형 증권사의 3분기 연결 순익을 분석한 결과 전체 순이익은 2조3613억원으로 집계됐다. 역대 분기 최고 기록인 올 2분기 2조3669억원에는 살짝 못 미치지만 앞서 증권업에 대해 쏟아졌던 실적 둔화 우려에 대비해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업이익 기준으로는 이들 증권사의 성과가 더 두드러진다. 3분기 만에 '1조 클럽'에 입성한 증권사들만 총 4곳에 달한다. 미래에셋증권(1조2505억원)과 삼성증권(1조1182억원), 한국투자증권(1조637억원), NH투자증권(1조601억원) 등이 이미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실적 호조를 이끈 것은 투자은행(IB)과 자산관리(WM) 부문이었다. 박스권 장세가 계속되면서 동학개미(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들이 증시에서 대거 이탈하고 있음에도 지난해 유입된 고객을 진성 고객으로 잘 정착시키며 WM 수수료 수익을 늘렸다. 이와 함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상장 전 지분투자(Pre-IPO) 등 IB 부문에서의 성과도 속속 수익으로 이어졌다.
순익 1조 장벽 뚫은 '한투'…'미래'도 덩칫값
3분기 가장 눈에 띄는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이다. 한국투자증권은 3분기에 무려 621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이익을 내면서 국내 증권사로는 처음으로 누적 순이익 '1조 클럽'에 입성했다. 분기 순익만 놓고 보면 전년 동기(2589억원)와 비교해 140% 폭증했다.
카카오뱅크 기업공개(IPO)로 수천억원의 지분법 이익을 거둔 것을 비롯해 기존에 강점을 지닌 IB부문과 WM부문에서 뛰어난 성과를 낸 덕분이다.
실제 한국투자증권의 3분기 별도 기준 순영업수익(영업이익과 판관비를 더한 값) 5769억원 중 IB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억원으로 전체의 34%에 달했다. 3분기에 카카오뱅크와 현대중공업 등 대형 IPO를 주관하면서 관련 수익이 급증한 게 주효했다. 카카오뱅크의 세전 지분법 처분이익은 무려 5546억원에 달한다.
또 다른 실적 공신은 WM 부문이다. 3분기 금융상품 판매를 통해 전분기(769억원) 대비 7.8% 늘어난 829억원의 수수료 수익을 올렸다. 개인고객 금융상품 잔고도 9월 기준 34조3800억원을 기록하며 전분기 33조9600억원보다 1.2% 늘어났다.
한국투자증권이 깜짝 성과로 시장을 놀라게 한 데 이어 자기자본 1위 증권사 미래에셋증권도 견고한 실적을 이어가며 2위 자리를 꿰찼다.
미래에셋증권의 3분기 순익은 지난해 동기 대비 37.1% 늘어난 3398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과 영업익 역시 각각 32.3%, 35.0% 늘어난 3조3936억원, 3971억원으로 집계됐다.
무엇보다 2년 연속 영업익 1조원을 달성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국내 증권사 가운데 2년 연속 영업익 1조원을 달성한 것은 미래에셋증권이 처음이다.
IB 부문이 호조를 이어가며 기업금융 수수료 수익이 늘어난 게 성장세에 큰 몫을 했다. 기업금융 수수료 수익은 전년 동기 대비 39.1% 늘어난 921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 3분기 미래에셋증권은 SK루브리컨츠 인수금융 주선과 크래프톤을 포함한 다수의 IPO 인수단으로 참여한 바 있다.
3위 재탈환한 '삼성', 동학개미 서식지 '키움'
삼성증권은 3분기 2682억원의 순익을 올리며 순익 순위 3위 자리를 재탈환하는데 성공했다.
개인투자자 맞춤형 전략이 통했다. 삼성증권에 등록된 자산 규모 30억원 이상 고객 수가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하는 등 WM 부문 수수료 수익 상승을 도왔다. 일찍부터 고액자산가 대상 특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선 것이 올해부터 빛을 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디지털 고객 잔고도 전년 동기 대비 133% 급증했으며 서학개미(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 규모를 나타내는 해외주식 예탁 잔고도 16조원을 넘어섰다.
리테일 강자로 동학 개미의 주요 서식지로 꼽히는 키움증권은 순익 4위 자리를 지켜냈다. 리테일 비중이 커 증시대금 감소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란 우려에도 IB 부문을 잘 성장시키면서 상위사로서의 입지를 굳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키움증권의 3분기 순익은 지난해 동기간 대비 11.45% 줄어든 2335억원으로 집계됐다. 세부적으로 3분기 수탁 수수료 수익은 1403억원을 기록했으며 IB 부문은 전년 동기(383억원) 대비 72.06% 증가한 659억원을 기록했다.
NH투자증권은 전년 동기 대비 10.4% 감소한 2147억원의 순익을 기록하며 전분기보다 순익 순위가 3계단 떨어진 5위에 자리했다. 증시 활황세가 한풀 꺾이면서 주요 수익원인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이익과 운용수익이 줄어든 영향이다.
그럼에도 'IB 명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브로커리지 수익 감소분을 IB 부문 수익으로 상쇄했다. 3분기 NH투자증권의 IB 부문 수익은 92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814억원보다 13.8% 늘어났다.
메리츠·하나·대신 늘고, KB·신한 줄고
메리츠증권은 전년 동기 대비 17.7% 늘어난 1912억원의 순익을 기록하며 6위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뒤이어 하나금융투자는 1804억원의 순익을 달성하며 분기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전년 동기 대비 무려 56.2% 늘어난 수치다. WM부문서 증여랩, 힙합랩 등 상품경쟁력을 강화해 상품 수익이 늘어난게 주효했다. 대신증권은 전년 동기 대비 36.1% 늘어난 977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이어 KB증권은 전년 동기 대비 18.3%가 줄어든 1702억원의 순익을 거뒀다.
신한금융투자는 446억원의 순익에 그치면서 다소 아쉬운 성적을 보였다. 전년 동기 대비 무려 65.0%나 쪼그라든 것으로 라임 사태와 관련해 상품 관련 비용 약 800억원을 선제적으로 인식한 탓이다.
실적 둔화 불가피…IB 잘하는 회사 주목
대형 증권사들이 3분기에도 호실적을 이어갔음에도 증시대금 감소에 따른 실적 후퇴 우려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향후 증권사별 IB 역량에 따라 이들의 실적이 갈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내년 증권업은 증시 약세 영향으로 이익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통상 과거 강세장 종료 시 브로커리지와 트레이딩이 실적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실제 브로커리지의 부진은 이미 확인되고 있다. 국내 일평균거래대금은 1분기 33조3000억원, 2분기 27조1000억원, 3분기 26조3000억원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증권사들이 벌인 브로커리지 수수료 할인 출혈 경쟁이 수수료 수익 감소세를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점이다. 통상 수수료율 하락은 거래대금 급증 시 점유율 경쟁을 위해 시작되지만 거래대금이 감소하면 다시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점유율 유지를 위해 오히려 더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브로커리지는 지속적으로 우하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는 부동산 PF 등 IB 부문이 제시된다.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증권사들은 브로커리지와 트레이딩의 부진을 부동산 PF 실적 등으로 방어했다.
다만 내년에는 기존에 강화된 PF 규제로 인해 방어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019년부터 PF 채무보증 규모는 자기자본의 100% 이내로 제한돼 있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부동산 PF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회사에 주목해야 한다"며 "대형사들의 경우 이미 PF 채무보증 규모가 큰데다 구 영업용순자본비율(NCR) 비율이 150%에 근접한 수준까지 떨어진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추가로 PF 사업을 키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