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가 콧대 높은 미국 시장 데뷔에 성공하면서 그간 실체 없는 투기적 자산으로 치부되던 가상화폐의 입지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비트코인 ETF 출시로 국내외 주식시장에 일대 지각변동이 예고됨에 따라 관련 종목 및 상품에 미치는 파급 효과와 더불어 국내 시장 진입 가능성 등을 두루 점검해 보고자 한다.[편집자]
비트코인 선물 상장지수펀드(ETF)의 미국 주식시장 상장을 계기로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지면서 해외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 이른바 서학개미들이 바빠졌다. 이들은 가상화폐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직·간접적인 수혜가 기대되는 관련 종목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이번 상장을 신호탄으로 향후 비트코인 연계 상품에 유의미한 자금이 흘러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이번 상장 이슈가 미국 증시에 이미 반영됐다는 분석과 함께 추가 규제 가능성 등을 들어 신중한 투자 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서학개미, ETF 상장 첫날 160억 거래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시장에서 비트코인 선물에 투자하는 첫 ETF인 'ProShares Bitcoin Strategy ETF(종목코드는 BITO·비토)'가 첫 거래를 시작했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비토의 상장 첫날 해외 주식 거래가 활발한 6개 증권사(키움증권과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를 통해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거래한 금액은 161억원으로 집계됐다.
증권가에서는 첫 거래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금액이 적지 않다며 비토를 찾는 투자자들의 발길이 갈수록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제 막 상장한 만큼 유의미한 거래량이라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비트코인 강세장이 계속되고 있고 향후 관련 상품들이 지속적으로 출시될 것으로 미뤄보면 투자 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미국선 가상화폐 관련주 '쪽집게' 등장
이런 가운데 비트코인 ETF가 출시된 미국에선 서학개미들이 눈여겨볼 만한 가상화폐 관련주들을 콕 집어 주는 금융회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 대표 은행 중 하나로, 이달 초 디지털자산연구팀을 신설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행보가 가장 적극적이다.
BoA는 가상화폐 시장을 △운용 시스템 역할을 하는 토큰 △중개자 없는 분산형 어플리케이션(DApps) △법정화폐와 연계된 스테이블 코인 △국가화폐를 대체할 수 있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페 △코인 창작자와 팬을 연결해주는 대체 불가능(NFTs)한 토큰 등 크게 5개 항목으로 분류했다.
디지털 자산 대표주로는 테슬라와 함께 대량의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페이팔(PayPal)을 비롯해 코인베이스(Coinbase), 블록체인 기반 지급결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시그니처뱅크(Signature Bank), JP모건(JP Morgan Chase),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 SVB 파이낸셜 그룹(SVB Financial) 등을 제시했다.
이에 더해 지난 18일 가상화폐 관련 종목 리스트를 업데이트했다. 여기에는 테슬라를 비롯해 △페이스북(Facebook)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트위터(Twitter) △엔비디아 △AMD(Advanced Micro Devices) △TSMC(Taiwan Semiconductor)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 등 23개 상장사들이 새롭게 추가됐다.
알케시 샤 BoA 글로벌 암호화폐 및 디지털자산 전략총괄은 "가상화폐 기반의 디지털 자산이 완전히 새로운 투자군을 형성할 것으로 믿고 있다"며 "현재 디지털 자산 시장 규모는 2조달러(약 2355조원)로 이를 간과하기에는 너무 크다"고 설명했다.
시장 상황 우호적…경계심은 필요
비트코인 선물 ETF의 성공적인 데뷔로 가상화폐 시장에는 일단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비슷한 종류의 상품은 물론 향후 비트코인 실물을 담고 있는 현물 ETF 출시에 대한 기대감이 확대되면서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비트코인 관련 ETF는 인베스코 비트코인 스트래티지 ETF를 비롯해 발키리 비트코인 스트래티지 ETF, 반에크 비트코인 스트래티지 ETF 등 총 9개다. 이들 상품은 모두 늦어도 연말까지 거래 가능 여부에 대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자금 유입도 기대된다.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투자 규모를 확대하고 있어서다. 모건스탠리는 세계 최대 규모 비트코인 펀드인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신탁(Grayscale Bitcoin Trust·GBTC)'에 대한 투자금을 올 들어 50%가량 늘렸다.
은퇴자산을 관리하는 탓에 가상화폐 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해외 연기금들도 점차 투자에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과 미국 뉴저지주의 공통 연기금 D(New Jersey's Common Pension Fund D) 등은 비트코인 채굴업체 라이엇 블록체인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승빈 대신증권 연구원은 "가치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지만 시가총액 규모 측면에서 비트코인은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 돼 가고 있다"며 "비트코인 선물 ETF에 이어 실물 ETF의 상장까지 승인되면 글로벌 자금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단 비트코인 ETF나 가상화폐 관련주 투자에 있어선 조심스럽게 접근하라는 조언이 나온다. ETF로의 자금 유입만으로 향후 성과를 예단하기 힘들고 상장 이슈 등이 이미 일부 종목에 선반영 됐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규제 리스크도 무시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김인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ETF 자금 유입이 실질적으로 상품 가격의 상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에 경계심이 필요하다"며 "단기적인 가격 측면에서 전고점을 목전에 두고 있고, 미국 증시에 비트코인 ETF 상장 이슈가 선반영된 만큼 차익실현 욕구가 확대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또 "글로벌 전력난이 부각되는 가운데 각국 정부의 친환경 정책 강화로 전력 소모가 큰 비트코인에 대한 추가적인 규제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